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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Mar 15. 2023

버드나무에 꽃이 필 때

  

봄이 온다. 꽃샘추위 속에 봄이 느껴진다. 몸은 더 빨리 계절을 눈치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병든 닭처럼 조는 일이 많아지고 말할 수 없는 노곤함이 환절기를 알린다. 문득 버드나무 가지에 연초록 물이 오르는 상상을 한다. 아침부터 버드나무 생각이다.      



渭城朝雨浥輕塵(위성조우읍경진)

위성의 아침 비 가벼운 먼지를 적시고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류색신)

객사 앞 청청한 버들빛이 더욱 새로워라.

勸君更盡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권하노니 그대 한잔 더 드시게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벗이 없을지니     



왕유의 위성곡에도 버들빛이 완연하다. 지도로찾아보니 시인의 마음이 훅 다가선다. 위성은 장안(지금의 시안)의 북쪽 교외, 위수 건너편에 있는 도시다. 장안에서 서북쪽으로 전쟁터를 향해 가거나 서역으로 떠나는 이들을 마지막으로 전송하던 곳이다.왕유의 친구는 양관을 지나 안서도호부로 떠나는 길이다. 양관을 나서면 멀고 먼 고비사막이 펼쳐진다.내게 서안은 늘 가보고 싶은 곳이다. 양관 봉화대 위에 올라가 보면 타클라마칸 사막이 열리고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나누는 이얼금산도 보인다고 한다. 서안에서 짐을 풀고 감숙성에 닿았다가 둔황 고성과 옥문관, 양관을 보고 싶다. 안녹산의 난으로 쫓겨가던 당 현종이 양귀비에게 비단수건을 주며 자살을 종용하다 얼굴을 가리며 피눈물을 흘리던 그 마외파도 보고 싶다. 그러나 요즘 중국, 그것도 서안으로 떠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별시에는 유독 버드나무가 자주 나온다. 길 떠나는 나그네에게 주는 선물이 버들가지였다고 한다. 버드나무의 柳와 머무르다의 留의 발음이 비슷해서 떠나는 이에게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 하니 옷섶을 잡아 이끄는 것보다 더욱 운치가 있다.   

   

말없이 마주 보며 유란을 주노라

오늘 하늘 끝으로 떠나고 나면 언제 돌아오랴

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르지 마라

지금까지도 비구름에 청산이 어둡나니 (최경창)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자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봄비에 새잎 나거든 날인가 여기소서 (홍랑)     


서로를 그리워하며 시를 남긴 최경창과 홍랑. 이들의 시에도 버드나무는 단골이다. 고죽 최경창이 북도평사로 함경도 경성에 부임했을 적에 홍랑을 만난다. 고죽이 서울로 돌아가자 상사병은 깊어진다. 함경도 경성과 서울은 천릿길. 고죽이 아프다는 소식에 홍랑은 일주일 밤낮을 걸어 그를 찾아간다. 그런 홍랑을 받아들인 고죽은 파직을 당한다. 당시에는 평안도와 함경도 양계의 사람들이 경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엄금하던 시대였다, 더욱이 명종비 인순왕후가 죽은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국상 때였다. 결국 홍랑은 그 먼 길을 다시 돌아가고, 고죽은 이 일로 파직당한 후 평생을 변방의 한직으로 떠돌다 선조 9년 45세의 나이로 객사한다. 홍랑과 최경창의 만남은 사후에나 이루어진다. 최경창과 부인을 합장한 무덤 옆에 홍랑의 봉분을 만들었던 것. 내세에서만은 비목어가 되어 이별 없는 사랑을 하라는 뜻이었나.

    

버드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자웅이체라고 한다. 4월경에 피는 버들강아지 또는 버들개지라고 부르는 것이 버드나무의 꽃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버드나무는 양기가 강해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이 있어 굿을 할 때 버드나무를 활용하기도 했고, 서양에서는 버드나무를 마녀가 모이고 숨는 장소로 여겼다고 한다. 버드나무 썩은 줄기에 흘러든 날벌레들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죽으면 그 사체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인 성분을 낸다. 버드나무 가지가 어둡고 우중충한 날씨에 반짝거리면 사람들은 도깨비불이라 하며 왕버들을 도깨비버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밤에 보면 으스스할 만도 한다. 물가의 갯버들 가지로 만드는 버들피리도 일품이다. 호드기나 날라리라 부르기도 한다. 화투의 비광도 버드나무다. 작은 개울과 개구리가 있으니 물가에 자생하는 식물이고, 잔털이 난 길고 검은 형체는 버드나무를 표현한 것이다.   이래저래 이야깃거리가 많은 나무일세.   


서울에도 버드나무 숲길은 많이 있다. 여의도 샛강공원, 광나무 한강공원, 양화한강공원, 서울숲 버드나무 연못도 유명하다. 양화는 이름도 버드나무 꽃이다. 가지를 꺾어 호드기를 만들 순 없지만 버드나무 꽃 아래서 그리운 사람을 떠올려 봄 직하다. 도깨비불을 볼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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