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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매거진 숏버스 Apr 04. 2023

그만둔 이들의 쓸쓸한 마지막

영화 <이름이 뭐예요?> - 송현우 감독


나른한 여름 오후 교정의 모습을 제시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매미가 울고,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실제론 무더울테지만 스크린 바깥에서 지켜보는 학교의 여름은 어딘가 스산하다. 이 풍경 속에 세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그들은 각각 ‘늘보’, ‘택배기사’, ‘문지기 할아버지’다. 늘보는 육상부 학생이다. 잘 달려야하는 육상부의 별명이 늘보인 이유는 그녀가 육상부에서 꼴찌이기 때문이다. 코치 선생님은 그런 늘보를 아끼면서도 그만두는 게 늘보를 위해서도 더 나은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음으로 문지기 할아버지가 있다. 학교에 6년째 근무 중인 경비원으로, ‘문지기 할아버지’, ‘경비할아버지’, ‘경비아저씨’ 등으로 불린다. 그는 머리를 밀어버리려는 코치 선생을 피해 도망 온 ‘늘보’를 숨겨주고, 물과 고구마를 내어준다. 할아버지와 늘보는 나이 차를 극복하고 친분을 쌓는다. 그러다가 늘보는 할아버지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할아버지는 늘보에게 ‘이만석’이라는 본명을 알려준다. 일하는 내내 불려본 적 없는 본명을 늘보는 궁금해했고 물어본 것이다. 직책이 아닌 이름을 궁금해함은 많은 상황에서 진실된 인간관계의 표현이다.



손녀같은 늘보가 할아버지의 창고 겸 휴게실에서 잠이 들고, 얼마 후에 땀을 뻘뻘 흘리는 택배기사가 진 빠진 목소리로 간곡하게 할아버지를 찾는다. 그의 목적은 화장실. 할아버지는 늘보에게와 마찬가지로 흔쾌히 자신의 장소를 내어준다. 단수로 변기가 내려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만석 할아버지는 화를 내기는커녕 기사와 함께 생수를 변기에 부어 본다. 거사(?)를 치른 둘은 잡담을 나누는데, 공교롭게도 둘의 일은 오늘이 끝이다. 기사는 트럭을 사고 빚만 늘었다며 자조하고, 마지막 근무일인 할아버지 역시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 늘보는 결국 육상부를 그만 두고,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할아버지를 찾아 간다. 그런데 이미 숙직실에는 다른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늘보는 뒤늦게 할아버지의 근무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늘보는 아쉬워하지만, 워낙 마음씨가 좋은 지라 만석 할아버지에게 주려고 챙겨온 생수 두 병을 새 경비 할아버지에게 건넨다.



할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멀리서 보여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무언가를 그만두었다는 공통분모가 있는 늘보, 택배기사, 이만덕 할아버지는 끝끝내 함께하지 못한다. 여유 없는 이들에게 제의는 사치스러운 일이다. 결국 셋은 서로의 마지막을 기념해주지도, 앞날을 응원해주지도 못한 채 뿔뿔이 흩어진다. 리추얼의 종말과 개인의 고립,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글픈 일면이다. 



인디매거진 숏버스 객원필진 3기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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