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리와 나> - 조은길 감독
<마리와 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한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은 떳떳하지 않은 일을 하는 콤비이다. 이들은 무의미한 듯 재치 있게 대화를 이어나가고, 한 명은 운 좋게 위기를 극복한 것을 계기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지만, 다른 한 명은 어이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오프닝의 제목 폰트부터 플롯 구성, 캐릭터 디자인까지 <펄프 픽션>의 그림자를 숨기지 않아 더 흥미로운 영화다.
<펄프 픽션>의 블랙 코미디와 B급 감성을 극대화해주는 요소 중 하나는 서사에서 중요한 사건의 갈래가 우연이나 사소한 실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마리와 나>의 사건 전개도 마찬가지다. 문 앞에 브로콜리를 몇 박스 씩 쌓아놓을 정도로 철저하게 마리화나 사업을 숨겼던 둘이 경찰에게 붙잡힌 것은 고작 휴대폰을 경찰차에 두고 나온 브래드의 어이 없는 실수 때문이었다. 또 죽을 뻔한 브래드를 살릴 수 있었던 건 오배송 된 택배 덕분에 성공적으로 위세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부치를 죽이기 위해 그의 집에서 잠복하던 빈센트가 총을 내려두고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어이 없는 죽음을 당한 것이나 가까운 거리에서 쥴스와 빈센트를 향해 쏜 총알이 기적처럼 그들을 빗나간 장면과 겹쳐 보인다.
마리와 나의 모습에서 빈센트와 쥴스가 가장 명백히 겹쳐 보였던 장면은 둘이 세제를 마약으로 오인하고 들이킨 브래드에게 위세척을 시도하는 장면이다. <펄프 픽션>에서는 코카인인 줄 알고 헤로인을 과용한 미아가 쓰러지고, 빈센트와 쥴스는 아드레날린을 주사해 가까스로 미아를 꺠어나게 한다.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지의 여부를 놓고 갈등한 것도,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얼떨결에 처치에 성공한다는 점까지 가장 직접적으로 닮아있는 장면이다. 이렇게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했으나 결국 아주 사소한 실수로 몰락한다는 점까지도.
우연에 의지하는 사건 전개와 특유의 비순차적인 진행에도 불구하고 <펄프 픽션>의 결말에 여운이 남았던 것은 두 주인공이 새출발에 대해 언쟁을 벌이는 모습을 엔딩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새출발을 꿈꾼 쪽은 그 꿈을 이루게 되지만 그 일에 헌신했던 쪽은 몰락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마찬가지로 <마리와 나>의 마지막 장면은 경찰에게 발각되기 전 가까스로 브래드를 살린 것을 계기로 마리화나 사업을 접고 텍사스에서의 새출발을 계획하는 마리의 모습이다. 깊어진 신앙심으로 갱단을 나온 쥴스와 꿈꿔왔던 곳에서 살게 된 마리는 부주의로 죽은 동료와는 반대로 해피엔딩을 맞는다.
영화의 많은 요소가 <펄프 픽션>에 일대일로 대응될 정도로 두 영화는 매우 비슷하다. <펄프 픽션>은 영화의 폭력 요소나 수상에 대한 논란들에도 불구하고 그 독보적인 스타일과 재미는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리와 나>에서는 새로운 것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두 영화의 더 많은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더욱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제갈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