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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란 May 17. 2023

한단어 이야기 1


2020년 2월, 나는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백수가 되면서 시작한 제주살이는 공간과 시간의 자유를 가져다주었지만

때때로 '나는 이제 일이 없는 사람이야' 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날도 있었다.  

그럴때면 '나는 대학생이야. 배우는데 집중해.' 스스로에게 처방전을 내려주곤 했다.

백수되기 1달전에 가입한, 학생의 정체성을 준 MKYU대학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시간을 지나면서 발견한 나는 간섭받기는 싫어하면서 어딘가에 소속은 되고 싶어하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아침 8시 50분, 한바탕 전쟁을 치른 후 아이를 학교에 집어넣고(?) 

언제 그랬냐는 듯 동네 엄마들 몇 명과 여유롭게 함덕 서우봉 둘레길을 걷는다 

"와우~ 매일 보는 바다인데도 정말 예뻐요." 

"전 이걸 매일 보고 싶어서 함덕에 정착했어요."

함덕 서우봉 둘레길에는 유채꽃이 한창이다. 눈에 담고 마음에 담는다. 


쉬고 산책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요리하고 살림을 정리하고 칼림바를 배우고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이벤트에 참여해서 책들과 살림살이들을 받았고 때론 작은 책방에서 작가들을 만났다. 

돈을 버는 생업의 일은 나에게서 멀어진 것 같았지만 의미 있는 경험들이 소복소복 쌓였다.

돌아보면 내가 해온 모든 경험이 다 내 일(하루)의 일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을 구분 짓고 생산성이라는 가치를 잣대로 평가한다. 

일을 하고 있으면 가치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약하고 게으르고 능력이 없게 비춰진다. 

일이 있다고 해도 명함을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는 사람과 명함조차 없는 사람은 일에 대한 이미지가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은 지겨운 것, 돈을 벌기위해 어쩔수 없이 하는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즐거운 행위일 수도 있다.  

국어사전에서 일을 검색해보면 13가지 의미가 나온다. 와우~!

1번(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의 의미만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세상은 어쩐지 삭막한 일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치열하게 연구하고 더 나은 세상을 변화를 추구하며 

보이지 않지만 가족을 돌보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누고 경험하는 

때론 하찮고 별거 아닌 것 같은 사소한 2~12번의 일도 인정받는 세상을 꿈꾼다. 


오늘의 나의 일은 가족들을 위해 수제비를 맛있게 만드는 일, 

새로 구입한 칼림바와 악보를 언박싱하며 기뻐하는 일, 새로운 곡을 연주해보는 일이다. 

일을 돈 버는 것, 직업으로 한정 짓는 틀을 깨면 모든 것이 의미 있고 즐거워질 수 있다.  



사진출처: pixabay


나는 오늘도 일을 하고 있다. 

나를 돌보고 가꾸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재미.의미.감동 있는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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