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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옹 Mar 17. 2023

나의 불멸의 온라인 기록을 시작하며

소제목은 나아옹 더 비기닝이 좋겠다


인터넷에 기록한 내용은 영원히 남는다. 글 쓴 사람이 죽더라도 글은 인터넷 어딘가에 박제되어 황천길의 영혼처럼 떠돌아다닌다. 그래서 나는 오래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을 망설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뭔가 끄적이는 것을 참 좋아했다. 8살 일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매일 조금씩 끄적인다. 12살 쯤되니 내 일기를 선생님께 검사를 맡아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자물쇠가 달린 소녀감성의 일기장은 나의 보물 1호였다. 대단한 비밀이 있는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혼자 조용히 간직하는 자폐적인 글이 좋았다.


그쯤 컴퓨터로 아래아 한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썼다 지우는 게 자유로운 워드의 매력에 푹 빠져 소설이나 각본 같은 장편글을 겁 없이 쓰기도 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큰 야망 없는 나에게 어른들은 소설가, 작가 , 시인 같은 직업을 권유했었다.


재미로 끄적이던 것이 조금 다른 의미로 바뀐 계기가 있었다. 뭔가를 써내려가야 내가 죽지 않고 살겠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잠깐 중학교를 미국에서 다닐 때였다.


겪어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스트레스는 그야말로 숨막힌다. 학교 독서시간에 러시아식 이름에서부터 읽다가 지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책을 펴고, 그 밑에 노트를 깔고 한국말로 끄적이니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끄적이지 못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가장 절정에 달했던 건 고3 때였다. 그때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도 매일 예민하고 불안했다. 내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때마침 2003년 네이버 블로그 서비스의 전신인 네이버 포스트 서비스가 시작했다. 네이버 블로그의 초기 모습은 달력 형식이었고 일기 쓰듯이 적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마치고 잠들기 직전에도 퀭한 얼굴로 컴퓨터를 켜서 거기에 10분 동안 다다다 적어 내려갔다.


그 시절 종이 노트에 끄적인 글들은 전부 어디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디지털 기록은 어딘가에 아주 잘 저장이 되어있었다.


재작년 마치 뭐에 홀린 듯이 내 아주 오래된 네이버 계정에 로그인했다. 그리고 딱 마주치게 되었다. 거의 20년 된 나의 오래된 원형들. 진정 어른이 된 이후 처음으로 그 감성과 마주했다.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내가 썼지만 오그라들어 미칠 노릇이었다. 애써 무의식 저편 어딘가에 묻어버린 기억들. 지나간 세월 뒤에 이제야 보이는 어설픈 마무리였다.


온라인의 기록은 집요했다. 내가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 몇 초에 글을 작성했는지까지 나와있었다. 2003년 X월 X일 XX:XX. 내 깊숙한 곳의 기억의 파편을 끄집어내 이어보았다. 내가 무슨 일을 겪고 무슨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잊어버린 기억이 대부분 생생해졌다.

내 인생 최초의 찬란한 실패의 기록. 19살의 일기의 의미를 20년의 세월이 지나 부여해봤다. 사실 그 실패는 돌이켜보면 누구나 그 시기에 겪는 별거 아닌 일쯤으로 여길 수 있다. 이미 다 지나간 별 의미 없을 기록인데. 나는 모든걸 까맣게 잊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원래 뭐였을까? 뭐가 되고 싶었을까? 내가 원하는 건 뭐였을까?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

 

오래된 일기장을 뒤지고 한동안 그 여운이 가시지 않던 어느 날. 나는 19살 그 시절 친구를 아침 일찍부터 우리 집 앞으로 불러냈다. 멀리 살고 있음에도 단걸음에 달려와준 그 친구는 아침부터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당황해하던 기색이 매우 역력했다. 그럼에도 내 친구 중 가장 평소에 차분하고 침착한 그녀는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 야야. 너 옛날에 글 잘 썼잖아. 회사도 그만뒀는데 웹소설 작가라도 해봐.”


이렇게 오랜 친구는 가끔 나조차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릴 적 성향이나 기호를 기억해 준다. 물론 건어물 같은 내 감성으로 웹소설 작가 같은 건 결코 무리지만 말이다.


네이버 블로그는 싸이월드로, 페이스북으로, 인스타그램으로 대체되었다. 지금도 이따금씩 지인들과 SNS를 이용한다. 주로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아이들은 잘 크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질문의 화답용이다. 그런 의미에서 SNS는 효율적이다. 다만 SNS는 이미지 위주의 플랫폼이라 말이 길어지는 게 부담스럽다. 키보드에서 말이 많아지는 내가 생각을 자유롭게 쓰기에는 그 틀이 너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대학 이후 내가 진지하게 글을 쓰는 걸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10년 간 일했던 내 직업도 글쓰기와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내가 버릇처럼 잠들기 전 의미 없을지도 모를 무언가를 적는 이유는 한결같다. 뭔가 끄적거리지 않으면 마치 내가 어떻게 될 것 같다. 그것 말고는 나는 여태까지 끄적거림에 크게 의미를 부여한 적이 없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나는 죽어서 뭘 남길까? 거대한 우주에서 겨우 미물인 내가 거창한 걸 남기겠다는 건 아니다. 나는 이제 겨우 평균수명의 절반 정도만 살았을 뿐이라. 내 죽음이나 내가 죽어서 남길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내가 죽은 사후가 요즘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온전히 나만 바라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걱정이다.


영어에서 legacy라고 하는, 우리나라말로 유산이라는 말은, 유산이라는 말로 바뀌는 순간 무형적인 의미보다는 물질적인 의미가 더 와닿는다.


내가 아무리 다람쥐같이 재산을 모아 남겨봤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부와 명예만 맹신한 나머지 행복이 될 거라고 착각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곧 행복은 아니라는 것이 그동안 내가 살아온 결론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겨야 할 것은 결국 무형적인 레거시여야 한다.


혼자 보는 문장은 생명력이 없다. 인터넷에 남는 문장은 종이나 도서에 남는 문장보다도 지독한 생명력이 있다. 나는 이걸 이용하고 싶다. 증거를 또렷이 새기고 싶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있었던 일들. 내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증거. 그 정도 되는 소소한 문장이 나 말고 다른 이들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확실한 건 그래도 온라인에 남기면 어느 날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 문장은 어딘가에 남겠지. 이건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거의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이제는 옛날같이 기억력이 쌩쌩하지도 않다. 내가 살아온 기억들이 형체도 없어지기 전에, 지금 당장은 별 의미가 없어도, 언젠가는 나에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이 조금이라도 온전할 때 더 끄적여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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