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만에 쓰는 편지
엄마 아빠 안녕하세요. 장남 최인구입니다. 올해 들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제 주위 사람들에게는 편지를 종종 쓰곤 하는데, 정작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편지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어릴 적 태권도 도장에서 부모님께 편지 쓰는 것을 시켰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는 저의 의지로 작성을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태어난 지 벌써 28년이 흐르고 한국 나이로 29살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태어나고 동생들과 함께 자라면서 여기저기 놀러 갔었던 추억들이 희미하게 기억이 나곤 하는데, 유년 시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기억들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부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종종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면 '아 나는 참 화목한 가정 안에서 자랐구나..' 싶어요. 그 모든 순간순간들을 영상이나 음성으로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 조금은 아쉬울 뿐입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서 그리고 엄마 아빠와 더 붙어있고 싶어서 어린이집 차량 안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 한 방에서 삼 남매가 함께 잤던 기억, 이모들과 함께 동대문에 가서 옷을 보러 가던 기억, 넷째 나연이가 태어났던 순간, 나연이가 태어나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무작정 산부인과에 찾아갔던 기억, 시골에서 아빠와 함께 쑥과 두릅을 캐던 기억,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한 날 엄마에게 전화했던 기억.. 다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기억이 아예 나지 않지만 신생아 시절, 저와 동생들을 돌봐주시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엄마 아빠도 부모라는 역할이 태어나서 처음이었을 텐데 말이죠..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 혼자 살게 되었을 때, 처음엔 집 분위기가 적응되진 않았던 것 같아요. 항상 집에 가면 북적북적하고 가족들의 소리가 가득했던 집안이 너무나도 고요했었거든요.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하지만, 그때는 그런 분위기가 어색했던 것 같아요.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제는 직장인이 되어 밥벌이를 스스로 하고 있다는 게 종종 감회가 새로울 때가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책임감이 강하고 정이 많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합니다. 책임감이 강한 것과 정이 많은 것 둘 다 최현이라는 아버지와 노미정이라는 어머니로부터 얻은 최고의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저에게 이런 장점을 물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작년 이맘때 쯤에 엄마와 함께 유럽 여행을 다녀온 것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유럽 여행을 함께 다녀오는 것 자체가 효도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유럽 안에서도 습관적으로 엄마한테 짜증을 내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효도라는 것이 크고 작은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잘해야 한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자립하고 이겨내야 하는 시기가 왔기 때문에 예전처럼 여유도 많이 없지만 전화도 종종 드리고 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제 주위에 좋은 사람들로 가득해요. 제 걱정 조금만 줄이시고 이제는 엄마 아빠도 우리들 걱정 너무 하지 말고 즐기셨으면 해요. 제가 또 언제 편지를 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더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4.12.22 장남 최인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