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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니 onee Aug 06. 2021

사람들은 무심하고도 무서웠다

살구

사람들은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혹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기 위해 불합리한 상황에서의 진실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굳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으려고 하지 않는달까. 내게도 몇 년 전 그런 일이 있었다. 분명 잘못된 일이고 불합리한 일인데 그 누구도 이 상황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왜곡된 사회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마음속 작은 바람을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그때의 나는 암흑 속에서 횃불을 들고 나타나는 것과 같은 기적을 만들지는 못했다. 나 혼자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는 건 상상 이상의 용기가 필요했으니. 결국 나도 그들과 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분명 노력했다. 왜곡된 사회 안에서는 진실도 거짓도, 옳고 그름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진실의 배를 드넓은 바다에 띄워 항해하리라. 이는 환상에 가까운 나의 소망이 되었고 그렇게 이 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분명 내가 겪은 세상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 곡만큼은 희망적이었으면 했다. 나의 꿈과 소망을 함께 그려 나갈 동료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일 테고, 그런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을 노래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이 노래의 중심이 되었다. 결코 외롭지 않은 싸움일 테니 계속 항해하자고.


무심한 사람들을 표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예전에 썼던 메모장을 들춰 보았다. 바늘이라는 소재로 쓴 시가 있었다. 이 시에서 가정한 상황은 이렇다. 바닥이 있다. 콘크리트든, 비포장도로든 중요치 않다. 그냥 바닥에 바늘이 미세한 간격을 유지한 채 흩뿌려져 있으면 된다. 바닥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바늘은 사람들의 말이든 행동이든,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어떤 상처이다. 나는 바늘이 무수한 바닥을 바늘 도로라 하겠다.




사람들은 무심하기에 어떤 행동이든 딱히 주의하지 않는다. 진실이든 아니든, 그들에겐 중요치 않다. 그냥 어떤 말이든 그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뱉은 말이 다른 이에게는 어떤 상처로 남을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내뱉는다. 그렇게 뱉어낸 수많은 악한 말들은 바닥에 흩뿌려진다. 자신들이 뱉어낸 말인 바늘은 다른 아무개의 발에 박힌다. 그들 역시 무심하기에 바늘 도로를 주의 깊게 보며 걷지 않는다. 누군가 뱉는 말은 씨가 되어 무성하게 자라고 다시금 그들에게 돌아간다.


그들은 어느덧 바늘 도로 끝 자락에 다 달았다. 무심코 걷다 보니 자신들의 발에 박힌 여러 개의 바늘의 통증을 느낀다. 발바닥에 박힌 바늘을 하나씩 빼낸다. 아무렇지 않게. 늘 있던 일이고 있을 일이니. 그리고 자신들도 이 아픔에 일조한 사람들이니. 사람들은 이를 반복한다. 참 무섭고 기괴하지만 그들에겐 일상일 뿐 어떤 무게감도 없다.


어느덧 나도 바늘 도로에 도착했다. 미세한 틈을 찾아 애써 발을 디뎠지만 아니나 다를까 무수한 바늘을 전부 피하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몇 개의 바늘은 나의 발에도 박힌다. 하지만 나는 무심하지 못해 통증을 참고 걸어 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주저앉았다. 옆을 보니 다른 사람도 주저앉았다. 뒤이어 일어선다. 계속 나아간다. 근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 바늘 도로에 갇혔다.


잇따라 사람들이 줄줄이 바늘 도로를 걷는다. 아까 그들처럼 누구는 잠시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나고, 누구는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어떤 이는 너무도 무심해 나를 그냥 지르밟고 지나갔다. 내가 바늘인 줄 알았나 보다. 아니 바늘인 줄은 알았을까. 바닥에 뭐가 있는지도 딱히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찌 저찌 기어 왔을까. 나도 바늘 도로 끝자락에 다 달았다. 발에 박힌 바늘을 빼지도 못하고 어찌할 줄 몰라 그냥 바다로 뛰어 들어갔다. 붉은 피를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미칠 것만 같아서 그냥 물에 들어갔다. 푸르른 물에. 아,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푸른 물마저 붉은 피에게 물들었다. 푸른 바다가 피바다가 되었다. 차라리 이게 바늘 도로를 계속 걷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무작정 헤엄쳤다. 무한히 이어지는 바늘 도로를 벗어 나는 게 우선이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기괴한 곳에서.


얼마나 헤엄쳤을까. 가시밭길에서 제법 멀어진 듯했다. 발이 쭈글 해져 드디어 바늘을 빼낼 수 있었다. 큰 통증은 없었다. 발바닥보다 마음에 생긴 구멍이 더 흠처럼 느껴졌다. 잠시 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기 보이는 붉은 섬이 바늘 도로가 있는 섬이겠지? 근데 저기 뭐가 있는 것 같다. 조금씩 다가온다. 이쪽으로. 아, 사람이다.


그 사람을 만났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나는 그에게 쭈글 해진 발바닥을 보여주며 바늘을 빼보라고 권했다. 그 역시 안도의 한숨을 돌리며 발바닥에 박힌 바늘을 빼냈다. 그 이후에도 나는 그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처참한 세상의 모습에 정을 줄 수가 없다더라. 그는 자신과 같은 모습인 나를 만나 기쁘다고 했다. 나는 애써 웃음을 보였다. 분명 나도 기뻤다. 다행이었다. 근데 그는 내 눈이 슬퍼 보인다 했다.


사실 애써 웃음을 웃었지만 눈물이 앞섰다. 반가운 마음에, 고마운 마음에, 그리고 기대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 보이기에는 좋은 날이니 잠시 미뤄두겠다 약속했지만 그와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는 농담 삼아 이 바다가 내 눈물이냐 물었다. 오랜만에 피식했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듯, 그에게 말했다. 우리 다시 돌아가자고. 바늘 도로로. 그는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냐는 표정이었다. 끔찍이도 싫어 이곳으로 도망쳐오지 않았냐고. 그리고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가자. 이제 혼자가 아니잖아. 그럼 된 거야."


- 우리 웃음을 웃자. 그리고 눈물은 참아. 나 바랄게.

 


https://www.youtube.com/watch?v=TKGON26-g3E

사람들은 무심하고도 무서웠다 Official Audio

https://www.youtube.com/watch?v=A6MqdaXMJzc

살구 Official Lyric Video

Artwork kimminjoo @rnin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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