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남편이 자꾸 두 팔을 벌리고 나에게 다가왔다. 허그 하자는 의미다. '이 사람이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며 안아주었다. 엉거주춤 토닥토닥, 끝. 그렇게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 번, 주말에 점심을 차리다가도 한 번, 딸과도 번갈아서 한 번, 허그를 하자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자꾸만 안아주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눈만 마주치면 허그를 하는 수준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하면 할수록 자연스러워졌다.
"왜 자꾸 안는 거야?"
"노력하는 거야. 좋은 거 같아서."
왜 자꾸 안아주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노력을 하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은 며칠 내내 마음속에서 떠다니며 맴돌았다.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부부간의 스킨십은 자연스러운 사랑의 표현 중 하나다. 사랑이 있기에 스킨십이 가능하다.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라는 블랙유머는 중년부부의 씁쓸한 단상을 보여준다. 우리 부부의 모습은 어떠했나. 경상도 남자와 무뚝뚝한 K장녀에게도 팔베개 없이는 잠이 안 온다던 신혼 기간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부부들이 그렇듯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서서히 멀어져 갔다. 손을 잡는 것도, 산책길에 팔짱을 끼는 것도 어색해져 버렸다. 팔베개는 고사하고 한 침대에서도 등을 돌리고 자는 것이 편한 지경이다.
저자 게리 채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는 많은 부부들의 실례를 들어가며 사랑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육체적인 접촉, 봉사가 바로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다. 사람마다 제1의 사랑의 언어는 달라서, 이 사랑의 언어가 다를 경우 서로 사랑하고 있음에도 상대가 사랑을 알지 못할 수 있다.
언젠가, 교회에서 부부간의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에 대해 간단한 테스트를 해 본 적이 있다. 남편은 사랑의 언어로 '선물'과 '육체적인 접촉'을 사용하고 나는 '함께하는 시간'과 '봉사'를 사랑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선물을 사준다거나 스킨십을 함으로써 나를 사랑한다 표현했지만 나는 그것을 사랑의 언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남편에게 사랑한다 말하는 방법 또한 남편이 원한 선물이나 스킨십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바라는 함께하는 시간과 봉사, 그것을 남편에게 행함으로 사랑한다 말했다. 역시 남편은 내 사랑의 언어를 알아채지 못했다. 우리 둘은 각자가 다른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또 그 언어로 사랑받기를 원했기에 서로 사랑의 마음을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얼마간 우리는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의식하며 지냈던 것 같다.
요즘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쁜 와중에늦은 시간 퇴근을 했더라도 식탁에서 책을 읽거나 끄적이는 내 앞에 앉아 내 일상을 물어주곤 한다. 나와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사랑의 언어임을 알기에 그는 나와 함께해주고 있다. 분리수거일에는 시키기도 전에 말없이 분리수거를 하고 오기도 한다. 이 또한 나를 사랑한다는 그의 사랑의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남편을 사랑한다고 남편의 사랑의 언어로 이야기해주고 있었나. 선물은, 음. 어렵다. 스스로 쇼핑을 잘하는 남편이므로 선물은 일단 접어두겠다. 두 번째 남편의 사랑의 언어인 스킨십은 충분히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의 언어인데도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