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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Aug 07. 2022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돌보는 마음>

-계간 창작과 비평 <작가조명> - 김유담 ⟨퀸 핀의 마음⟩을 읽고



 계간 창비 여름호 ⟪작가 조명⟫에서는 ⟨돌보는 마음⟩으로 유명한 김유담 작가의 작품들을 분석하였다. 이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담론인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에 집중한 그녀의 작품에선 육아, 간병, 가사노동 등의 돌봄 문제로 빚어지는 여성들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묘사하였다. 




 마음 편히 쉬어야 할 조리원에서 산모는 난데없는 "젖 쇼"를 해야 하고, 돈을 주고 고용한 베이비시터가 CCTV 앵글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마음 편히 제 일에 충실할 수 없는 것이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다. 여전히 부계가 중심인 이 사회에서 유달리 가정에서 벌어지는 자질구레한 일은 모계가 중심이 되어야만 진행된다는 사실에 실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이지은 평론가는 김유담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여성에게 적용되는 굴레가 가족 내부에서 겪은 차별구조를 경험적으로 습득한 결과라 해석하고 있다. 즉, 가정이 휘청거릴 때 가족 전체를 보살펴야 하는 역할에 여성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구속되어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 명의 여성에게 다양한 역할을 강요하는 현실은 김유담 소설 ⟨안⟩에도 잘 나와 있다.

 주인공 '나'는 엄마의 딸(역할 1)이자, 큰엄마의 조카딸(역할 2), 동시에 시누이자(역할 3) 올케인데(역할 4), 여기에 시어머니의 며느리(역할 5)라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되며 그녀의 삶은 한층 더 복잡해진다. '여자라서' 가족을 보살펴야 하고, '여자라서' 능력이 있어야 하고, '여자라서' 시댁에 주말마다 할 도리를 해야 하는 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다.


 이쯤 되면 시댁에 살갑지 않은 새언니를 이해해 줄 법한데, 나는 시누이라는 내게 주어진 3번째 역할에 몰입하며 며느리로서 새언니가 시댁에 얼마나 충실이 임했는가에 대해 추궁한다. 




물론 이걸 가지고 따진다면 '나'는 악의 없는 말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시어머니의 말도 '악의'는 없는 게 아닐까. "힘들면 여기 와서 쉬면 되지. 내가 밥도 다 해 주는데 힘들 게 뭐가 있니?" 

                                                    ⟪계간 창작과 비평⟫ p.364




 가부장제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여자들은 서로의 역할 행동에 따른 입장으로 갈등을 빚는다. '나'에겐 너무나도 좋은 큰엄마가 우리 엄마에겐 불편한 형님일 것이고, 새언니에게는 가까이할 수 없는 시어머니일 것이다. 김유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캐릭터 중 누가 선이고 악인지 선 그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도치 않은 역할 몰입으로 인해 캐릭터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여성들은 서로에게 의도치 않은 악행을 벌이게 된다. 




 간혹 가다 아이를 돌보는 이들의 SNS엔 자신이 정신병자에 이중인격 같다는 자조 섞인 글이 올라온다. 따지고 보면 시대가 여성 개인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다양한데, 그 역할을 수행해 내는 이들이 다중인격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요즘 여성들은 참 살기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여성들의 삶이 어머니 세대보다 더 힘들어졌다고 느껴진다. 여성이 살기 편해졌다는 말은 여성의 입에서 나올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가정이 위태로울 때 돌봄의 최전선에 선 것은 언제나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엄마 세대가 해왔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당연히 물려받은 것도 모자라, 가장으로서의 역할, 애를 키우되 애를 키운다고 회사 일에 소홀하면 안 되는 직장인으로서의 역할까지 부여받았다. 이런 복잡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여성들의 삶이 과거에 비해 나아진 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는 여성에게도 자신의 역할을 같이 짊어질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







*해당 도서는 창비로부터 서평 작성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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