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정상의 유정> - 양운정 감독
유정이는 아프다. 의사는 유정이에게 ADHD 진단을 내린다. 유정이는 매일 약을 먹어야 한다. 엄마는 그런 유정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픈 와중에도 자식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이 더 걱정이다.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부부는 서로 아이 맡는 것을 미룬다. 그들에게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존재가 아닌 눈 밖에 난 존재이다. 그러던 와중 유정이 먹던 약 부작용으로 그녀에게는 눈을 깜빡이는 틱 장애가 찾아온다.
엄마는 다시 병원에 찾아가지만 특별한 방안을 찾지 못한다. 의사는 유정이 비정상으로 크고 있다는 것에 혀를 차기만 한다. 결국 더 큰 병원으로 향하지만 날이 갈수록 틱 증상은 심해져 눈 깜빡임, 고개 움직임에 더불어 욕을 내뱉게 된다. 본래도 관계가 좋지 않던 부부는 자식까지 마음대로 되지 않자 결국 이혼을 감행한다. 아이는 누구와 살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의사도, 부모도, 자신조차도 그 무엇 하나 사랑할 수 없는 유정이는 거리를 내달리며 욕을 한다. 그리고는 모든 짐을 바닥에 쏟는다. 수많은 약들이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고 유정이는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한다.
그저 사랑만 받고 자라야 할 아이들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고 있는 사실을 자주 접하는 요즘이다. 기사화되지 않더라도 부모의 압박이 자식을 망가뜨리는 사례는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는 모두 아이가 자신의 소유물인 줄 아는 부모의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아이의 병도,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는 세상을 잃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 바닥에 구르는 약만도 못한 존재로 느껴질 것이다. 그랬기에 유정의 틱장애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유정이 틱 증상으로 뱉는 욕들은 그렇게나마 그녀가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감정들이 아니었을까. 얌전히 부모 말을 듣고, 처방 약을 먹던 유정이 유일하게 표출할 수 있는 안타까운 창구가 아니었을까.
유정이에게 기대지 못할 곳은 가정뿐만이 아니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온 마을이 한 아이를 괴롭힌다. 유정이가 만난 두 명의 의사는 아이가 그저 돈이 되는 환자일 뿐이었다. 유정이가 사는 마을의 어른들은 유정이와 그 가족들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를 나눈다. 어른들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거름 없이 그 뾰족한 말들은 유정이에게 꽂힌다. 그네 한 자리조차 앉기 어려운 유정이가 편히 설 곳은 없었다.
유정이는 비정상인가? 그렇다면 정상의 아이들은 어떠한 아이들인가.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고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일까. 그렇다면 비정상의 아이들에 한탄하는 부모들은 대체로 정상인가. 아이들은 정상, 비정상을 따지기보다 아직 미성숙한 존재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자식의 미성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학대하는 부모들은 비정상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비정상(非正常)이 아니다. 아직 정상(頂上)에 오르지 못한 비정상(非頂上)일 뿐이다. 그리고 부모와 어른들은 그들이 정상에 올라가도록 돕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유정이가 오를 정상은 높고 험난하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곁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정상(頂上)의 유정’을 만날 수 있게 돕기를 바라본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송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