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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 Sep 05. 2023

꽃 좋은 데서 만나길_ 떠난 이를 추모하며

지금이 힘든 사람들에게.

한 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이건 나의 근황과도 관련된 이야기인데, 말하자면 길다.

초임교사로 있던 곳을 그만 두고, 일을 쉬다가 다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무슨 교사야.'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하며 고민을 했었다.

.

.

.

그런데 다시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

.

.

곳곳에서 들려오는 세상을 떠난 선생님들의 소식.

마음이 아팠다.

너는 유치원교사고, 세상을 떠난건 초등학교 교사인데 무슨상관이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유치원/초등학교로 나누기 이전에 아이들을 매일 보고, 학부모님을 대하는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봐.)


교육현장에서 힘들다면, 혹시라도, 나의 글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나도 그랬다는 것이다. 솔직히 죽을만큼 힘들었던 순간들이 나도 있었다.

옆반 고경력자 선생님들에 비하면 내가 무슨 경험이 있고, 무슨 지혜가 있어서 이런 글을 쓰겠는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같은 심정이었기에. 공감하는 글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글을 쓴다.


나는 교직 경험이 길지 않다. 아니, 짧다에 가깝다. 하지만 그랬기에 어느 초임선생님의 선택에 마음이 쓰였다. 무엇때문에 힘들었는지는 차마 구구절절 말할 수 없다. 아직 이 일을 하고 있고, 나 또한 모든걸 내색하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에. 그치만 나도 어떤 것들 때문에 '세상을 떠나는 게 편하지 않을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의 생각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조하고 싶은 말은,

1. '다는 아니어도 일부는 지나가더라.' 이다. 난 아직 미숙해서 그런건지,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런건지, 노련해졌다거나 괜찮다는 말은 아직 할 수가 없다. 하지만 해가 지나고 나서는 조금씩 덤덤해지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힘듦으로 인해 떠난, 혹은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덤덤함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보자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


2. 시간이 다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조금은, 아주 잠깐씩은 괜찮아 지는 때가 있더라. 뭔가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도 1번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겠다.


3. 인생은 아직 남았다는 것이다. 물론 정년이 정해져 있는 직업이라 '앞으로도 이 일을 하려면 몇십년이 남았으니, 더 힘든일만 있겠군.'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나 또한 그랬으니. 하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를 해보자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하루 매 순간 1분 1초가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불행했던 하루에도 1초라도 웃은 적이 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1초는 괜찮다거나 아무렇지 않은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불행하다고 해서 낙담하지 말자는 것이다.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인생은 2차함수 곡선같아서, 오늘 하루가 최악이었다면 내일은 올라갈 날이라고.


이건 내가 조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교사분들에게, 혹은 힘든 사람들에게 같이 하루를 견뎌나가자는 일종의 제안일 뿐이다. 그래도 세상에 태어났으니, 조금만 더 행복하고 조금만 더 즐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딱 하루 하루씩 이어가는 건 어떨가 싶어서.


나는 생각날 때 마다 세상을 스스로 떠난 모든 이의 가는 길이 편안하길 빈다. 힘들었을 텐데 가는 길은 꽃길이길 바라면서. 꽃 좋은데서 함께 만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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