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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모험가 Dec 26. 2021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말뚝(박완서 님의 엄마의 말뚝)

아주 평범 씨의 책 이야기

        나는 엄마의 말뚝을 읽고서 한동안 가슴 깊은 곳의 먹먹함과 여운이 감돌았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현대까지 그것은 비단 주인공 한 개인의 집안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인이라면 느낄 수 있는 아픔과 공감이 아닐까 싶다. 이 이야기는 우리 엄마 아니, 우리 할머니 시대쯤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 시절의 엄마가 그러하듯 우리네 엄마들은 온갖 모진 고생을 하시면서도 오직 자식을 위해 참아내셨다.  


우리 엄마 또한 그러셨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은 대전에서 상경했다. 아빠의 사업이 망하여 망연자실할 때 아빠는 산속으로 들어가서 돼지나 키우자고 하셨다. 그러나 엄마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 가자고 하셨다. 서울은 아무 연고도 없고 유일하다면 큰 이모네가 살고 계셨다. 그러나 큰 이모네의 살림살이도 녹록지 못했다. 아빠를 겨우 설득하여 이불 보따리 하나 싣고 서울로 이사를 왔다. 그것도 큰 이모네가 살고 계신 은평구 한 자락에 말이다. 대전의 학교에서 내가 서울로 전학을 간다니 사정도 모르고 친구들이 매우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나의 아니 우리 가족의 서울 살이가 시작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엄마의 첫 번째 말뚝이였으리라. 대전에서는 제법 넓은 집이었는데 서울에는 주인댁까지 다섯 가구가 사는 옛 한옥이었다. 단칸방에 부엌 하나, 그 단출한 집에서 서울 살이가 시작되었다. 부모님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악착같이 장사를 하시며 우리를 키우셨다. 그러면서 엄마는 우리가 공부 잘하고, 잘 되기를 바라셨다. 남동생과 나, 남매였던 우리 집은 다행히 나와 동생이 공부를 못하지는 않아서 부모님의 기쁨이 되었다.


엄마의 말뚝 1에서 주인공의 엄마가 아들과 딸을 공부시키기 위해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서울 근교로 와서 셋방살이하며 모진 고생을 한다. 이 장면들을 읽으며 나의 어릴 적 셋방살이 시절과 오버랩된다. 물론 시대 차이가 있기는 하나 세 살 이의 서러움과 부모님의 고생은 많이 공감된다. 이 소설 또한 작가의 자전적 연작소설이라 하니 더욱 주인공과 친밀감이 형성된다. 예를 들면 주인집 눈치를 본다든가 물을 아껴 쓰는 부분도 그러하다. 우리는 주인집 빼고 네 가구가 마당 가운데 한 수도를 같이 썼다. 그러하기에 필요할 때 수도를 차지하기는 전쟁과도 같았다. 그래서 커다란 물항아리에 물을 받아 놓고 썼다. 물이 귀해서 세수하고, 세수한 물에 걸레를 빨고, 걸레를 빤 물로 바닥 청소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 소설은 그 시절의 나에게로 데려다주었다. 너무나 힘들어서 아팠던 어린 시절이지만 그 시절의 아픔을 견디어서 오늘날의 내가 있지 않았나 싶다. 주인공네도 현저동 괴불 마당집에서 문(門) 안의 평지에다 집을 장만하고, 더 나은 집으로도 여러 번 이사를 다녔다. 여기서 문은 서울 사대문 안 진짜 서울을 뜻한다. 드디어 주인공의 엄마의 소원대로 오빠도 성공하고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도 부모님이 열심히 사셔서 드디어 내가 대학교 때 작은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동생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나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늘 나와 동생을 자랑하시면서 다니셨다. 그것이 싫고 민망해서 엄마께 눈짓을 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드니 그러하셨던 엄마가 이해가 된다. 그것 또한 엄마의 또 다른 말뚝이었으리라. 엄마는 안 해보신 일이 없으시게 모진 고생을 하셨다. 정말 열심히 사셨다. 일하시다 쓰러지시기까지 하셨다. 그러나 그 힘든 일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잘 되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어 엄마의 양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시고, 우리들이 엄마의 훈장이 되었다. 무일푼으로 서울에 와서 악착같이 사셔서 자식들 대학 보내고, 버젓한 직장을 갖게 되고, 집 한 칸도 장만했으니 엄마의 기준에서는 나름의 문 안의 삶이 아니었을까?


 또한 소설 속에서 ‘신여성’이라는 부분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신여성!’ 소설 속의 엄마는 여성의 지위에 지각이 있으셨던 것 같다. ‘신여성’은 단지 외모뿐 아니라 ‘공부를 많이 해서 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사람, 마음먹은 건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집도 다른 많은 집들처럼 아들을 차별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딸이지만 장녀인 나에게 기대하시고 기대셨다. 그래서 나는 집안의 기둥 역할을 실제로 하였다. 진정한 신여성이란 무엇일까? 요새 ‘페미니즘’, ‘페미니스트’가 화두가 되고 있다. 단지 과거의 오랜 역사 속에서 남성의 지배 속에 있던 여성의 반향과 저항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부여받고 동등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배울 수 있는 권리, 인간 존엄성의 권리를 가지고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구현할 수 있는 남과 여의 구분이 아닌 참된 지식인으로서 말이다. 나는 ‘신여성’일까?


 이어서 엄마의 말뚝 2 에서는 6.25의 아픔을 느끼게 해 준다. 전후세대로서의 내가 온전히 그것을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인이라면 한이 서린 분단의 아픔 말이다. 우리 부모님도 6.25 때 어린 나이여서 많은 기억을 갖고 계시지는 못하다. 얼마 전 6.25 관련 ‘살아낸 사람들’이라는 창작 연극을 아이들과 보았다. 그 연극에서도 6.25가 역사책 속의 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 가족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연극은 대본을 쓰신 지인의 큰어머니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셨다고 한다. 결혼하자 얼마 안 되어 남편은 의용군으로 끌려가게 되고, 소식이 끊겨 사망한 줄로 안다. 배 속에 아기가 있던 큰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혼자 기르며 시조부모와 시부모를 모신다. 그런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북에 남편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되고 화상으로 상봉하게 된다. 그러나 남편은 북에서 결혼하여 이미 부인과 딸들이 있었다. 그것 또한 북한에서 정착을 위한 계획이었다. 이 가슴 아픈 영화와 같은 이야기는 실제 우리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전후세대인 우리와 우리 후대에게 6.25 가 점점 과거의 역사 속으로 잊히는 듯해서 안타까웠는데 귀한 경험이었다. 연극 관람 후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특히 관객으로 오신 90세 어르신은 전쟁을 겪으신 세대로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더욱 생생하고 감동이 되었다. 그 어르신은 6.25 당시 20세셨고, 전쟁으로 큰 오빠와 작은 오빠를 잃으셨다고 한다. 그 슬픔에 눈물지으시는데 나 또한 눈물이 났다. 주인공의 엄마도 갑작스레 다치시고 병원에 입원하셔서 그동안 내재되었던 엄마의 오빠를 잃은 한을 표출한다. 그것은 한 아들을 잃은 슬픔만이 아닌 우리 민족 모두의 슬픔과 한(恨) 일 것이다. 그 기억은 생생하여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상흔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 민족의 상처이고 그 말뚝이 뽑히지 않고 있다. 그 말뚝이 뽑히길 소망한다.

 

 엄마의 말뚝 3에서는 엄마의 7년간 더 지속되는 투병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엄마도 연세가 많이 드셨고,  큰 병으로 수술을 하셔서 더욱 실감이 되었다. 소설 속의 강하셨던 엄마도 약해지시고 죽음을 맞으신다. 죽음 후에도 유언과 같이 오빠처럼 화장을 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공원묘지에 묻히게 된다. 묘지에 엄마의 또 하나의 말뚝이 있다. 정식 비석이 오기 전 성함이 적힌 말뚝이었다. 어쩌면 엄마의 마지막 말뚝일 것이다. 엄마의 유언을 지키지 못한 딸의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대한 엄마의 위로를 엄마의 이름에서 찾는다. 맑을 ‘숙’ 자가 아닌 잘 ‘숙’으로 말이다.



 나 또한 지금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 과거의 엄마들의 말뚝과 우리 민족의 아픔의 말뚝을 보며 ‘나의 말뚝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한 편의 대서사시와 같은 이 작품이 현재에도 공감이 되는 것은 현재까지의 삶을 일궈내신 이 땅의 엄마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말뚝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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