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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Apr 04. 2023

끝도 없이 나오는 감정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일어나셔서 시간 되실 때 누나가 어머니랑 통화 좀 해주세요. 속상한 일 이야기 좀 들어드리고 공감 좀 해주세요.


 

 밤 사이, 남동생의 문자가 와있었다. 자신은 엄마를 도저히 감당 못하겠으니, 누나인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연락이었다. 눈을 떠서 동생의 문자를 보자마자 숨이 막혀왔다. 엄마에게 전화를 야 하는데 일단 최대한 미뤄보자고 마음먹었다. 지금 내 상태로는 전화하면 안 된다. 내 마음 상태를 살펴보니 받아줄 여유가 없다. 엄마가 화를 쏟는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을 들어주고 엄마의 감정에 공감해줘야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조여 온다. 깊게 호흡해 보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수영을 가지 말까. 수영을 하는 사이에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면 받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이렇게 힘든 일을 겪고 있는데 너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좋겠다는 핀잔을 듣기 딱 좋다. 세상 무관심한 딸이 되어 엄마의 화풀이 대상은 나로 바뀐다. 엄마에게 나의 무관심을 사과하고 엄마의 성에 차는 관심을 보인 후 앞에 닥쳐있는 문제에 나서서 해결하는 모습으로 충족을 시켜주고 나서야 엄마의 화는 풀어질 것이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상상이지만, 반복되어 온 지난 경험이기도 하다.




 수영을 마치자마자, 다시 현실이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엉엉 울어버렸다. 샤워실은 시끄러웠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물속에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서 좋았는데. 50분의 수영 강습 시간은 너무 짧다. 다시 물속으로 도망치고 싶다.







 소민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2주의 산후조리 후 집에 가고 싶었다. 친정집이 아닌 내 집에 말이다. 아기와 내가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곳,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아기와 적응할 장소는 내 집이니까. 엄마는 친정에 와서 지내며 산후도우미를 부르라고 했다.

 

 

 엄마, 아빠, 남편까지 출근하면 나와 아기만 남겨질 친정집에서 산후도우미와 지내라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상식적인 제안은 아니었다. 게다가 신생아와 산모가 친정집에 있으니 사위인 남편도 자연스럽게 친정에서 출퇴근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해 엄마는 사위의 아침밥까지 챙겨야 하는 장모가 되어야 했다. 엄마의 힘듦을 예상했기에 말렸지만 엄마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친정엄마로서 '신생아와 산모를 돌봐줄 테니 몸조리하러 친정에 와라'가 아니라, 산후조리를 친정엄마가 안 해줬다는 말을 듣기 싫은 엄마의 생떼라고 생각했다.



 결국 엄마는 새벽에 출근하는 사위의 아침밥을 만들어 먹이기 위해 사위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렸고, 출근했으며, 산후도우미가 퇴근한 후 딸과 신생아인 외손녀가 남겨진 집에 돌아와 아기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방에 들어갔다. 내 집이 아닌 친정집은 불편했고 밤새 우는 아기와 씨름해야 하는 나 또한 제대로 된 조리를 할 수 없었다. 엄마도 나도 남편도 누구 하나 편한 사람 없는 동거였다.



 그렇게 서로 불편하기만 한 3주간의 친정집에서의 조리가 끝나갈 무렵, 사소한 투정으로 시작되어 엄마와 서로 묵혀두었던 감정이 폭발했다. 나도 울고 엄마도 화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나와 엄마의 얼음장 같은 분위기를 알아채고는 엄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 집에 혼자 남겨진 나는 아기를 안고 울고 있었다. 사위인 남편은 장모님의 기분을 풀어드려야 했다.



 출산한 지 한 달도 안 된 나는 친정집에 있는 시간 동안 정말 미치지 않기 위해 버텼다. '너만 애 키우냐', '아주 유별나다', '세상 예민하다'는 모진 말을 들으면서도 집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으며 참았다. 약속했던 3주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평온했다.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그 뒤로 혼자 아기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엄마에게 단 한 번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을 맞으며 나는 아기를 낳고 친정에서 몸조리하며 지낸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는 것에 또 놀랐다. 내 무의식 속에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있었던 엄마에 대한 서운한 감정들. 나는 엄마의 딸인데, 항상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엄마만 생각하면 이렇게나 답답하고 숨 막혀하면서 말이다.



 물줄기에 흘려보내려고 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기억. 혼자 남겨진 그날의 어두운 거실, 무거운 공기. 나 또한 당황스럽다. 다 흘려보낸 줄 알았는데 그대로 고여 내 마음속 한구석에서 썩어가고 있었구나.










"지금 생각하면 내가 잘못한 게 참 많더라. 내가 모르고 그랬다. 미안하지, 그런데도 이렇게 잘 커주어 고맙고."  



 시어머님이 남편에게 사과를 하셨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남편에게 사과를 하신다. 처음에는 옛이야기를 하시며 그땐 당신도 잘 몰랐다고 하시더니 그다음엔 며느리인 나에게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난주 우리 집에 오셨을 때는 남편 눈을 보고 미안하다 말씀하셨다.




"어머님이 사과하시니까, 마음이 어때? 좀 풀려?"


"글쎄. 왜 이제야. 진작 하던가, 하는 마음이야. 이미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뭘. 바뀔 것도 없고."




남편의 답을 듣고 나니 씁쓸하다. 결국 내가 혼자 해결해야 하는 내 안의 내 문제라는 사실이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애처롭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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