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던 취미를 꺼내는 즐거움
많은 이들이 내게 말했었다. 아이가 아프고, 삶이 힘든데 그런 것이 다 무슨 사치냐고 말이다. 노트북을 펴고 타자를 두드릴 시간이 있으면, 잠이나 한숨 더 자고 아이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너의 갈망 따위, 취미 따위는 접어두고 사는게 맞다고. 나도 꽤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었다.
치료실에 아이를 밀어넣고 나면, 핸드폰을 보고 있거나 화장을 잠시 고치는 것조차 부끄럽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아이 하나 똑바로 못키워서, 쯧쯧, 엄마가 되가지고. 모두가 나를 비웃는 것 같은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만난, 비슷한 아이들을 키우는 많은 엄마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쏟거나 희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스스로를 좀먹고, 종국에는 그 모든 탓을 아이에게 돌리게 된다고 했다. 아이가 살려면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고,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을 먼저 고민해야 아이와 롱런할 수 있다고 말이다. 같은 아픔을 겪는 엄마들의 이야기는 내게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그리고 인생의 방향을 새로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문득 대학시절 교수님께 들었던 농담이 생각난다. 문창과를 나온 친구들은 대부분 B급 작가가 되거나 고급 독자가 된다고. A급 작가가 되려면 오랜시간 벽보고 엉덩이 붙이고 지낼 수 있는 돈줄이 있거나, 타고난 글빨이 있어줘야 되는데 둘다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 그냥 너희는 고급 독자가 될거라고. 우리는 자라나는 문재들의 싹을 이렇게 밟는게 어딨냐며 야유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은 정녕 사실이었다. 지금 문인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에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많던 쟁쟁한 선후배들은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득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아마도 어디선가 그들도 무언가 쓰고 읽고 있을 것이다. 멀리서나마 건투를 빈다. 우리 오늘도 열심히 읽고, 뭐든 씁시다.
우습게도 꽤 오랫동안 나는, 오래 살아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고, 경험없는 작가가 쓴 글은 다소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얼마나 살았다고 생을 논하나, 얼마나 경험했다고 저렇게 함부로 세상을 심판하려 드나. 그러나 최근에 친해진 한 평론가의 한마디가 머리에 박힌 틀을 깨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말을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보면서 느낀다. 브런치 내에서는 몇 살인지, 어떤 경력이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읽는 즐거움, 쓰는 행복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다양한 삶과 다양한 이야기를 엄지 하나로 읽어내리는 것이 미안할 때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어서 쓰여진 글이라면, 맛있게 읽고 귀히 삼켜보는 것 또한 독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나는 좋은 작가이기 이전에 좋은 독자가 먼저 되고 싶다. 오늘도 가슴 속에 있는 희로애락의 그물을 촘촘히 손질하며 부지런히 글을 쓰는 모든 작가님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좋은 글을 읽는 하루를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