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이별을 하려 해> 문별(마마무)
커피숍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오는 것도, 햇살이 따스한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아침.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 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한 모금 마신 커피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3 샷을 품은 나의 아이스아메리카노 때문에. 2 샷에 익숙하지만 동시에 망각의 동물이기도 한 나는 입안을 가득 메운 커피의 쓴맛을 느낄 때쯤에야 비로소 무언가 어긋났음을 깨닫는다.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다. 하지만 어느새 같은 패턴으로 마음을 주고, 또다시 아파하는 나를 보곤 한다.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도 있는 법인데, 나는 어째서인지 헤어짐에 무척 취약하다. 남녀 사이뿐만 아니다. 기간 정함이 있는 모임이나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어딘지 모르는 허전함과 공허함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서서히 회복된다. 계속 같은 패턴으로 살다 보니 대체 왜 그러는지 궁금해졌다. 이유를 알아야 조금이라도 바꿔볼 수 있을 테니까.
플레이리스트를 쭉 살펴보다가 이 노래를 발견했다. ‘서툰 이별을 하려 해.’ 이별이면 이별이지 ‘서툰 이별’은 무엇일까. 제목을 보고 문득 얼마 전 겪은 이별이 생각나서 혼자 심각한 얼굴로 이 노래를 재생했다. 이 노래가 나에게 답을 줄까. 소란스러운 내 마음을 잠재울 수 있을까.
아티스트 이름에 문별(마마무)을 보고 기대감이 컸다. 문별은 마마무에서 주로 랩을 담당하고 있지만, 종종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보컬 레인지가 넓지 않아도 감정선이 좋고 표현력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솔로곡을 들어보면 남자 아이돌이 부를 것 같은 노래를 선보이기도 하는데 거기에서 오는 새로움이 신선하게 느껴져서 이번 곡은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다.
후렴 멜로디가 좋아 앨범 소개를 열어보니 ‘윤토벤’이 원곡자로 되어있었다. 원곡과 리메이크 앨범은 무슨 차이일까 싶어 원곡과 교차하며 들어보았다. 원곡의 남자 보컬이 주는 감정선과 편곡의 차이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여러 번 반복해 들어보니 문별이 한 음씩 끊어서 부르는 부분이 참 좋았다. 예를 들어 가사 중 ‘갈게’라는 부분도 흐르듯 부르지 않고 갈. 게. 이렇게 끊어서 표현한 부분이 정말 이별을 앞둔 이의 마음 같았다. 나의 마음을 꾹꾹 누르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다만 가사에서 와닿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평범한 느낌. 하지만 노래 제목이 계속 내 마음에 머물렀다. 원곡자의 앨범 소개에서 ‘아직 이별이 서툰 나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별에 익숙하지 않아서 능숙하게 극복하거나 툭툭 털고 일어나는 모습은 아직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이별에 능숙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딱 이만큼이라고 정해놓고 마음을 주거나 적당한 관계에서 이별하고 싶어도 어느새 상대에게 흘러넘치는 마음을 막을 수도, 잡을 수도 없다. 오히려 마음이 깊을수록 그 비워진 자리만큼 아파하는 모습이 이별의 모습은 아닐까.
‘이별은 서툴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다소 짧은 문장이기에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문별의 앨범 소개에서는 이점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의 이별도 언제나 제자리걸음이다. 아주 어린 나이도 아닌데, 마음이 무뎌질 법도 한데, 좀처럼 그러지 못한다. 특히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굉장히 집중하고,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어져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더디다. 이번에는 정말 덜 아프기를 바라는 데 내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망각의 동물이라서 이별의 아픔을 잊고 또다시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주고 마는 걸까. 아니면 이별보다 만남이 주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여러 종류의 만남과 헤어짐을 겪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어떤 이별도 능숙하게 다루지는 못할 것 같다. 여전히 서툴고 미숙한 모습으로 이별을 대하겠지. 커피 한잔에 쓴맛을 느끼며 다짐했던 나의 시간이 쌓이고 모여 감정이 무뎌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 온다면 그땐 좀 능숙하게 대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아직 나는 ‘서툰 이별’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