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새 페미의 섹슈얼리티 탐구 칼럼 #7
인스타그램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남편에게 곡을 만들어 선물한 소식을 보았다. 너무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노래를 들으며,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전애인이 5주년 선물로 나만을 위한 곡을 만들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 작곡과 작사를 하고, 노래와 연주를 해서 녹음하고 믹싱까지 해준 건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때 그 곡을 SNS에 올리고 싶어서, 과장 좀 보태서 백 번 정도는 그를 졸랐다. 선물이라고 말 안 하고 노래만 올리면 안 돼? 익명 계정으로 올리면 안 돼? 사운드 클라우드에만 올리면 안 돼? 왜 안 돼? 나한테 선물 준 거니까 내 맘대로 할 수 있지 않아? 그는 완강하게 올리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했고, 나 역시 연애사실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올리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그게 맞는 판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곡을 자랑하지 못 한 건 정말 아쉬웠다. (지금 이 글도 자랑하고 싶은 욕망의 실현일 수도 있다. 곡은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곡을 선물 받았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니까...) 사실 ‘기념일에 애인이 직접 만든 곡을 선물 받았다’는 사실에 포함된 맥락을 함께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이만큼 사랑받고 있어, 내 애인은 이만큼 능력 있어, 게다가 이렇게나 나를 신경 쓰고 이렇게 멋있게 표현해, 우리 정말 예쁜 연애를 하고 있어, 5년이나 만났는데 마음이 변하지 않았어, 같은 이야기들 (물론 ‘전’ 애인이라고 밝힌 것처럼 결국 언젠가 마음은 변했고 헤어졌다)
나는 정말이지 ‘인스타인간’이다. 거의 모든 일상을 실시간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읽고 있는 책, 맛있게 먹은 음식, 놀러 간 곳, 내가 겪은 좋은 일도 슬픈 일도 자주 업로드하고, 친구들과 동료들의 소식도 리그램하고, 흥미롭거나 화나는 소식도 코멘트를 덧붙여 공유한다. 게다가 2018년부터 SNS 마케팅을 업무로 해왔고, 페미니즘 활동과 비건 가시화, 개인적인 사이드프로젝트까지도 모두 인스타그램을 활용해 왔다. 내 인스타그램은 복합적인 나를 드러내는 판이자, 홍보 수단이고, 수집보드인 동시에, 내 포트폴리오다. 이 글에 대한 홍보도 인스타로 할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렇게나 인스타그램 헤비 유저지만 연애 전시는 항상 망설인다. 그건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스무 살 무렵 멋모르고 페이스북에 ‘연애 중'을 몇 번 올리고 내렸던 적이 있다. 연애를 시작하고 일정 시간이 지났는데도 프로필의 관계 상태를 바꾸지 않으면, 그 연애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고 솔로인 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화였다. 그래서 연애 중으로 바꾸면 '연애 중' 포스트가 떠서 팔로워들이 서로 알게 되고 축하 댓글도 달 수 있는 그런 식이었다. 전남친 중에서는 같이 찍은 사진을 프로필로 하거나 연애중을 올리지 않으면 섭섭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헤어지고 나서 연애중 상태를 또 바꾸고, 사진도 모두 골라 내려야 하는 작업은 너무 번거로웠다. 더 문제는 내가 연애를 한 번만 한 게 아니라는 거다. 연애중 내리고 몇 주 뒤에 다른 사람과 연애중을 올리는 것도 좀 그랬다. 그런 일을 몇 번 겪은 후로는 오래 사귀는 게 아니라면 SNS에 연애소식을 올리는 데 좀 신중하자고 생각했다. 되돌아보니 정말 남미새다운 실수와 깨달음이었다. 그때 팔로워가 많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다.
그리고 탈코르셋 운동이 한창일 때는 '혐애' 전시라고 욕먹을까 부끄러워서 못 올렸다. 페미니스트가 된 것과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서로 모순되고 충돌된다고 느끼던 때였다. 리버럴 페미니스트들과 가까워진 다음에도, 나는 퀴어 정체성을 가진 바이섹슈얼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에 헤테로 연애를 전시하는 게 '굳이?'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픈 페미니스트인 나의 헤테로 연애 사실은 뭐랄까, '오프더레코드' 같은 주제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헤테로 연애를 하는 많은 퀴어 페미니스트들이 럽스타그램을 잘하지 않는다. (물론 예외도 있다) 게다가 퀴어가 아니고 공개적인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20-30대 여성들은 의도적으로 SNS에 남자친구와 남편 이야기를 하지 않는 전략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독립적으로 낼 수 있는 전문가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인생의 큰 이벤트인 결혼사진 등은 예외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그 여성이 몸담고 있는 필드마다 다르겠지만, 남성 파트너를 드러내는 순간 자신의 매력과 신뢰도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거나, 사생활 노출 등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아직도 여성혐오적인 문화가 남아있는 일부 업계에서는 '여성이 결혼하면 감이 떨어진다'거나 '결혼생활에 집중해야 해서 새로운 일을 책임감 있게 맡을 수 없을 것이다'란 (말도 안 되는) 편견이 존재하고, 더 좋은 기회를 유부녀보다 미(비)혼인 여성에게 제안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조금 자의식 과잉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의 영향력을 의식하기도 했다. 연애할 마음이 없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던 후배가 내가 연애 전시한 것을 보고 ‘저 언니도 페미니스트인데, 좋은 (것처럼 보이는) 한국 남자를 만나서 잘 연애하잖아' 하며 헤테로 연애를 시도했다가 정말 나쁜 일을 당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드는 거다. 교제폭력과 살인이 쉼 없이 일어나는 여성혐오 사회에서는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야, 좋은 남자도 있어'라는 메시지가 필요한 동시에, 그 메시지 때문에 위험에 처하는 여성들이 실재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잘리고, 악플세례를 받으며, 행인에게 맞기까지 하는 세상에서 ‘오픈 페미’로 살아가며 자신의 삶을 전시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나 역시 조신하고 똑똑한 남편(또는 동거인)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는 페미니스트 선배, 친구, 지인들을 보면서 나의 욕망을 확인한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커리어나 취미생활, 인간관계 등 모든 게 은연중에 내 삶의 레퍼런스가 된다. 그리고 나 역시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계산적이고 전략적인 판단 속에서 나는 내 연애 사실을 전시하지 않았는데도, 때로 마음껏 연애전시를 하는 이들이 계속 부러웠다. 대체 연애란 무엇이고, 럽스타그램이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을 공개하고 인정받고 싶어 할까? 사람들이 럽스타그램으로 주로 올리는 콘텐츠의 내용을 보면, ‘사회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여성’의 모습을 한 채 ‘이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남자친구의 시점’으로 촬영된 사진이나 영상이 대부분이다. 연애를 전시하고 싶지만, 이렇게 가부장제에 그대로 편입하고 성별 이분법적인 편견을 강화하는 연애의 모습을 전시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럼 실제로 나의 내 연애는 그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가 ‘여성’이라는 젠더를 입고 나의 이성애 연애를 드러내는 것은 그 행위 자체만으로 성차별을 재생산하는 데 조금씩은 기여하고 만다. 이 글 역시 그런 글이 될까 봐 걱정이다. 기존의 질서에서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내딛는 걸음은 무결하고 완벽할 수 없다. 내가 완벽한 비건이고 완벽한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스스로 비건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것이 아니듯, 내가 전시하는 나의 삶과 연애 역시 완전무결하지 않다. 나처럼 모순이 가득한 자, 세계의 언어와 자신의 언어가 끊임없이 불화하는 자, 경계에 있는 자, 그래서 더 쉽게 공격받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말과 행동을 검열하고 공격하는 자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 편에 서고 싶은지, 우리는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남미새 페미’ 7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