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아옹 Oct 17. 2023

러닝을 하다가 뱀과 마주쳤다

무지, 공포, 혐오의 상관관계

다섯 달 전,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아침에 남편과 애들을 보내고 동네 천변을 뛰러 갔다.


원래 바깥 운동을 나갈 때는 스피커 밖 소리도 같이 들을 수 있는 골전도 이어폰을 착용하는데, 그날따라 손에 헤드셋이 잡혔다. 헤드셋의 차음력은 음악에 집중하기 좋지만 그래서 가끔 야외에서 아주 위험한 물건이다.


커다란 헤드셋을 끼고 한참 걷고 뛰던 중에 음악을 바꾸려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뒤에서 “저기요 저기요!! “ 하고 누군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나는 무심코 발밑을 보았는데 내 눈을 의심하고 싶었다. 그것은 이었다. 그것도 아주 기다란 녀석이 바로 코 앞에서 똬리를 뱅글뱅글 틀고 있었다.


여기는 분명 도심인데 뱀이라니?라고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 내가 세상에서 별로 무서워하는게 없는데 딱 하나 싫어하는게 있으니, 뱀이다. 그 뱀을 실물로 맞닥 뜨린 건 난생 처음이었다. 나는 동물원에 가도 파충류 우리에는 절대 얼씬도 안 한다. 그러니 끼아악 끼아악 호들갑스러운 비명이 절로 나왔다.


그 뱀을 본능적으로 폴짝 뛰어넘어 내가 뛸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뛰었다. 한 1킬로미터 가까이 쉬지 않고 전력으로 질주했을 거다. 그 상황에서 내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던 Blur의 올해 신곡, <The Narcissist> 노래의 나른함과 직면했던 공포의 괴리감은 아주 오래 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천변은 내가 20년 전부터 운동을 하던 곳이다. 가끔 뱀이 출몰한다고 말로만 들었지, 그것도 벌건 대낮에 만날 줄 몰랐다. 나는 집에 오는 길에 약국에서 청심환을 사 먹었고 그렇게 운동은 슬럼프로 꼬라박았다.




작년에는 정초부터 운동을 꽤나 열심히 했다. 일주일에 다섯 번은 한 시간 이상씩 꾸준히 했으니. 내 평생에 이렇게 자발적으로 운동한 적은 절대로 없었다. 내가 얼마나 움직이기조차 싫어하는 사람인지 에피소드만 엮어도 책 한 권짜리일 텐데. 읽어주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쓰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런 내가 개과천선을 한 계기는 역시나 건강에 생긴 이상 때문이었다. 해가 바뀌자마자 아침에 도저히 일어날 수 조차 없는 느낌이 이상해서 병원에 갔었다. 거기서 의사 선생님 가라사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죽는단다. 그냥 환자에게 충격 좀 받으라고 의례적으로 하는 말씀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토끼 같은 내 새끼 둘을 놔두고 죽을 수 없는 사람이다.


나의 타고난 운동신경과 체력은 없을 무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의지를 갖고 시작하니 꽤나 재미를 붙였었다. 덤벨로 홈트레이닝도 하고 헬스장도 다녔다. 기구의 무게도 살살 늘려보고 나에게도 근육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 주변에 자랑했다. 운동에 별 관심 없는 사람에게 한없이 따분한 이야기인걸 알면서. 입이 그렇게나 간질거렸다.


자랑이라기보다 기묘해서 조금 더 적어본다. 가장 재미를 붙인 건 밖에서 뛰는 러닝이었다. 뛰다 걷다가 하는 수준이라 제대로 하는 사람에 비하면 턱도 없다. 그래도 숨이 가파오는 그 쾌감을 조금 알아버렸다.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서도 다녀오고, 여름철 비가 올 듯 말 듯해도 뛰쳐나갔다. 어느 날에는 갑자기 쏟아진 비를 맞으며 꿋꿋하게 뛰는데 머리에 꽃만 꺾어서 달면 딱이다 싶었다. 세상에. 은은하게 미치는 느낌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원래 나의 올 초 야심찬 목표는 가을쯤 러닝대회에 참가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책을 쓰는 작업도 있고, 처음으로 학부모가 되어 어리바리했던 것도 있고, 여러 비겁한 핑계로 운동 루틴이 깨졌다. 운동을 일주일에 너 다섯 번 했던걸 겨우 한 번이나 두세 번 했나 보다.


거기에 몇 달 전 그 뱀과의 조우 사건 이후로 바깥에서 뛰는 건 완전히 놓아버렸다. 헬스장은 간간히 나갔지만 난 트레드밀에서 뛰는 걸 정말 싫어한다. 영 다람쥐 쳇바퀴 도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심박수도 잘 오르지 않고 이상하게 퍽 지루해서 기구에서 빨리 내려오고 싶다.


사진조차 보고 싶지 않아 남편에게 대신 검색을 부탁했다. 뱀이 언제 겨울잠을 자러 가는지, 언제쯤 안심하고 운동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알아보니 정말로 겨울이나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겨울까지 어떻게 기다리는가? 확실히 요 몇 달 사이 몸이 이미 둔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지난주부터 다시 천변으로 나가고 있다. 여름이 다 지나 무성해진 수풀 속에서 난데 없이 뱀이 튀어나올 것 같아 잔뜩 긴장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눈팔지 않으며 길에 집중하는 수 밖에.


나는 뱀을 웬만하면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도 다음에 혹시나 마주치면 지난번보다 덜 당황하고 차분히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무지가 공포심이나 혐오를 낳는다. 그렇다고 뱀이라는건 굳이 또 보거나 잘 알고 싶지 않은 존재지만. 어쩌다 몇번 마주치면 서로 까꿍 하고 제 갈길을 갈 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 평생에 극복해 볼 만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생각해 보련다. 오랜만에 운동을 했더니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그래도 이제 좀 살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20년 전 장국영이 죽었던 그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