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ring Apr 12. 2023

내 쿠키 내놓아라



동네언니가 내 가방에 무언가를 쓱 넣어주었다. 일본에 다녀온 동생이 맛보라며 선물로 준 쿠키인데, 나도 맛보라고 기꺼이 나누어준 것이다. 평소에도 '쩝쩝 박사'로 통하는 우리 둘은 먹는 것에 진심이다. 동네 맛집엔 꼭 같이 가보자고 하고, 같이 가서 먹어본다. 맛있는 과자 하나도 나누어 먹는다. 나는 이렇게 소소한 정 나누기를 좋아한다. 동네 언니와 이런 면이 잘 맞아 무료한 일상에 재미를 느낀다.

 


 책을 읽으며 커피 한 잔 곁들여 먹어봐야지 하고 식탁 위에 둔지가 벌써 삼사일이 지났다. 사실 받자마자 뜯어 맛을 볼까 했는데 낱개 포장된 쿠키가 아니었고 양도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면 같이 먹어야지' 하고는 내려놓았다. 혼자 먹는 것보단 같이 나누어 먹으면 더 맛있으니까. 출장 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애틋해하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남편이 재택근무를 한다기에 내심 신경이 쓰였다. 남편은 집에 없으면 없어서, 집에 있으면 있어서 신경 쓰이는 존재다. 평소라면 새벽에 출근하여 회사에서 아침과 점심을 챙겨 먹기에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면 남편 먹을 것을 챙기는 일과가 내 하루에 추가된다. 늘 먹던 시간이 있으니 배가 고프리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서둘러 냉장고에 있던 사과와 참외를 깎아 그릇에 담아두었다. 어제 구워놓은 고구마도 있어 함께 남편이 일하고 있는 서재방에 가져다주었다.



"과자 같은 주전부리 먹고 때우지 말고, 이거 먹고 있어."

 


 운동이 끝나면 함께 수영하는 동네 언니들과 커피 한잔을 하기도 하는데, 남편이 집에 있으니 어쩐지 바로 집으로 와야 할 것 같았다. 점심에 함께 먹을 샐러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여전히 서재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루틴대로 젖은 수영복을 건조대에 널고, 청소기를 돌리며 집안 정리를 해나갔다. 곧 점심시간이 될 테니, 간단히 계란프라이를 해서 샐러드와 함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쓰레기통 옆에 낯익은 종이 상자가 뜯긴 채 놓여있다. 며칠 전 동네언니에게 받은 그 쿠키상자다. 뜯기는 내가 뜯었다. 뜯었다가 안에 내용물이 통째로 비닐 포장된 것을 보고는 다시 넣어두었으니. 그런데 상자가 가볍다. 빈 상자다. 빈 쿠키상자 옆엔 상자 안에 쏙 들어갈 사이즈의 플라스틱 용기가 놓여있었다. 역시 비어있다. 뜨거운 콧김뿜어져 나왔다. 성난 하마와 같은 표정을 하고는 쿵쾅쿵쾅 남편의 서재방으로 쳐들어갔다.



"이거 다 먹었어?"

"응, 이야~  그거 진짜 맛있더라.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아."



내 성남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남편은 세세한 맛표현으로 더욱 내 화를 돋웠다.


'이 신발. 이런 개나리. 베리안 허스키 남편 놈아!!!!'





 네이버에 쿠키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살 수 있나? 해외배송만 가능하다. 10개입 10 상자 단위로 판매하고 있었다. 5만 원이 넘는 금액을 주고 사 먹는다면 내 화가 풀어질까. 질리도록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이라면 모르겠지만 혹여 조금이라도 내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두고두고 쌓여있는 쿠키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사 말아, 고민 끝에 사지 않기로 했다. 다만 남편에게 내 마음에 대해 말은 해야겠다.



"같이 먹으려고 아껴둔 건데, 어떻게 혼자 먹을 수가 있어. 너무해."

"진짜 미안하다. 근데 정말 양이 적었어, 그냥 사라졌어."

"내가 뜯었다가 같이 먹으려고 다시 둔 거였어. 물어볼 수도 있었잖아."

"나는 오히려 상자는 뜯어져 있는데 내용물은 있길래 안 먹는 건가 보다 했어."



 사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 또한 동네언니가 나누어주어 딱 한 개뿐인 드립백커피였다. 싱가포르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선물로 준 것을 내게도 한 개 나누어준 것인데, 지퍼백에 곱게 포장되어 있던 그 '바샤 드립백커피'를 남편이 무심하게 뜯어 혼자 '쳐'마셔버린 것이다. 그날은 드립백 커피 하나 가지고 내가 가지를 긁으며 화를 내면 남편이 오히려 서운해할까 봐 입을 닫았었다. 대신 그 커피를 나누어준 동네언니에게 신세 한탄을 하며 남편 흉을 보고 털어냈다. 그런데 이번에 같은 식으로 두 번째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이해심도 많아질 거라 생각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도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늘 하려고 노력한다. 허나 남편에게만은 여전히 속 좁은 까탈녀가 된다. 나도 모르게 내 민낯을 다 드러내고 만다. 그래도 속으로만 끓탕 하며 꿍한 채로 상한 마음을 남겨놓는 것보다 내 마음을 터놓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남편의 변명 아닌 변명 같은 말을 들으니 한편으로는 그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화난 마음이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누굴 탓할꼬.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털어내야지.



우리 가족을 위해 일하며 애쓰는데, 먹는 걸로 치사하게 굴지 말자 다짐도 해본다.









"언니, 우리 남편이 글쎄 또 지 혼자 다 먹었어요. 그 일본쿠키요. 나 진짜 속상해!"


결국 상한 마음이 잘 안 털어져서 말로도 털어냈다.

이제 진짜 털어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 선택의 기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