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아옹 Jan 31. 2024

책 쓰고 나면 늘어지게 쉴 줄 알았는데

새로운 감정이 꿈틀거리네


책이 출간되고 의외로 별로 쉬지 못했다. 언론에서 요청한 작업들과 아이 방학, 밀린 집안일도 있었지만 그 원인 중 하나는 브런치 북 연재였다. 은근히 힘이 들어간 주제라 귀찮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할 만큼 했으니 일단 종료하고 나중에 내 생각이 아이를 키우며 조금 더 견고해지거든 시즌투라도 써야겠다.


최근에는 거의 소설책을 보고 있다. 거의 하루에 한 권씩 보는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는 소설을 열심히 봤지만, 사실 굉장히 오래 소설책을 열심히 읽지 않았다. 왜냐하면 언젠가부터 소설책에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었다. 어쩔 때는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에 책을 덮고 슬쩍 화가 나기까지 했다.


그런데 소설이 무슨 죄가 있을까? 내가 어느 순간부터 이 속세에 찌든 것이 더 문제일 수도 있겠다.



이번에는 소설책을 공부하듯이 보고 있다. 고전에서부터 신간, 베스트셀러까지. 밑줄 죽죽 긋고 열심히 메모를 하고 노트에 적어본다. 특히 고전은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보니 더욱 경이롭다. 그리고 확실히 옛날과는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독자적 관점보다 작가적 관점이다. 왜 이 소설은 반응이 좋았을까. 작가의 의도는 어디서 어떻게 배치되나. 마치 입시 논술 준비하는 수험생같다.


사람들이 다음에는 뭘 쓸 거냐고 물어본다. 겨우 책 한 권 내서 작가라는 호칭이 매우 어색한데 차기작을 고민해야 하다니. 물론 그런 기대를 해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과연 내가 다음 책을 또 쓰기는 할까?


일이라는 건 처음이 어렵지, 한번 해보면 그다음은 비교적 쉬워 보인다. 한번 이야기를 꺼내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책 한 권으로 끝날 것이 아니었다. 마치 문만 열면 옷들이 바로 쏟아져 나올, 가득 찬 옷장 같다. 나에게 뭐 이리 해묵은 이야깃거리가 쌓여있었던 걸까?



더 생각해 보니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랄까. 분명 현실에 대한 이야기인데 너무 어구망창해서 이거 소설 아니야 싶은 것들이라.


게다가 이번 책을 쓰고 분명히 깨달은 점이 있다. 역시 사람들은 논리로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 염두했지만.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화법, 예컨대 ‘내 말이 역시 맞지?’ 같은 화법은 불편함과 거부감을 더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건 아주 불편한 일이다. 결국 간접 화법으로 전달하는, 소설이라는 수단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과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이건 마치 내가 2년 전에 ‘내가 작가도 아닌데 책을 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 질문과 또다시 만난 거다.





아마도 나는 이번에도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절절하게 실감할 것이다. 소설, 내가 기어코 그 창조적이고 어려운 세계에 덤빌 생각을 하다니. 내가 목표가 생기면 열심히 파고드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건 좀 결이 다르다. 쌩판 초보자고 가능성도 기약도 별로 없다. 그리고 창작의 고통은 겪어보니 아직 풍성한 내 머리숱에 탈모가 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걸 알면서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리도 맹목적으로 만들고 있을까? 여러 가지 단어가 떠오른다. 본능? 운명? 이타심? 아니면 나도 잘 모르는 어떤 욕망? 그 정체를 아직 잘 모르겠다. 다 써보면 알 것 같기도 하다. < 맘카페라는 세계 > 책을 쓰고 나서도 한 단어로 결론을 내렸다. 사실은 내 안에 생각보다 깊은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아무튼 긴 배움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죽기 전에 소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 나 자신을 믿어보며. 오늘도 겸허하게 배우는 자세로 소설 한 권을 읽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