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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Oct 12. 2023

아무도 없다

충남방적에서 일했던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수집하러 다닌다. 


충남방적은 1954년에 설립한 국안방적을 이종성 회장이 1967년 인수하면서 시작, 1970년 5월 21일 충남방적(주)로 변경해 운영했다. 1975년 5월 21일 예산읍 창소리 77-3에 토지 189,766㎡, 건물 90,840㎡를 건축했다. 1976년 11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 정방기 13만 2천80추, 직기 9백30대를 설치했다. 국내 면방업체 중 2위를 차지했던 공장이다. 충남방적이 가장 번성하던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공장 노동자와 직원들은 3000~4000명에 달했다. 1995년 창업주가 타계하고 IMF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2001년 2월 10일 충남방적 공장이 폐쇄되었다. 


할머니 경로당을 찾아간다. 한 할머니가 구부정한 허리로 들어온다. 다른 할머니들이 저 할머니도 충방 다녔어,라고 한다. 충남방적 공장이 건축되면서 일용직 잡부로 일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쑥스러운 지 몇 년 다녔다며 얼버무린다. 며칠이 지나 할머니 집을 물어물어 찾아간다. 


왜 또 왔냐고 한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들어가도 되냐고 했다. 들어오란다. 


오전 9시 30분, 할머니는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작은 상에 양파장아찌와 열무김치를, 상 아래 뚝배기에 간장과 고춧가루로 지져낸 두부를 젓가락질하고 있었다. 삼계탕을 먹으려고 했는데 옆집에서 찰밥을 가져다줘서 먹고 있단다. 할머니는 나에게 등을 돌린 채 밥을 먹었다. 맞은편에 인스턴트 삼계탕 봉지가 보인다. 


혼자 사시냐고 물었다. 혼자 밥 먹으니 혼자 살지,라는 답이 돌아온다. 밥을 다 먹은 할머니는 밥공기와 젓가락을 물로 헹군다. 물컵에 물을 따라 차례대로 약을 먹었다. 혈압약을 드시냐고 했다. 아무 말이 없다. 컵을 물에 헹구더니 거실로 나간다. 돌비야, 짖지 마. 마당에 묶여 있는 강아지가 내가 들어서면서부터 짖기 시작한다. 나 나갈 때까지 컹컹 댈 거란다. 할머니가 거실에서 사라졌다. 잠시 부엌 바닥에 앉아 기다린다. 개 짖는 소리 이외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바닥에 꺼내놓은 수첩과 볼펜이 무색하다. 가방을 주섬주섬 들고 나온다. 할머니는 마당에 앉아 콩을 까고 있다. 댓돌에 놓인 운동화에 발을 쑤셔 넣는다. 제가 가야 강아지가 안 짖을 거 같네요. 저 가볼게요. 할머니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응, 말한다. 


할머니 집을 나서니 등이 싸하다. 골목길을 따라 도로변으로 나온다. 아무도 없다. 차들만 쌩쌩 달린다. 15분쯤 지났으려나. 밀차를 밀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할머니가 보인다. 마을을 정처 없이 돌았다. 다시 20분쯤 지나 이번에는 마을에서 밀차를 밀고 다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나처럼 하릴없이 헤매고 다니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아침부터 반갑지 않은 손님에게 화가 난 것일까. 


그날 나는 낯선 이방인의 모습으로 충남방적 인근을 어슬렁거리다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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