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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플레임 Apr 07. 2024

중딩이가 학교에 가는 이유는?

축구하러 학교 가요.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느꼈다.

이 녀석들의 축구 사랑.


보통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방과 후 축구를 시작하면서 동네축구를 시작하는 꼬맹이들은 그 후 점점 필드축구에서 멀어져서 온라인 축구로 가는 것이 내가 아는 초등아이들의 축구인생이다. 그런데 이 녀석들, 중학생이 될 아이들이 맞나.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축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환호성을 지른다. 누가 보면 축구단 입단 오리엔테이션인 줄 알겠다. 하지만 이곳은 대안학교 입학 오리엔테이션장. 


결국 입학식 전날 그 어떤 안내보다도 먼저 축구단 심사 안내가 날아왔다. 첫 수업을 마친 후 바로 체력테스트를 실시한다고. 

첫날부터 체력 테스트를 위해 체육복을 챙겨서 등교했던 아이는 아주 쿨하게 자기는 심사에서 떨어졌다고 알려왔고 나는 그걸로 축구와의 인연은 끝이라 생각했다.


"너 학교 수업이 4시 10분에 끝나는 거 아냐?"

"응, 그렇지."

"그런데 왜 매일 다섯 시가 넘어서 집에 오는 거야? 그렇게 시간이 걸리진 않을 텐데?"

"축구공을 가져오는 아이가 있어서 남아서 축구 좀 하다 오느라고."

"축구를? 매일?"

"응. 매일매일. 애들이 축구하러 학교를 오는 것 같아."


축구단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축구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반 대항 축구경기가 있었다. 9학년 형들과의 경기를 매우 큰 점수차이로 졌지만 즐거웠다고 한다.

그래. 즐거웠으니 됐다. 이걸로 끝...인 줄 알았으나 여전히 매일 하교 후 축구를 하다 집에 온다.

어느 날은 아예 날을 잡고 외부 코트를 빌려 축구를 하다 온다.

다음 주는 같은 학년 다른 반과 축구 경기가 있다고 한다.


오... 내가 아이를 축구단에 보냈었던가. 

이 아이들의 식지 않는 정열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런데 가만 보니 아이들 대부분이 핸드폰이 없다.

그러니 자연히 게임을 거의 하지 않고 오락거리라곤 축구밖에 없는 듯하다.

쉬는 시간에도 축구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진다고 한다.

자연스레 겜돌이 아들도 학교에선 게임 이야기 대신 축구 이야기만 하다 온다.

실제 축구를 하는 건 당연하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컴퓨터 시간제한 프로그램을 깔지 않아서 하교를 빨리 한다면 그만큼 게임을 더 할 수 있는데도 집에 일찍 오지 않는 걸 보면 아들도 게임보다 친구들과 하는 축구가 더 재미있나 보다.

게임을 멀리하는 방법을 이렇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찾게 되다니.

역시 밖에서 땀 흘리며 친구들과 뒹구는 것만 한 재미는 없나 보다.


축구단에 똑떨어진 아들에게 올해 처음 신설된 농구 방과 후 수업을 권했다.

기왕 땀 흘리며 뛰는 거 키도 좀 컸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이 더해졌달까. 뛰면서 게임생각을 떨쳐버렸으면 좋겠다는 사심이랄까. 


"농구 잘하는 남자가 엄마는 멋져 보이더라. 한번 해볼래?"

"난 축구가 좋은데!"

"농구도 해보면 재밌을 거야. 금요일은 애들이 다 축구단으로 가서 같이 축구할 친구도 없으니 그날 농구를 하는 거야. 어때?"

"음.... 그럼 한 번 해볼까?"


이렇게 농구수업에 들여보내는 데 성공했다.

사교육 금지정책에 힘입어 교과 학원을 다니는 곳이 없어 여유로운 저녁시간에 태권도 수업을 등록했다. 


중학생이 된 지 이제 한 달.

아이를 중학교를 보낸 줄 알았는데 체능단에 보낸 느낌이다.

매일 밤 땀 흘리고 들어와 씻고 누우면 머리를 대자마자 잔다.


한창 열심히 공부하고 학원 다니는 다른 중딩들을 보면 지금 이 시간을 이렇게 즐겁게만 보내도 되나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지만 아직은 축구하러 학교 가는 중딩이가 귀엽다.


불이 꺼진 아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보니 얼마 전까지 분명 아기 같았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감격스럽다. 몸집은 커졌어도 여전히 내게는 귀여운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다 보니 머리맡에 무언가가 있다. 

내일 학교에 가지고 갈 골키퍼 장갑. 새 물건을 사면 꼭 가지고 잠들던 아기 같은 습관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 반갑다.


솜털이 보송한 앳된 얼굴에 살며시 볼을 맞대어 본다.

그리곤 꿈결에라도 들릴까 살짝 속삭였다.

"아들아, 축구를 그 정도 했으면 이제 좀 잘할 때가 되지 않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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