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르 전기가 온몸을 뒤덮을 때
노트북에는 정해진 사양이 있다. 노트북의 성능에 따라 문서용, 그래픽용, 전문가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구매한 나의 노트북은 문서용으로 타고 태어났다. Intel Core i3를 달고 태어난 이 아이는 확신의 문서용 노트북이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문서용으로 태어나 그래픽용으로 사용됐다. 포토샵과 프리미어를 돌리고 또 돌리며 이 아이를 혹사시켰다. 노트북은 이러지 말아 달라는 (응답 없음)을 무수히 외쳤지만, 나는 끝끝내 노트북의 외침을 외면했다.
종국에는 노트북에게 ‘애프터 이펙트 한 번 돌려보지 않을래?’라는 정말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이 아이에게 애프터 이펙트를 돌릴 수 있겠냐고 묻는 건 이제 막 태어난 지 열흘도 안 된 아기에게 걸어보라고 하는 것을 넘어서 뛰어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요구이다. 나의 비상식적인 요구에도 노트북은 최선을 다해 애프터 이펙트를 감당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정해진 사양을 훨씬 뛰어넘는 작업은 당연히 해낼 수가 없었다. 애프터 이펙트를 겨우겨우 켜도, 한 작업을 하는데 수 분이 넘게 걸리다가 매번 (응답 없음)을 내비치고는 꺼졌다. 결국 노트북은 장렬히 사망했다. 처음과는 현저히 느린 속도로 모든 것을 힘겨워했다. 그만 놓아 달라는 (응답 없음)을 내비치고 또 내비쳤다. 나는 그 무수히 많은 외침을 오래도록 외면했다.
인간에게도 정해진 사양이 있다. 각자에게는 수용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한계라는 것이 있다. 이 스트레스의 한계가 곧 인간의 정해진 사양이다. 이 사양을 넘어서는 스트레스를 축적하게 되면 인간도 (응답 없음)을 외치게 된다. 그렇기에 스트레스가 한계치를 넘지 않게 꾸준히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응답 없음)을 외치지 않게 스스로의 사양에 맞춰 사용해야 한다.
나라는 인간의 정해진 사양을 수치화해 보면 그래픽용 정도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 사양이 전문가용을 뛰어넘는 초고사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스트레스 잘 안 받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하는 고3, 재수생일 때 조차도 “난 괜찮은데? 할 만 해!”라며 부정을 모르는 긍정 인간으로 살았다. 긍정 인간인 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며 웃어넘겼다. 그리고 한순간에 몸이 고장 났다. 수능이 끝나고 얼마 안 가 논술을 준비하던 와중에 귀에 찌릿하고 전기가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어폰에서 누전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전기가 오르는 느낌이 귀에서 목으로, 목에서 팔로, 팔에서 배로, 배에서 다리로 차츰차츰 퍼져 나갔다. 온몸으로 전기가 올랐다. 나의 온몸이 나를 향해 (응답 없음)을 외쳤다.
유일한 도피는 잠을 자는 것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야. 처음엔 그랬다. 처음엔 조금만 자고 일어나도 금세 괜찮아졌다. 그리고 또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갑자기 온몸에 전기가 확 올랐다. 전기가 오르는 순간은 매우 불규칙했다. 장소도, 시간도, 감정도 그 어떤 것도 상관없이 한순간에 갑자기 전기가 올라 쿡쿡 나를 찔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기는 나를 더 자주 찾아왔고, 더 오래 괴롭혔고, 더 긴 도피를 요구했다. 전기가 또다시 오르면 지난번보다 조금 더 오래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졌다. 그렇게 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 자주, 더 오래 잠을 자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리 오래 자도 계속해서 온몸에 전기가 올랐다. 도무지 외면할 수 없어서 종합 병원을 찾아갔다. 처음엔 어느 과를 가야 할지 몰라서 가정의학과를 찾았다. 그랬더니 신경에 이상이 생겨 전기가 오르는 느낌을 받는 걸 수도 있다며 신경과로 가게 됐다. 신경과에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비싼 검사들을 이것저것 받았지만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그러자 최종적으로 정신과로 가게 됐다. 쭈뼛쭈뼛 정신과를 찾은 나는 두꺼운 테스트지를 손에 쥐고 도망치듯 집에 돌아왔다. 두 가지 마음이 내 안에서 자랐다. ‘정신과를 다닐 결심을 하다니 너무 잘했어’라는 부드러운 마음과 ‘혹시 이 기록이 나중에 나의 발목을 잡으면 어떡하지?’하는 날카로운 마음이 동시에 튀어 올랐다. 이런 나의 고민을 순식간에 잠재운 건 저릿저릿한 고통이었다. 원인 모를 전기와 한평생을 살 수 없기에 나는 단숨에 모든 항목들에 답을 하고 테스트지를 제출했다.
검사 결과 나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라고 했다. 조금 더 오래 이 (응답 없음)을 무시했으면 어쩌면 우울증에 도달했을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내 몸을 관통하던 전기는 아마도 내 몸이 나를 지키기 위한 외침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이 결과를 받아 들고도 또 한 번 나의 정해진 사양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 “제가 예민해요? 저 완전 둔한데요.” 그러나 차츰 나의 예민함을 받아들이게 됐다. 인지하지 못했어도 그냥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생각하려고 했다. 그러자 한동안 전기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몇 주 전 오랜만에 전기가 또다시 올랐다. 5년 만에 찾아온 감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온몸에 전기가 오르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나는 왜 내 몸에 전기가 올랐는지 알고 있다. 지금 나는 내 사양에 넘치는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나 보다. 생각보다 취준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온몸에서 보내주는 (응답 없음)을 통해 인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사양에 맞게 나를 돌보기로 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여유를 주기로 했다.
#찬란한 추락 #첫 번째 칸 #나의 이야기 No.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