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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Mar 05. 2023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나의 노력 3

딸이 엄마보다 팔자가 좋아



 엄마는 내 시댁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았다. 시부모님 두 분 다 일을 하시고, 성실하신 분들이며 두 분이 함께 사신다는 것 정도를 알고 계셨을 뿐이다. 딱 한 번, 결혼 전 예비 시댁에 인사를 드리러 다녀왔을 때 엄마는 시댁에 방이 몇 칸이냐고 물었다. '방은 3개인데 방이 작아'라고 했더니 '큰할아버지댁 정도 집 크기가 맞냐'라고 되물었다.





 엄마는 결혼의 시작부터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도 부족한 며느리다. 며느리의 역할에 모자람 없이 도리를 다했지만 시부모님으로부터 이렇다 할 인정의 표현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타박을 들으면 들었지. 결혼하자마자 엄마의 시부모님은 사돈에게 대신 빚을 갚아달라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적정 선에서의 도움을 드렸지만 만족이 없는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엄마에게 '너희만 잘 살고 우리는 죽으라는 거냐'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엄마가 시댁 뒷주방에서 전을 부치고 있을 때, 친할머니가 이웃아주머니께 '어디서 저런 게 우리 집안에 굴러들어 와서, 아들 등골 다 빼먹는다.'라고 하신 말은 평생 엄마의 가슴에 상처로 남으신 듯했다.    

  


 친할머니는 대학병원에서 3번의 수술을 받으셔야 했는데 수술과 회복에 드는 그 긴 시간, 수발과 간병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그 시절 엄마가 육개장을 끓으실 때면 나는 '아, 또 할머니가 병원 진료를 오시는구나.' 했 정도니까 꽤 자주 우리 집에 머무르셨다. 입맛이 까다로우신 친할머니가 유일하게 잘 드시는 엄마의 요리가 육개장이었는데 육개장을 맛있게 드시면서도 '내 아들 덕분에 네가 덕보고 편히 산다'와 같은 말을 엄마에게 하신 기억이 난다. 다행히 할머니는 건강하게 완쾌되셨다. 그럼에도 인정받지 못한 며느리, 내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엄마와 다르게 인정받고 예쁨 받는 며느리다. 물론 십여 년간의 결혼생활동안 여러 풍파가 있었지만 지금은 누가 뭐래도 '가족'에 속해있다. 시댁에서 더 이상 나 스스로가 이방인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시댁의 대소사에 많은 부분 기여하고 신경 쓰며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시부모님을 대하며 스스로 딸이 된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어머님은 다행히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음을 아신다.) 시부모님은 나에게 '잘한다, 너 같은 며느리 없다. 내가 며느리 복이 있다.'와 같은 말을 자주 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며느리로서 더 잘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고 또 돌아오는 긍정적인 피드백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시집살이로 느낄 만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엄마에게 시댁 흉을 보지 않았다.  내가 시댁에서 이러이러한 소리를 들었고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면 엄마는 '딸이 엄마 팔자를 닮는다던데 너는 왜 하필 그런 걸 골라 닮았냐'라는 말을 할 것이고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도 말하면서 당신의 상처를 곱씹을 것이고 나 또한 들으면 기분이 상할 것 같아 최대한 시댁 이야기는 아꼈다. 대신 시댁에서 인정받고 예쁨 받는 이야기만 전했다.   






 엄마에게 내가 시댁에서 얼마나 예쁨을 받고 있는지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했을 때 돌아오는 엄마의 반응이, 내 예상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시부모님이 예뻐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행복하다'지, '네가 잘하나 보다. 역시 내 딸이네'와 같은 반응을 기대했던 것 같다. 아니 그냥 '다행이다. 잘하고 있구나'만 도 충분했다.


"넌 좋겠다~ 예쁨 받고. 그래도 시댁은 시댁이야. 엄마는 예전에 ~~~~"


 넌 좋겠다가 끝이었다. 넌 좋겠다. 넌 좋겠다. 엄마의 말속에 숨은 뜻이 뭘까. 엄마는 내가 예쁨 받는 게 싫은 건가. '넌 좋겠다'는 말을 들은 그날, 처음으로 '엄마가 딸인 날, 질투하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댁에 대한 불평불만을 엄마에게 다 말했다면, 엄마는 뭐라고 말했을까. 내 편이 되어줬을까. 평생 엄마에게 위로를 받기는커녕, 엄마를 위로해주어야 해서 마음을 감추고 사는 나는 엄마에게 솔직할 수가 없다.



 엄마가 날 질투한다고 생각한 것이 이번 한 번 만은 아니다. 사위인 내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말하는 족족 아빠와 남편을 비교했다.


 "이서방은 네 아빠랑 다르지?"

 "다르지~"

 "그래도 남자 다 똑같아. 방심하지 말고 너 관리 잘하고, 이서방 잘 챙겨."


 아빠와는 정반대의 남자를 배우자로 선택했으니 다른 게 당연하다. 아빠와 다른 것이 다행이라고 말하면서도 남자는 다 똑같다고 말하는 엄마. 엄마는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게 맞긴 맞겠지. 엄마의 말은 내가 남편과 언젠가는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방심한 내 탓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엄마의 삶이 나에게도 똑같이 이어질 거라 생각하는 엄마에게 보란 듯이 나는 내 남편과 사이좋게 알콩달콩 살고 싶다. 엄마 아빠와는 다른 모습으로 서로를 신뢰하면서 말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엄마와 다르게 부잣집에 시집가기라도 했다면 어쩔 뻔했나 싶다.



 엄마를 보면서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널을 뛴다. 엄마의 정서적 위로자가 되었으면 좋겠고,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내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주셨으면 좋겠다. 전자의 관계가 되려면 내 마음을 숨겨야 하고, 후자가 되려면 엄마가 내 상처에 대해 알고 진심 어린 사과가 이루어짐으로 관계의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기대할 수 없다.






 남편의 승진으로 조금 무리해서 형편보다 좋은 차를 샀다. 공교롭게도 엄마가 사고 싶었지만 아빠 때문에 사지 못했던 차다.


엄마에게 시승을 시켜주려고 만난 날,  


"너는 나보다 팔자가 좋다~ 이렇게 좋은 차를 타고."라고 말하는 엄마를,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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