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온몸이 너무 긴장했다가 풀어져서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에는 마치 요가가 끝났을 때처럼 멍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몰입했는데, 이렇게 강렬한 영화는 오랜만이라 미쳤다는 말부터 나왔다.
플롯부터 연기, 미술, 샷디자인까지 무엇 하나 거슬리는 부분 없이 사람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주제의식과 별개로도 너무 훌륭한데, 주제의식이 화룡점정처럼 맞물리니 엄청난 쾌감과 충격을 경험했다.
이 영화는 늙음-젊음이나 외모 문제를 넘어, 많은 이들이 겪는 '자기혐오'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꼈다. 내 안의 나들이 겪는 이 치열한 갈등은 다른 그 어떤 갈등보다 강력하고 파괴적이며,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다.
각자의 마음속에 실현 불가능하지만 늘 꿈꾸게 되는 '이상적인 나'(수)가 존재하고, 동시에 현실에서 주름과 피부 트러블과 군살을 가진 채 노화와 변화를 겪는 '부족한 나'(엘리)가 존재한다. 그 둘의 간극은 사람을 끊임없이 미치게 만든다.
서브스턴스가 없는 우리도 호르몬 변화에 따라 건강하고 생기 있다고 느끼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쇼파와 침대에 파묻혀 폭식을 하는 날이 있지 않은가. 약속을 앞두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고치다가.. 그날따라 얼굴이 너무 붓거나 피부가 안 좋거나 살이 찐 것 같아서 도저히 약속을 갈 수 없겠다는 생각에 '몸이 안 좋다'며 약속을 취소한 적이 있다. 꼭 데이트가 아니라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여도 그랬다. 나를 예쁘다고 생각하거나 예쁜 시절의 나를 봤던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일수록 더욱 그랬다.
그래서 엘리가 결국 약속을 나가지 못하는 장면에서 남성과의 데이트였다는 점이 살짝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중요한 설정이기도 했다. 영화 전반에서 남자와의 관계는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도 갈등의 코어는 아니다. 남성과의 관계가 아닌, 남성에게 욕망당하고, 예쁘다는 평가를 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본인의 욕망이 코어다. 상대 남성이 누구인지 어떤 욕망을 왜 가졌는지보다 중요한 건 그 남성과의 관계에서 여성 주인공이 가진 욕망과 그 욕망의 좌절이다. 다른 존재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 때문에 엘리는 욕망을 실현하지 못 하고, 수에게 모든 기회와 시간을 내어주는 동시에 빼앗긴다. 그 지독한 자기혐오의 굴레가 처절하면서도, 단전에서부터 공감이 우러나왔다.
수가 7일 약속을 처음으로 어기게 되는 순간에도 남성과의 섹슈얼한 스킨십이 있었고, 엘리가 약속에 나가지 못하는 것도 남성과의 데이트였으며, 엘리를 자르고 수를 캐스팅한 것도 그 주주들도 다 남성들이다. 여자는 그 남자를 욕망하는 게 아니라, 그 남자들의 욕망과 인정과 승인을 욕망한다. 그게 있어야 성공할 수 있고, (이는 현실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이는 인식의 영역이다) 꽃다발 속 메시지가 계속해서 눈에 아른거리는 건 그 현실과 믿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우리를 자기혐오로 빠지게 하는 거다. 외모가 아니라 커리어, 돈, 명예, 그 모든 것이 그렇다. 그중에서 여성의 인생을 가장 많이 갉아먹는 (수가 엘리의 몸을 갉아먹듯) 부분이 바로 외모 문제다. 개인이 정신력으로 해결하기에 이 외모에 대한 억압은 너무 크고 강력한 사회문제다. 외모에 따른 자기혐오적인 상태와 불안은 실제로 많은 산업을 지속가능하게 한다.
남들에게 보이는 직업이 아님에도 미용 교정을 하는 사람은 많다. 속눈썹 연장부터 눈썹문신, 손발톱 관리, 겨드랑이/팔다리 제모를 하는 사람은 흔하다. 눈이 작으면 쌍꺼풀, 코가 낮으면 코성형, 통통하면 다이어트와 운동, 얼굴 살이 처지면 경락이나 울쎄라를 고민하고, 튀어나온 살이 신경 쓰이면 부분 지방흡입할까, 니들샷이 피부에 좋다더라, 이런 이야기는 계속해서 들려온다. 시술과 성형을 하지 않더라도, 운동과 쇼핑과 여행과 보정으로 끊임없이 더 나은 버전의 나를 연출하기도 한다.
이 모든 시도가 사실 내 안의 더 나은 버전의 나와 현실 버전 나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안간힘인데, 역설적으로 이렇게 나를 꾸미고 연출하면 할수록 나 안의 간극은 커져간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나와 진짜 나는 다른 사람인 것 같을 때, 끝없는 외로움과 속이고 있다는 불안 속에서 내면은 괴물처럼 복잡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어떤 게 나인지 헷갈리고, 자아상은 계속해서 무너진다. 아름답고 잘 관리할 때의 나와 그렇지 않은 나에 대한 사회의 태도와 반응이 달라질 때, 나는 나와 더욱더 불화한다.
나는 순수하게 자기만족인데? 건강을 위해 하는 건데? 하는 순간에도 그 건강한 몸이 곧 아름답고 멋지고 생기있는 몸이라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그 아름다움을 승인하는 건 타인이고, 그 시선을 내재화하면서 더 나은 버전인 수가 내 내면에 탄생했던 것이니까. 우리와 물리적으로 분리되지 않았을 뿐, 모두의 마음에 수는 살아있다.
수를 잊고 현실의 나를 그대로 아껴주자고 생각해도, 거울을 보면 차오르는 자기혐오. 아무리 죽여도 다 죽일 수 없고 되살아나는 내 안의 수. 현실의 나와 이상적인 나의 '균형'만 잘 잡으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 균형이란 환상이다. 애초에 그런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면 수는 생겨나지 않았을 테니, 사실 이 자기혐오적이고 모순적인 관계는 절대 지속가능하지 않은 거다. 이 점을 파격적으로 표현해서 슬픈 동시에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내 안의 내가 나를 미워하고 한심해하고 괴롭히면서도 없앨 수 없는... 그런 자기 파괴적이고 자해에 가까운 행동을 극단적으로 너무 잘 표현했다. 동물성 식품을 클로즈업하고 요리할 때 너무 잔인하고 섬뜩해서 무섭고 비위가 상하기도 했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주체와 대상, 폭력과 폭력의 결과.. '나'가 분열하는 과정마다 증폭되는 이미지의 폭력성. 아름다운 몸과 늙은 주름, 섹스와 멸시, 욕망과 고립...
내가 나를 미워하면서 놓아주지 못하는 장면이 너무 잘 표현되어서, 마음이 힘들고, 괴롭고, 긴장되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중첩되고 해체된 존재가 되고 그 억압을 만들어낸 구조에게 속 시원히 피를 끼얹는 장면에서 온몸의 긴장이 풀어졌다. 긴장을 한껏 끌어올린 채로 끝났다면 너무 괴로웠을 텐데, 피가 흘러내리는 복도를 보며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긴장이 풀리며 끝났음에도 메시지는 휘발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와 내내 머리 속에 거울 속 엘리의 이미지와 카메라에 담긴 이상적인 수의 몸, 동시에 경고음 같은 효과음이 맴돈다. 잔상과 여운이 긴 화끈한 영화다.
솔직히 수 배우와 나의 나이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안도와 절망이 함께 몰려왔다. 나는 당연하게도 엘리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지만, 집에와 거울을 보니 내 몸은 엘리보다는 수에 가까웠다. 가임기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생기있는 몸, 눈가에 주름이 얇게 생기기 시작하지만 누구든 젊다고 판단하는 얼굴, 운동으로 줄어들고 있는 군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은 시기마다 달랐지만, 외모 때문에 큰 불이익을 받고 살지도 않았고 아직 노화를 겪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왜 수가 아닌 엘리에게 더 많은 공감을 했던 걸까? 엘리가 아닌 수에게 감정이입하는 젊은 여성도 있을까? 영화를 본 많은 여성들과 대화를 해보고 싶다.
이 영화를 60대가 되어 다시 봤을 때, 지금보다는 덜 괴롭고 덜 아프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디 남들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욕망을 좀더 내려두고, 나 자신을 정말로 아끼며 조절할 줄 알고, 이상적인 나와 현실 속 나의 간극을 건강하게 좁히고 (현실의 나를 과하게 변형하는 방식이 아닌, 내면의 인식을 일치시켜서) 평안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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