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얘기 하기 쉽지 않아요.
"나 얼마 불러야 해?"
"네가 지금 얼마 받는데?"
"대충 이 정도인데 너무 높이면 안 뽑을까?"
"꼭 가야 해?"
"가긴 가야지. 그래도 연봉도 잘 받으면 좋겠어."
얼마 전 이직을 앞둔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놀랐던 적이 있었다. 보통 이직의 마지막 단계인 연봉협상 단계에서는 최종 오퍼가 얼마로 나올까, 그전에 얼마를 희망연봉으로 불러야 할까 고민이 되는 단계가 있다. 하지만 사실 거기에는 정답이 원래 있다. How are you? 에 대한 대답으로 Good, thank you. 정도의 응답처럼 당연한 식이랄까. 그런데 가끔 후보자들을 보면 정답을 모르고 너무나 날것의 대답을 하는 경우를 볼 때가 있어 살짝 당황할 때가 있다.
그럼 모범답안은 뭐고 여기에서 응용은 어떻게 해야 할까?
1. 희망연봉이 어떻게 되시나요?
-> 처음 받은 질문에 숫자로 대답하지 말기. 흔히 희망연봉을 물어보면 예를 들어 OO만원 이상이라는 둥 적어도 OO만원은 받아야겠다는 등 직접적인 숫자로 대답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이 질문은 애초에 그런 질문이 아니다. 처음에 바로 숫자로 대답을 한다면 '저는 연봉협상 애송이예요.'라는 고백일 뿐이다. 그럼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 정답은 질문은 질문으로 답하기.
우선 귀사의 연봉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시면 그에 맞춰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사마다 연봉구조가 다 다르고 부르는 이름도 다른데 어떻게 한 숫자로 희망연봉을 알려줄 수 있겠는가. 직전회사 급여명세서나 원천징수영수증을 제공하기 전에는 숫자를 직접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 이전에 본인의 현재 연봉 break down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의외로 본인 현재연봉도 Base+Incentive+cash benefit으로 구분할 줄 모르는 후보자가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이면 연봉협상에서의 우위를 점하기는 매우 어렵다.
2. 이 포지션에는 정해진 budget이 있어서 협상의 여지가 없어요. 괜찮으신가요?
-> 가끔 답정너식으로 정해진 연봉에 맞추던가 아니면 아웃이라는 식의 회사가 있다. 이런 경우 후보자가 아무리 협상에 긍정적으로 임하려고 해도 협상의 폭 자체가 없기도 하다. 이럴 경우에는 이렇게 답해보자.
=> 회사의 내규는 충분히 존중합니다. 그렇다면 연봉 외에 제공되는 allowance(수당)이나 cash benefit(현금성 복리후생)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연봉은 아주 타이트하게 정해진 예산이 있지만 기타 제공사항은 비교적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회사가 있다. 그런 경우 협상에 따라 생각지 못하게 좋은 조건을 받을 수 있으므로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그리고 기껏 연봉협상 잘해놓고 기타 복리후생에서 기존에 받던 것들을 다 놓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모든 조건은 입사 전에 따져야 하는 것이지 입사 후에 따져봐야 아무 소용없으니 미리미리 알아보고 바꿀 것이 있다면 그것도 미리 요구해야 한다.
3. 연봉이 너무 높아서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 이것도 잘 따져보자. 진짜로 내 연봉이 업계 대비 높은 것인가. 진짜 높다면 받아들여야지. 하지만 그게 아니고 단지 협상의 목적으로 일단 후려치고 들어오는 거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때는 나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 이 업무와 저 정도의 경력이면 제가 현재 받고 있는 수준의 연봉 정도가 market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협상의 여지가 있으니 잘 검토해 보시고 알려주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내가 오퍼를 거절할 마음이 있더라도 감정적인 답변은 지양해야 한다.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끝까지 잃지 않고 당당하게 나의 가치를 주장한다면 그 점에서 오히려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는 돈이 전부가 아니다. 물론 아주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특히 경력이 짧을수록 그 회사의 그 포지션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이득이 더 크다면 (예를 들어 꼭 배워두면 몸값이 높아지는 직무라던지 아니면 그 회사가 너무나 업계에서 잘 나가는 회사라던지 등등) 기존의 연봉보다 더 낮게 이직하는 사례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기대하지 않았던 회사의 주식이라던지 타회사에 비해 좋은 보험이라던지 하는 것들이 본인에게 의외의 이익으로 돌아오기도 하므로 꼼꼼하게 오퍼 패키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협상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니 끝까지 예의와 존중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은 연봉 협상 담당자와 승인권자는 다른 사람이다. 그럴 때 나와 직접 협상하는 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유리할까, 아니면 나의 대척점에 있는 적대적인 협상 대상자로 만드는 것이 유리할까. 당연히 그 사람을 회사에 돌아가서 나를 대변할 수 있는 나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끝까지 예의 바르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야, 이 정도 알려줬으면 이제 협상 잘할 수 있겠지?
음... 뭐라고? 그래서 얼마를 불러야 하냐고??...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