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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Sep 07. 2023

우리 시엄마 이야기. 4

- 나는 엄마가 살아계신데, 자꾸 엄마를 추억하게 돼. 


  병은 알아챈 순간부터 활개를 친다고 했던가. 어머니는 예상보다 빠르게 무너져갔다. 치매란 참으로 무서운 병이었다. 나는 그전까지만 해도 건망증이 심한 것이 치매증상일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고, 건망증 심한 사람은 세상에 많으니 옆에서 한번씩 더 말해주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겪어본 치매는 아예 뿌리부터가 다른 영역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늘상 해오던 일상이 흔들린다. 집에서는 화장실이 어디인지,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공간에 가면 화장실을 찾을 수 없어 자리를 맴돈다. 국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든다. 다시 물을 마시기 위해 컵을 본다.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컵에 있는 물을 떠 먹는다. 국은 숟가락으로 떠서 먹고, 물은 컵을 들고 마신다 라는, 당연하게 우리가 학습해서 몸에 익힌 것들이 하나 둘 잊혀지는 것이다. 드라마에서처럼 치매 진단을 받으면 곧바로 "누구신데 여기 계세요?" 라고 하거나, "저를 아세요?" 와 같은 대사를 내뱉는 것이 아니었다. 

  명절이 되었다. 어느 때보다 무거운 명절이었다. 나는 슬픈 분위기가 싫어 부지런히 움직이고 전을 부치고 갈비찜을 안쳤다. 잡채를 볶고 나물을 무쳤다. 떡도 한가득 샀다. 안나오는 애교를 쥐어짜 주책을 부렸다. 그럼에도 웃음소리는 잠시뿐, 분위기는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많은 것을 조금씩 잊어갔다. 전을 부치는 방법도, 반찬을 만드는 방법도 잊혀져갔다. 엄마가 만들어준 콩나물잡채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던 아들들은 음식을 맛보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음식 맛은 점점 이상해졌고 어머니는 점점 혼란스러워했다. 잘 해 오던 것들이 문득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어떤 기분이 들 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치매라는 병의 지독한 슬픔은 여기에 있었다. 내가 느끼는 마음과 아픔을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병이 들면, 장기가 망가지면, 암에 걸리면,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표현하고 최소한 울부짖어볼 수라도 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장기를 이식하거나 임상적 치료를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치매는 주변의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온전히 병자 혼자서 모든 것을 느끼고 감내해야만 하는 병이다. 곁에서 지켜보기에 참으로 외롭고 처절한 슬픔이었다. 

  이러한 것들보다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점차 가장 강렬했던 기억들만 남기 시작했다. 첫사랑인 남편의 이름, 처음 낳은 내 큰아들의 이름, 처음 안아본 손자의 이름을 기억해냈지만 둘째 아들의 이름도, 며느리의 존재도, 새로 태어난 손자의 이름도 점차 흐려져갔다. 글씨를 쓰는 방법을 잊어갔고, 이름 석 자를 종이에 적기가 어려워졌다. 

  차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이지만, 어머니와 내가 둘이 있을 때 어머니가 혼자 손바닥에 침을 발라 머리를 열심히 정돈하신 적이 있었다. 어머니, 뭐 하세요? 응, 머리 단장 좀 하려고. 어머니는 오지 않는 신랑을 내내 기다리며 젊은 시절 그랬듯, 거울을 보며 열심히 머리를 매만졌다. 그리고 자꾸만 핸드폰을 만지작댔다. 아무리 기다려도 귀가하지 않던 젊은 날의 그녀를 보는 것 같아 몹시 서글펐다. 그러나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깨끗하게 손을 씻겨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우리 어머니는, 발병한 지 8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 건재하시다. 독하디 독한 약도 잘 견디고 계시고 아직까지 큰 병 없이 잘 드시고, 잘 주무시고 계신다. 남편은 가끔 말한다. "나는 엄마가 살아계신데, 자꾸 엄마를 추억하게 돼. 그게 너무 죄송해." 그 말이 너무 아팠다. 곁에 있는 사람을 두고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야 하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사십여 년을 자식으로 살았지만, 엄마는 아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이름도 부르지 못한다. 어쩌면 다시는 불러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바람에 흩어지는 모래성처럼, 기억의 조각들이 조금씩 빠져나가면 무엇이 남을까. 일상이란 단어가 가끔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이미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가 기억하면 되니까, 이렇게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남길 수 있으니까.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준다면, 우리 시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좀 덜 외롭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적어본다. 당신의 치열하고 뜨거웠던 인생을 내가 기억할테니, 우리 사는 날까지 행복합시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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