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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옹 Mar 27. 2023

20년 전 장국영이 죽었던 그날

그리고 나의 days of being wild





** 이 글에는 영화 <아비정전>과 <패왕별희>, <동사서독> 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이었다. 내 오랜 친구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데 참으로 만나기 힘든 친구가 있다. 이 친구를 거의 6년 만에 만나 낮부터 맥주를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장국영이 죽었던 그날에 대한 기억을 같이 떠올린 적이 있었다.


2003년 4월 1일. 우리는 19살, 고3이었다.


그날도 대치동 학원에서 짝지 같던 내 친구와 나는 우리의 고정석인 교실 맨 앞 왼쪽에 나란히 앉아있었을 것이다. 사실 나의 그날의 기억은 희미하다. 그래서 내 친구 중에서 가장 코끼리같이 놀라운 기억력을 자랑하는 그녀의 회상에 의존해 본다.


누군가가 학원 교실 문을 열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신문 1면을 보여주며 말했더란다.


장국영이 죽었다. 그것도 투신자살을 했다.


거짓말인가? 그 말을 듣고 그런 생각부터 스쳤을 이유는 그날이 4월 1일 만우절이었기 때문이다. 까칠한 고3이였던 나는 쓸데없이 누가 장난질을 하나 생각했을거다. 하지만 그 말이 곧 진실임을 알았을테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 친구도 역시 거짓말 같아서 증거라고 신문을 손에 들고 왔을 거다.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비보에 교실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멍하니 뒤를 돌아봤다고.


공교롭게도 그날은 만우절이었기에, 많은 이들은 지금도 이렇게 회자하고 있다. 장국영의 사망 소식은 거짓말보다 더 거짓말 같았다고. 말이다.




장국영이 죽었을 때만 하더라도 장국영에 대한 나의 기억은 단편적이었다. 80년대 한복판에 태어난 나는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직접 누린 세대가 아니다.



내 어릴 적 장국영에 대한 기억은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반일 것이다. 토요일이 없던 그 시절, 나른하던 일요일 오후에 아빠가 러닝 바람으로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티브이를 틀면 나오던 홍콩 영화들. 하모니카 소리로 시작하는 <당년정> 노래. 내한하여 우리나라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모습. 그리고 비를 쫄딱 맞고 공중전화 박스에서 서성이던 모습의 투유 초콜릿 씨에프. 그것이 나의 장국영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의 거의 전부다.


그런 내가 장국영이 죽은 그다음 해인 스무 살에 홍콩영화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한참 유행이 지난 홍콩 영화에 대한 몰입은 떠나 보내놓고 그제서야 사랑인 줄 깨달은 상황 같기도 하다. 마치 왕가위 영화들에서 반복되는 그 메세지처럼 말이다.


어느 날 그 시절 지하철 2호선에 많이 걸려있던 광고 카피 문구 중에 ‘사랑의 유통기한은 통조림보다 짧다.’는 말을 보았다. 그 말 뜻이 한참 뒤에 궁금해져서 인터넷 검색창으로 찾아보게 된 <중경삼림>이 홍콩 영화에 대한 열병의 시작이었다.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임청하


대학교 새내기였던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나는 곧장 집으로 왔다. 그리고 컴컴한 골방에 혼자 틀어박혔다. 아빠가 지방으로 발령 나서 나 빼고 가족들이 아무도 없던 우리집. 학교 수업이 없는 날에는 해가 중천에 떠야 눈을 뜨고 밥도 먹지 않은 채로 영화부터 틀었다.


가끔은 술도 사와서 혼자 마셨다. 스무살이 되니 술을 참 쉽게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주로 먹던 안주는 프링글스 어니언 맛이었다. <중경삼림>의 파인애플 통조림과 프링글스 어니언 맛은 초록색 원통 모양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점에 끌려서 의도적으로 고른건 아니었지만. 나는 <중경삼림>의 223 마냥 알딸딸한 기분에 취해 내리 수십 편의 홍콩 영화를 보고 또 봤다.


<중경삼림>이나 <아비정전>, <화양연화> 같이 유난히 좋아했던 영화는 콕 집어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대학 입학 이후에 찾아온 건 단순한 무력감이 아닌 번아웃 증후군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걸 남들에게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 마음이 힘든 걸 드러내 보이는 게 싫었다. 가장 재미있어야 할 캠퍼스 새내기 생활은 하나도 설레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홍콩 영화에 대한 탐닉은 그 해소창구였다.



스무 살의 그 해 가을 왕가위 감독의 영화 <2046>이 영화관에서 개봉했다. 내가 왕가위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아비정전> 그리고 <화양연화>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라니. 개봉 전부터 많이 기대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 혼자 영화관에 가서 조조타임으로 보았다.


영화 장면마다 좋은 점은 있었다. 나에게 왕가위 영화는 장면 하나하나에 배역의 시점에서 몰입하며 보는 재미다. 다른 배역에는 집중할 수 없었지만 왕페이 역의 호텔 주인 딸이 나오는 장면은 그런 의미로 빠져들어서 봤었다.


그런데 영화 전체적으로 나의 큰 기대보다는 어딘가 살짝 미묘했다. 혼자 나름대로 왕가위 영화들의 마지막 퍼즐을 맞춰보려는데 그게 잘 안되었다. 나는 그때 겨우 스무 살이었다. 그래서 아마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느껴져서 다행이었다. <2046>을 보고 난 후 영화를 보고 난 후 밤낮이 바뀐 폐인 같은 생활, 나의 여러 소소한 일탈들, 나의 days of being wild를 정리해야겠다고 비로소 마음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장국영이 출연한 <영웅본색>, <천녀유혼>, <동사서독>, <춘광사설>, <종횡사해> 등의 여러 필모그래피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단연 <아비정전>이다.


<아비정전>은 장면이 하나하나 미려하고 예쁜 영화다. 영화 오프닝의 숲이 펼쳐지는 장면부터 하나하나 매료되어 얼마나 영화를 반복해서 돌려봤는지 세어 보지도 못했다. 나중에는 그 영화의 장면들이 존재하지 않는 나의 진짜 경험으로 여겨질 지경이었으니. 그 오후 3시 같은 기억이 마치 내 기억 속에서 나의 영원처럼 남겨져 있을 정도였다.



왜소한 몸으로 풋풋하게 맘보춤을 추던 장국영이 등장할 때 나오는 Xavier Cugat의 <Maria Elena>는 아직도 가끔 오후쯤 늘어지는 느낌이 들어 잠깐 쉬고 싶을 때 틀어놓는다. 그러고 보면 <Sibonney>나 Astor Piazzolla 등 라틴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도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 때문일 거다.



장국영은 수려한 외모에 가수까지 활동한 재능 많은 스타였다. 외모에 재능이 가려질 법도 하지만. 나는 역시 그의 연기를 가장 좋아했었다.


<패왕별희>의 클라이맥스인 인민재판 장면은 먹먹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당했던, 가면 같은 경극화장이 뭉개져 드러나는 진짜 얼굴의 그 표정. 장국영의 그 얼굴이 한참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마치 그 험한 꼴을 내가 직접 겪은 것 같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며칠을 시달렸다.



그리고 <동사서독>의 맨 후반부를 빼 놓을 수 없다. 기억을 잊게 해준다더니 오히려 기억을 더 또렷이 만들어준 마지막 취생몽사 술을 마저 비우고 사랑했던 여인을 끝내 잊지 않으며 악인으로 각성하는 모습.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 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라는 대사. 그리고 그 직전에 사랑했던 지난 날의 추억 속에서 그 아련한 표정과 대비되던 그의 연기도 나에게 오래 남아있다.




나는 매년 4월 1일에 <아비정전>을 본다. 어느 날 매년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오후 3시라는 시간을 정해놓고 소려진을 찾아가는 아비같이 느껴졌다. 결혼 전 후쯤부터 <아비정전>을 챙겨보지 않다가 재작년부터 나는 4월 1일에 <아비정전>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언젠가 그 시절 좋아했던 <중경삼림>을 다시 봤다가 이제는 그 감성을 따라가기가 벅찬 걸 깨닫고 서글퍼졌지만. 그래도 <아비정전>은 여전히 좋고 또 좋다.


올해로 장국영이 죽은 지 20주기가 돌아왔다. 나의 친구가 마치 엊그제 일처럼 시시콜콜하게 읊어준 그 일이 벌써 20년 전이라는 사실은 낯설게 느껴진다.


주윤발이나 양조위가 요즘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반갑다. 만약 장국영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나는 궁금하다. 그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장국영의 마지막 모습은 2003년에 머물러있다. 지금 2023년에 살아있었어도,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내 어린 날의 스타를 놓지 못하고 있다. 그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인지, 아마도 나의 어린 날을 그의 영화들과 같이 공유했던 그 기억들인지, 그러니까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방종 사이 쯤에서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던 그 시절을 사랑했던 기억 때문인지. 이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다. 그 이유는 서로 섞이고 희미해졌고 어쩌면 이제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나의 존재하지 않는 가짜 기억이, 그러니까 내 머릿속에 아비가 소려진을 찾아가는 오후 3시는, 매년 4월 1일로 각인이 된걸까? 어쨌든 나는 오는 4월 1일 밤에도 <아비정전>을 볼 예정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 다음에도 아마 계속 나는 그러고 있을 것 같다.


방황하던, 나의 days of being wild였던 그 시절을 영원한 1분과 같이 아름답게 남겨준 나의 스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장국영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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