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는 일
하와이에 걸으러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루에 10만 보 걷기라니 대체 이게 가능한 일이야?
2019년 완연한 봄, 책방 매대에서 우연히 잡은 이 책을 그 자리에 선 채로 다 읽었다.
2021년 이른 봄, 편안한 책상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다시 천천히 읽었다.
2023년 다시 봄, 걷기와 인생 그리고 글쓰기의 닮은 점을 찾다.
하정우. 천만배우, 김 먹방, 최연소 누적관객 1억 명 달성..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작품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알다가 이 책을 읽으며 배우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연예인들이 쓴 책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지조차 잊게 할 정도로 그의 이야기는 담백하고 솔직하며 술술 잘 읽혔다. 노을, 무지개, 하늘, 한강 편의점, 직접 조리한 음식, 함께 걷는 사람들, 집에서의 편안한 모습 등
그가 직접 찍은 일상사진들에 눈이 즐거워진다. 일상의 단편들이 스냅사진을 보는 듯 생생하다.
7년 전에는 ‘그림 그리는 배우’였는데 지금은 ‘걸어서 출퇴근하는 배우’라니.
‘교주’라고 불리는 작가의 삶이 더 궁금해지고 다음 책은 어떤 내용일까 기대하게 된다.
오늘을 위로하고 다가올 내일엔 체력이 달리지 않도록 미리 기름치고 돌보는 일.
나에게 걷기는 나 자신을 아끼고 관리하는 최고의 투자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내 일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걷는 일은 살을 빼고 몸을 만드는 ‘건강을 위한 행위’라는 틀에 갇혀 있던 나에게 걷기는 ‘일상을 유지하고 힘을 키우는 일’, ‘인생의 친구이자 스승’이며 자신에게 투자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저자의 메시지가 적잖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묘하게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옛날 말이 점점 공감이 되는 나이, 마흔이다.
나의 몸을 돌보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임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내 몸을 잘 알고 내 몸이 원하는 방법으로 무리하지 않고 운동하기.
이것이 내가 세운 올해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책을 덮자마자 이 책의 많은 독자들처럼 걷기 앱을 깔고 ‘하루에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물론 계속 유지되지 못할지라도,, ^^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라도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질 것이다. 분명히.
내가 전과 달라진 것 중 단연 첫째를 꼽자면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의 변화다. 물론 이제 읽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쓰기 위해 읽는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2020년 제주일년살이를 하며 요리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소소한 일상들을 SNS를 통해 짧고 굵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신문을 읽다. OO을 읽다에서 끝나지 않고 책에서 좋았던 문장과 배운 것과 느낀 점들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읽고 싶은 책과 관련된 이벤트나 서평의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신청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고 책 관련 팟캐스트를 듣고 유튜브를 시청했다.
MKYU에 등록해서 북드라마, 경제, 글쓰기 강의를 듣고 과제를 작성했다. 출판사, 편집자, 작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그렇게 계속 자의로 타의로 쓰다 보니 책을 읽고 내 경험과 생각을 적절히 섞은 <신박한 책노트>를 사람들에게 내놓는 기회도 생겼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책을 낸 작가도 아니지만 ‘뭐라도 쓰는 사람’이라는 목표를 이루어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 더 친해졌다. 글을 쓰는 과정이 나를 깊이 알아가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세상밖으로 표출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을 표현하고 소감을 이야기해 줄 때 부끄럽지만 한편으로 짜릿한 느낌을 선물 받았다. 나로부터 나온 내 글이 나를 위로하고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봤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명백한 사실은, 내게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일종의 무모함을 선물해 주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그저 부지런하게 갈 뿐이다.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고, 걸음이 다르다. 같은 길을 걸어도 각자가 느끼는 온도차와 통점도 모두 다르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잘못된 길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디고 험한 길이 있을 뿐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는 일,
그 일이 나에게 글쓰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저자가 계속 걸어 나가는 사람이라면 나는 계속 쓰는 사람이기를.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자신의 길을 그저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 나가기를.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