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한 말들-글쓰기 그 미친 희망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생 생산하지 않으며 사는 것은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공을 하고, 사진을 찍는 취미생활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 그 어디에도 내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적어도 글쓰기는 이 미친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자기 고백이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쓰는 일은 다른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과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또 다른 내가 있기도 하다. 차마 인정하지 못했던 나, 망각에 묻혀있던 기억의 나, 들여다보기 민망했던 내가 있기도 하다.
사십 대 후반의 그를 만났을 때 잊고 있었던 나를 만난 기분이었다. 강원도가 고향인 그는 서울에서 기자 생활과 뮤지컬 공연 기획 관련 일을 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취재해 기사를 쓴다는 일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알게 됐고, 이후 뮤지컬이나 연극 등 공연 기획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다. 뮤지컬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를 제안하는 동료의 제안을 뿌리치고 명동을 찾았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인파가 북적였다. 자신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는 타인의 흔적을 잠시 느꼈다. 마치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만히 서 있었다. 실의에 빠진 드라마 주인공이 길을 잃고 멍하게 서 있는 것 같은 장면들이 휙휙 스쳐갔다. 사람 안에 있으면서 사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이 갈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람 옆에 있지만 늘 사람이 그립기만 하다. 그러려니 할 때도 됐는데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쉰 살이 되기 전에 귀농했다. 처음에는 이상이 컸다. 시골 와서 1년에 작품 3개 정도하고 나머지는 시골 생활을 즐기자고 생각했는데 그저 꿈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서울에서도 각종 공연이 취소되고 지인들이 운영하던 기획사도 문을 닫았다. 가끔 제안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정중하게 다음을 기약했다.
농사를 지으며 땀 흘려 일한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몸이 지치니 아무 생각 없이 잠자리에 든다. 당분간은 이 생활이 좋다. 그래도 문화에 대한 마음의 갈증은 남아 있다. 시골과 도시의 문화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그 간격이 크다. 두 가지가 융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골에 오기 전 귀농귀촌 교육을 받았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시골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이것이 안 되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봤다. 서로 간에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는 시간을 가지고 서서히 지역에 물들어 가기로 했다. 어쩌면 시간과 침묵, 고독을 벗 삼는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고, 먼저 다가가기보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 말이다.
인터뷰 말미 그는 “다만 가끔 외로워요. 그래도 미련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하는 그의 고개는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고, 시선은 운동화 앞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덩달아 나의 시선도 그를 쫓았다. 운동화에는 미처 떨어지지 못한 진흙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의 말과 눈빛에서 나는 도시에서의 정처 없던 나를 떠올렸다. 나는 그 무언가를 찾아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지금도 찾음에 대한 욕망은 내 안에 있다. 그 긴 여정에서 나는 외롭지 않았다. 다만 고독할 뿐이었다. 나는 배고프지 않았다. 그저 허기질 뿐이었다. 그리고 가끔은 사람들의 대책 없는 배려에 울기도 했고, 출구 없는 위로에 덤덤했으며, 반성 없는 기대에 절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적어도 내가 해야 할 일을 선명하게 각인하고 있음이 조금은 다행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