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던 과정에 대해
연애가 만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낯간지럽고 새삼스러워서 내 연애에 대해 가타부타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오늘만큼은 연애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앞으로의 세월 역시 한참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중간점검차 써본다.
남편과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만났다. 나는 생일이 늦어 만으로 18살. 재수한 남편은 생일까지 빠른 편이라 20살이었다. 법적으로 성인이라 어른인줄 착각하는 한없이 어리던, 어른과 아이의 중간쯤이었다.
오티 때 본 남편의 첫인상은 참으로 강렬해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도 별말 없는데 내가 집요하게 추궁해야지만 “예뻤다”라고 꼬깃꼬깃 대답하는 걸로 봐서 내가 그저 그랬나 보다. 첫 만남부터 불꽃이 팡팡 튀는 로맨스는 아니었다.
같은 학부, 같은 반이었던 우리는 1학기가 끝나갈 때쯤이 되어서야 서로 말을 처음 해봤다. 어쩌다보니 우리들은 가장 많이 수다를 떠는 친구였고 가을이 한참 지날 때쯤부터 사귀고 있었다.
시간은 잘 흘러서 연애 10년째가 되니 이제는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을 했다. 아이를 눈코 뜰 새 없이 키우며 40대에 접어들었고 내년이면 결혼 10주년이 된다.
20년의 세월 동안 있었던 일들은 이제는 다 기억할 수 없다. 우리가 서로 무서워하는 질문이 있다. 몇 년도에 그날 어디서 뭐 했는지 물어보며 서로의 기억을 디테일하게 떠보는 거다. 기억을 못 한다고 섭섭해하기보다 이제는 까먹었다며 놀려먹는 재미다.
대하소설같이 다 쓸 수는 없지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거나 하소연하는 성격이 못되어 드러내는걸 꺼려했다. 우리의 연애도 늘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지 않았다. 다른 연인들과 비교해 거의 싸운 적은 없었지만 싸웠고, 몇 달간 헤어지기도 했다.
그때는 질풍노도의 시기였지만 돌이켜보면 평범한 나날들처럼 느껴지는 건 세월의 마법일 거다. 마치 색조가 옅고 채도가 낮은 필름같은 기억들이다.
누군가가 종종 어쩌다가 그렇게 오래 연애를 했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우리가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성격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나마 남편이 성격이 좋은 편이고 나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서로 첫 연애였으니 세상의 풍파를 덜 맞고 애정사로 마음고생을 덜 했음에 대해서 감사할 뿐이다.
그래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건 이 연애를 지키려고 서로 많이 노력했었다. 그건 서로를 향한 마음도 있지만인간적인 성장이 뒤따라야했다. 누군가 미숙한 채로 머물러있었다면 이 연애를 지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가끔 서로만 말이 통하는 것 같은 순간이 많았다. 우리는 요즘 말로 티키타카가 잘 되는 편이다. 별말도 아닌데 서로의 말에 깔깔거리는 게 일상이었다. 어쩌면 세상에는 우리 만의 언어가 따로 존재하는 걸까?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만의 언어말이다. 그래서 마치 이 드넓은 세상에 우리 둘만 달랑 존재하는 듯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었다.
원래 우리는 서로 아주 다른 존재였을 것이다. 서로 통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조금씩 결이 맞춰졌을 거다. 서로가 머리와 가슴이 경직되지 않은 말랑말랑한 시절에 만났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결혼하고 나서 우리도 역시 굉장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MBTI로 사람을 설명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걸로 따지면 우리는 거의 반대의 성향이다. 10년간 미처 몰랐던 부분을 결혼하며 같이 산다는 건 또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우리의 다른 점은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수용하는 것도 매우 할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연애이야기니 결혼이야기는 나중에 써야겠지만.
사람은 미완이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서로 부족한 점을 효과적으로 채워주는 건 연애였다. 부모 말고도 연인은 서로의 자존감을 확인시켜 주는 존재다.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부족한 점을 항상 지지해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연애를 바탕으로 우리는 성장하고 어른이 되었다.
가장 경계한 건 나의 결핍만을 채우려는 건 욕심이었다. 그 사람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함께 앞서야 한다. 그런 걸 희생이고 손해라고 말하는 현실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하고, 모든 것을 감수하게하는 강력한 동기였다. 그래서 인생사, 어쩌면 세상사의 모든 근원은 결국 사랑이었을 거다.
그렇기에 짝을 만나는 건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형태는 부부가 될 수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 같은 관계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우리는 연인들만이 느끼는 화학적 반응과 작용이 즐겁고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40대로 접어드니 손을 잡고 다니면 흠칫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우리가 그렇게 나이가 들었던가. 우리는 언제까지나 손을 잡고 다닐 수 있을까 싶다. 처음 만날 때부터 새치가 있었던 남편은 머리가 꽤 많이 희끗하고 나도 몇 년 전부터 새치가 나기 시작했다. 언젠가 우리의 얼굴도 우리가 처음 만난 20대의 흔적만 남을 거다.
그래도 서로 늙어가는 과정과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순간을 옆에서 응원해 주고 지지해 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었다.
지나온만큼 세월이 더 지나면 우리는 환갑이 된다.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마음일까? 그 이후에는 어떨까?
무언가 영원히 지킨다는 건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운명에 감사한다. 우리는 여전히 미숙하다. 앞으로도 함께 노력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