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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Nov 08. 2022

놈놈놈

#11 시간을 건너 


 


 고등학생이 되고 첫 등교일.

 새 학기의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내가 입학하게 된 학교는 신설학교라 나와 동기들이 첫 입학생이자 졸업생이었다.

 중학교 시절을 빈둥빈둥 보냈던 아이들마저 입학과 동시에 쑥과 마늘을 먹은 곰처럼 새사람으로 태어났다.

 입시의 칼날을 갈고닦을 수 있는 고등학교란 공간은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새 학교, 모든 것이 새것이었지만 기분 좋은 새것이 아닌 차갑고 매정한 현실이 느껴지는 서늘함이었다.

학교에 입학한 우리는 아직 중학생 티를 못 벗은 천둥벌거숭이였다. 교복이 정해지지 않은 덕에 사복 차림의 나는 어설프게 꾸민 어색한 옷을 입고 배정받은 1학년 4반 교실에 앉아있었다.



 편안한 나의 학교 생활을 위해 중요한 것은 학급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

 중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들 모두 근처 다른 학교에 입학했던 터라 안타깝게도 학급의 대부분은 중학교 때 별로 친하지 않았거나 처음 보는 다른 중학교 출신이었다. 

 

 '나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언제나 싫었던 새 학기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싫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낯선 종소리가 울리고 우리는 1년 동안 학급을 통솔할 담임선생님을 기다렸다.


 '좋은 분이었으면 좋겠다. 제발.'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깨지지 않았던 담임선생님 운. 

 이번에도 깨지지 않았으면.

 


 잠시 뒤, 조용한 복도 창문을 따라 몇 명의 어른이 지나갔다. 새로운 학교라 그랬던 건지 고등학교라 그랬던 건지 유달리 남자 선생님이 많았다. 그리고 곧 우리 교실에도 짙은 코트를 입은 험악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 선생님이 들어왔다.

 


'조폭 들어온다. 망했다.'



 안경을 쓴 그의 넙데데한 얼굴은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한 눈에도 선생님은 보통 성격이 아니어 보였다. 그는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는 강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를 내뱉었다. 


 담당 과목은 국어. 고향은 마산. 

 이 학교가 2번째 부임지라는 그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와 같았다.

 (뒷 날 알게 된 사실인데, 서울도 아닌 경기도의 한적한 도시에 연고도 없는 마산 출신 선생님의 등장은 같은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고 한다.)



 중학교 때 학교에 남자 선생님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말보다는 손이 먼저 나가는 부류였다. 내 머릿속에 남자 선생님은 '손찌검을 하는 사람' 정도로 인식되었다. 게다가 담임으로 남자 선생님이 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일 년 내내 그분에게 내 손과 뺨을 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앞으로의 날들이 두려웠다.




 3월, 4월.

 예상과 달리 1학년의 봄은 평온했다.

 학교 차원에서 강제로 시켰던 야간 자율학습도 선생님은 아이들을 몰래몰래 빼주었다. 

 무뚝뚝하고 빡빡할 것만 같았던 선생님은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의 노엘 선생님처럼 학생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나름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었다.



 수학여행 당일. 

 학급에서 칠공주라 불리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끼리 싸움이 났다.

 성격 좋았던 내 친구는 여섯명으로부터 혼자 떨어져 나온 그 친구를 여행 내내 챙겨주었다. 덕분에 나는 혼자 수학여행 버스에 오르게 됐지만 전날이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던 탓에 반수면 상태로 여행길에 올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날 저녁,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고 나서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혼자 떨어져 나온 그 친구가 너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해를 하기 위해 불렀다 생각했건만 여섯 명은 그 아이를 자신들의 방에 따로 불러 그동안에 섭섭했거나 화났던 부분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퍼부었다. 듣다 못한 다른 친구가 여섯명의 방으로 가 금방의 일을 따지고 왔다. 수학여행의 첫날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이튿날도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갔다.

 당시의 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지만 사건에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학생이었기에 이 싸움이 지지부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아이는 한 번 더 여섯 명의 방에 불려 갔다. 





 다음 날 아침, 친구는 머리를 부여잡고 방으로 돌아왔다.

"야, 선생님 큰일 나시면 어떻게 하지?"

 친구는 머리가 아프다며 두통약을 찾았다. 

 "너 전날에 그 방에서 잔 거야?" 

 

 우리는 여섯 명과 화해했다는 친구의 말에 1차로 놀랐고, 전날 선생님과 다 같이 술을 마셨다는 말에 2차로 놀랐다. 선생님은 친하게 지내던 7명의 아이들이 서로에게 등을 돌린 것을 보고 대화로 솔직한 마음을 나눴으면 하는 생각에 술자리를 만드신 것이었다. 


 요즘은 수학여행에서 선생님 주도하에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술을 마셨다고 하면 교육청부터 시작해서 온갖 민원과 여론의 공격을 받았겠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교육의 일부라 여겼던 시기라 어른에게 술을 배웠다 정도의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어갔다.



 선한 리더십의 표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선생님은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으셨다.

 구수한 마산 사투리로 배우는 국어 수업도 첫인상과 다르게 허술한 선생님의 방식도 아이들은 좋아했다. 선생님의 성씨가 노 씨였던 까닭에, 아이들은 선생님을 '노짱'이라고 불렀다. 


 물론 그런 선생님에게도 안티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 대부분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선생님의 진심을 모르고 반항하는 것이 쿨하다 생각하는 이상하고 배은망덕한 아이들의 잘못이란 걸. 


 

 선생님의 선한 리더십은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처음 알게 된 고등학교 1학년 때 이후로 선생님은 언제나 나에게 정신적 지주요, 인생의 스승이었다.

 나는 선생님을 아빠라 부르며 따랐다. 보호자 비상 연락망에 선생님의 연락처를 적어냈고 내가 그토록 갖고 싶던 다정한 아버지의 역할을 선생님은 기꺼이 해주셨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문학을 좋아하게 된 것도.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하게 된 것도 모두 다 선생님의 영향이다.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선생님을 보며 나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글을 쓰고 있다.


 선생님은 오랜 노력 끝에 2018년, 등단에 성공하였다. 









 나 또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학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받을 때가 있다.

 


 "내 아이처럼 예뻐해 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미숙했던 그 시기에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면 나 또한 베풀 줄 모르는 사람으로 자랐을 거다. 내가 나눠주는 사랑이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기에 그 사랑을 내리 받은 아이들이 언젠가 자신보다 어린 존재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시작은 단순했다.

"선생님 송강호 닮았어요." 누군가의 외침에 아이들이 웅성 거렸다. 긍정의 의미였다.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면 송강호가 어떤 역할을 맡은 송강호인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몇 초 송강호 인지도 주요 관전 포인트였다.



<공동 경비구역 JSA>의 송강호?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괴물>의 송강호?



 송강호와 1초 닮은 것 같기는 한데 딱 이거다 싶은 송강호가 없었다.

 다행히 선생님과 닮은 송강호는 우리가 졸업한 뒤에 등장했다. 










이상한 놈을 닮은 선생님



 선생님은 <놈. 놈. 놈>에서 '이상한 놈' 역할을 맡은 송강호를 닮았다. (성격마저 흡사)


 

 







감성 파괴하는 이상한 놈



선생님을 알게 된 지 17년째.

이제는 아버지나 인생의 스승이 아닌 절친한 친구지만 이상한 놈은 언제나 닮고 싶은 인생의 롤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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