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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옹 Apr 09. 2024

봄은 사실 아름다운 계절이구나

아름다운 계절의 대명사 앞에서 이 무슨 뻔한 말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부터 사계절 중 봄을 가장 좋아하지 않았다. 난 봄만 되면 상태가 영 이상해진다. 늘 겪었지만 그 이유는 모르겠다. 단순히 계절성 호르몬의 변화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었다.


지난 수 십 년간의 봄을 돌이켜보면 그랬다. 특히 4월만 되면 항상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갑자기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일이 결정된다든지. 이별의 순간을 맞이한다든지. 뒤통수를 뻑 맞는 듯한 일이 생긴다든지. 아니면 방구석에서 꼼짝하기 싫을 무기력증에 시달린다든지. 4월은 나에게도 잔인한 달이었다.


이제는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것조차 귀찮을 옛날 일이지만. 봄에는 항상 그런 일들 투성이었다. 가뜩이나 무거운 기분에 황사와 미세먼지로 희뿌연 공기에 둥둥 떠다녀야 하다니. 머릿속은 더욱 탁해져서 생각만 어지러이 많아졌다.



봄에 대해 마음을 좀 열게 된 건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다. 우리 애들은 사이좋게 둘 다 봄에 태어났다. 큰 애는 봄이 막 시작할 무렵에, 작은 애는 봄기운이 한창일 때 태어났다. 그러고 보니 봄의 막바지에는 남편 생일이 있다. 애들만 언급해 놔서 쓰고 보니 미안해서 적어본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이 맘 때쯤 아이들이 자주 쓰는 말은 “정 씨끼리 봄에 태어났어요.”다. 지난번 내 책에 필명을 정 씨로 써본 이유는 이런 소외감에서 비롯했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꽃이 피었다. 사실 나는 길가에 핀 꽃 이름을 잘 몰랐다. 목련, 벚꽃 같은 대중적인 꽃 이름만 알았다. 애들이 말을 떼면서 길을 가면 항상 “이건 무슨 꽃이에요~?” 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했다. 다행히 요즘은 이미지 검색기능으로 사진을 찍어 넣으면 알 수 있다. 이렇게 나도 봄에는 아이들과 꽃이름 공부를 같이 했다.


아침에 등원하는 길에 꽃 이름을 물어보는 딸아이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는 봄이 우리 ㅇㅇ이가 태어난 계절이라 좋다고. 우리 ㅇㅇ이는 이렇게 꽃이 예쁘게 피는 계절에 태어났다고. 그녀에게 나름 수줍게 고백해 보았지만 “나도 알아~”라고 대답하며 어린이집을 향해 혼자 우다다 뛰어갔다.


오글거리는 감정을 견디지 못하는 이 아가씨는 이럴 때 보면 나를 닮았다. 며칠 뒤 아이는 “ㅇㅇ이 생일에는 꽃들이 더 많이 피겠지요?” 라고 하며 내 말을 기억해 주었다.



지나간 봄 보다도 올해 유난히 봄을 찬양하는 이유는 또 있다. 처음으로 기나긴 겨울방학을 보냈기 때문이다. 나는 큰 아이를 7세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냈다. 방학이 없는 어린이집에 익숙했던 내게 두 달간의 겨울방학이 유난히 낯설었다. 큰 아이는 태어나서 이렇게나 코가 비뚤어지게 쉬어본 적이 없었다.


큰 아이는 아직까지 엄마가 해준 밥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다. 그러니 방학 동안 삼시 세 끼와 간식을 정성껏 챙겼다. 어른인 나보다도 많이 먹는데 왜 이 아이는 꼬챙이같이 말랐는지. 옆에서 같이 먹은 나만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그리고 큰아이는 두달 간의 겨울 방학이 “해피 해피”했노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개학하자마자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바로 동네 천변으로 나갔다. 올봄에 늦추위가 조금 오래갔지만 그곳에는 봄의 기운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는 꽃이 피어나고 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꽃사진을 올리면 중년이라더니. 그 말을 듣고 정말 그런가 보다 했다.


어떤 어머님께서 찍고 계시길래 나도 같이 따라 찍어본 툴립사진


아직도 입에 붙지 않는 만 나이 말고 옛날 나이로 따지면 앞자리가 바뀐 탓인지. 나는 서서히 중년의 행동을 시작하고 있다. 새카만 자외선 차단 선캡으로 자외선이 무섭다고 얼굴을 가리고 동네 천변을 뛰고 걸으며 꽃이 피어서 예쁘다 한다. 이런 행동이 스스로 하나도 어색하지 않으니 어디 가서 당당하게 아줌마라고 하지.


봄은 아이와 엄마들이 가장 예민한 계절이다. 지나간 3월에는 모처럼 아이들에게 바짝 신경을 썼었다. 방과 후 일정을 짜고 학교 총회와 담임선생님과 상담까지 마치니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학교 행사는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엄마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예민이 극에 달하면 혹자들이 엄마들이 유난을 떤다고 입방아에 올리는 말들에 신경을 쓸 여유조차도 없다. 이제는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참 쉽게도 이야기하는 심리를 머릿속으로는 이해하지만.


그렇게 3월이 지나가 조금 안정과 여유를 찾아가니 주변에 꽃이 만개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한창 연애하던 시절 나는 꽃다발보다 소고기를 구워 먹는 게 낫다고 말하는 무미건조한 처자였다.


그런 내가 언젠가부터 계절에 맞춰 가끔 꽃을 사고 있다. 작년 한동안 동네 꽃시장에서 꽃을 사와 컨디셔닝 하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더니 이제는 꽃집에 파는 꽃 이름을 전부 다 안다. 며칠 전에도 황사를 뚫고 보라색 프리지어를 한 아름 사 와서 서재 책상에 꽂아놨다. 눈으로 보는 꽃도 좋지만 그 어떤 디퓨저나 향수보다도 생화 향기만큼 기분을 청량하게 하는 건 없는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도심 곳곳의 벚꽃을 원 없이 보았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으니 벚꽃 향에 살짝 취해 더 좋았다.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가족사진을 많이 남겼다. 제 수명대로 산다면 그 절반이 다 와가는 시점에라도 봄이 조금 좋아져서 다행이다.


아직 이 봄이 다 지나가지 않아서 이런 이야기를 쉽게 하는 걸 지도 모르지만. 우리 애들이 없었다면 봄이 좋은 계절인 줄 알지 못한 채 계속 흘렸을거다. 아이들로 사소하고 익숙한 듯 하면서도 새로운 세계가 조금씩 확장되는 재미말이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을 조금씩 알아간다는건, 또 그걸 다시 가족들과 나눌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해피 해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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