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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란 May 03. 2023

관계가 선물입니다

인생을 바꾸는 방법 3


대가를 바라지 않는 관계가 가능해  

   

2004년 1월 어느 화요일, 칼바람에 가만히 서있기도 힘든 날씨다. 을지로 입구에 모인 사람들은 짧게 인사를 한 후 김치전과 옷가지들을 들고 일사분란하게 흩어졌다. 우리조는 쁘랭땅(그렇게 불렀다)으로 향했다. 

휴학을 하고 우연히 알게 된 곳에서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노숙인들을 만났다. 

처음엔 아저씨들이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가면 마음이 더 불편했다. 대화하면서 필요한 것을 메모하고 주중에 손품, 발품을 팔아 선물을 준비했다. 김치전 한 장, 중고물품이었지만 충분히 기쁘게 받아줬다.(물론 퇴짜 맞은적도 많다) 나는 가진 것이 없는 학생이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조건없이 선물하는 행복을 누렸다.      

거래는 공평해야 하지만 선물은 그렇지 않습니다그래서 거래는 거래할 것을 가진 사람과만 할 수 있지만 선물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습니다거래를 할 때는 거래할 것을 가진 사람만 받을 수 있지만 선물은 거래할 것이 없는 사람도 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 주는 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이 목적인 선물을 주는 것일 때 상대도 아무런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그래야만 받은 사람도 부담 없이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줄 수 있습니다그것이 호혜입니다.        


처음부터 가능했던 건 아니다. 

"고작 전쪼가리 한장 주면서 귀찮게 하지마." "옷은? 운동화는 언제갖다 줄건데?"

때로는 그분들의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자꾸 와도 달라지는건 없어." 마음을 닫아버리는 분도 있었다.

 매주 지속적으로 찾아가니 변화가 찾아왔다. 

살아가는 환경도 나이도 관심도 서로 달랐지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관계가 살아났다. 

"오늘 전은 잘 됐네.", "나 다른 데 갔다가 올시간 다되서 빨리 왔잖아." 

다른 곳에 갔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나를 만나러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을 느꼈다. 

"이거 하나 먹어봐." 때때로 다른 단체에서 받은 빵이나 간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더 필요한 사람 주라며 옷이나 신발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겨울이 되면 종종 쁘랭땅 아저씨들이 생각나고 안부가 궁금해진다.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살아서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특별히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이미 누군가의 자식이고 형제이고 친구이고 부모입니다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돈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습니다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세상의 많은 것들이 아무리 변해도 사람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존재 자체로 의미있다는 것을 삶의 가장 밑바닥이라고 하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배웠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잘 살고 싶어 나누기로 했다> 책에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그것을 확인받은 느낌이었다. 

나는 더 잘 살고 싶어졌다.      




나는 잘살고 싶어 나누기로 했다    


이 책은 경제 안에서 일사람을 모으는 과정에서 배제된 일을 비롯해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게 된 돈사람 등을 마을안에서 보이도록 해서보이는 나눔이 일어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경제를 성장시켜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기존 경제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나눔을 눈에 보이도록 활성화시켜서 경제가 순환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머리말 중에서     

전성실 저자는 학교 선생님으로 15년 재직 후 나눔디자이너, 나눔전도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전국을 다니며 나눔을 전파했다. 나는 ‘아름다운 나눔수업’ 책을 읽고 SNS 친구신청을 했고 ‘살아있는 것이 나눔이다’ 책을 읽고 특강을 요청드려 사인도 받고 실물영접의 기회도 얻었다. 지금은 제주에서 이전보다 더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고 계신다. 가끔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처럼 삶을 엿보고 응원하는 것이 일상의 재미다.


‘잘살고 싶어 나누기 시작했다’ 는 나눔이라는 가치에서 확장해서 일과 삶, 돈과 관계, 사람을 위한 경제, 공동체와 나눔을 두루 성찰할 수 있게 한다. 2천회가 넘는 수많은 강의 경험에서 나온 엑기스가 달콤하면서도 쓰다. 자원이 아닌 자산개인적 공간에서 사회적 공감으로함께사니즘사회적 자존감 등의 용어들이 새롭고 흥미롭다. 앞부분의 다양한 분들이 적은 추천의 글만 읽어도 감동이고 뒷부분의 참고자료로 적어둔 영상, 영화, 책만 보더라도 벌써 한 해가 꽉 찬 느낌이다.    

돈이 오가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알고 누군가와 그 가치를 나누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그로 인해 보이지 않던 일들이 우리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질적 성숙을 위해 조금 느리더라도 구성원들의 욕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사업 몇 개 더 한다고 성숙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고 나누며 만들어가야 합니다.     

2016년, 복직 후 새로운 사업을 기획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내가 가진 나눔의 의미와 가치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고 그것을 사업에 녹여내고 싶었다. 

제공자와 수혜자 구조를 벗어나 누구나 배우고 가르치며 무엇이든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나누미학교’는 시작됐다. 3년의 시간동안 더디게 가는 것 같았고 원하는 목표들을 전부 이루지는 못했다. 그런데 천천히 가는 그 길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누구보다 행복하게 일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의미있게 생각하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돈이 없어도 교육문화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사람으로 인해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

남을 돕는다는 마음이 결국 나에게로 돌아와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이 책의 문장들이 그동안 ‘수고했다, 잘했다’ 토닥거려주는 것 같아 큰 위로를 받았다.   

 


       

2020년 MKYU에 입학한 후로 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온라인에서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기지 않지만 실제로 가능했다. 

관계의 기본은 나입니다.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다양한 관계들로 확장되고 그 안에서 나의 정체성이 확립됩니다. 거래를 통한 이익보다 선물을 통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나를 세워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나를 돌보고 나를 성장시키고 내가 가진 것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우려는 마음이 닿았을까 

내가 가진 배경과 환경말고 나의 존재 자체에 관심있는 사람들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한 사람 한사람을 만났다. 마치 주파수가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함께라서 할 수 있었다는 말을 자주 주고 받는 사람들 

2023년 봄, 커뮤니티의 힘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존재자체를 선물처럼 소중히 여기고 조건없이 내가 배운 것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당신에게도 선물같은 사람이 있나요?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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