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님, 다이어트를 하려면 그래도 식단관리는 좀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저는.. 자신이 없는데요.."
"그럼 다른 회원님들 보면서 자극 좀 받아보세요."
"그럴... 까요? 근데 저 닭가슴살 사야 하나요?"
"꼭 닭가슴살 아니어도 돼요."
그렇게 시작되었다.
설 연휴에 야무지게 음식을 끼니마다 챙겨 먹고 그와 동시에 온몸 구석구석 지방이 쌓이는 걸 느꼈다.
그래, 난 2월부터 식단을 할 거니까.
분명 예전보다 과자를 덜 먹는데.
그렇다고 예전처럼 야밤에 폭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 야속하게 체중계는 변동이 없을까.
심지어 나는 일주일에 두 번 피티도 하는 여자라니까! (물론, 피티만 와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도대체 내가 뭘 먹는지를 보기 위해서라도 해보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 피티선생님의 단톡방 제안을 덥석 물어버렸다. 어차피 돈을 더 내는 것도 아니니까.
뭔가 좋은 말이 잔뜩 적힌 종이를 건네주셨지만 쿨하게 한번 휘리릭 읽고 끝.
자, 드디어 2월이 왔고 그렇게 식단을 체크하는 그날이 밝았다.
아침에는 묵혀두었던 단백질 파우더. 유통기한이 조금 지났네. 괜찮아. 이건 유통하는 기한일 뿐 그 뒤로 좀 더 가도 된다고 했어. 우유는 그래도 양심상 저지방을 놓고 타먹어 볼까.
점심에는 샐러드를 먹겠다는 계획과 다르게 회사에서 워킹런치. 김밥과 샌드위치 세트다. 어쩌지.
도시락을 주는데 나 혼자 갑자기 샐러드를 사러 나가는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좀 그렇지?
김밥을 슬쩍 한 알 먹고 샌드위치는 빵이 노란 걸 보니 통밀인가? 모서리 부분은 남겨두고 속만 파먹어 본다.
그래, 다 안 먹고 남긴 게 어디냐.
저녁은 집에서 한식을 먹으려고 했는데.
애들 간식으로 먹으라고 싸 온 먹다 남은 김밥 도시락에 다시 손이 간다.
멸치가 잔뜩 얹어진 도시락은 어쩜 건강식일지도 몰라.
점심, 저녁을 도시락 하나로 먹다니 나 너무 훌륭한 거 아냐?
배도 부르고, 딱 좋다.
띠링.
나름 하루를 훌륭히 보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음식사진을 단톡방에 보내고 뒹굴던 때 선생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회원님, 단백질 파우더는 우유에 타서 드시면 안 돼요. 당이 많아요."
"김밥은 염분이 많아서 다이어트하실 때는 드시면 안 됩니다."
"오늘 식사는 탈락입니다."
!!!! 이럴 수가!
분명히 우유에 타먹으라고 설명서에 적혀 있었는데!
김밥.. 나름 영양균형식 아니었나? 난 지금까지 왜 그렇게 생각했지?
탈락이라니... 첫날부터 탈락이라니...
띠링.
띠링.
다른 회원들의 식단 사진이 속속 도착한다.
마라탕
쫄면+군만두
마라샹궈
누가크래커
오 마이갓!
피티 선생님은 조용히 식은땀을 흘리고.
탈락자가 왠지 나 혼자만은 아닐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중에도 채소와 계란, 고구마로 인증을 하는 모범학생들도 있었지만 왠지 너무 비인간적이니까 오늘만큼은 흐린 눈으로 사진을 넘겨버린다.
휴우, 이 지긋지긋한 살과의 전쟁은 언제나 끝이 날까.
근데 왜 난 이 밤에 또 뿌링클과 홈런볼이 먹고 싶을까.
정말 모르고 싶은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