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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Sep 07. 2023

우리 시엄마 이야기.3

-여보, 어머니 머리 속에 병이 생긴 것 같아. 


  (첫번째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늦은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모두들 긴 여정으로 지쳤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시골집의 추억에 흠뻑 취한 모습이었다. 남편에게는 고향이었고 어릴 적 뛰놀던 공간이니 오죽 좋을까. 장사로 바빴을 그에게도 시골은 무척 오랜만에 나선 길이었다. 나 역시 정신없고 피곤했지만 오늘만큼은 남편의 마음을 한껏 알아주고 싶었다. 그렇게 모두가 흥겹던 저녁, 얼추 식사가 끝나가고 과일과 후식을 먹기 위해 준비하려던 참이었다. 내가 준비할테니 넌 그냥 있어. 일어나려는 나를 앉혀놓고 혼자 부엌으로 향하신 어머니의 뒷모습이 어쩐지 불안했다. 나는 취기가 오른 남편의 손을 다독거려주고는 슬그머니 자리에게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어머니는 또다시 뭔가 심각해 보였다. 한 손에는 사과를, 한 손에는 과도를 꼭 쥐고는 깊은 생각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잠시 기척을 내지 않고 기다렸다. 어머니는 손에 든 과도를 내려놓더니 옆에 있던 포크를 집어들고 과일을 깎았다. 당연히 사과는 깎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잠시 머뭇대다가 다시 과도를 잡아들고 사과를 깎았다. 서걱서걱. 사과 껍질이 쟁반에 동그랗게 모였다. 어머니는 그제서야 안심한 얼굴로 사과를 툭툭 잘라 접시에 담았다. 나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 화장실로 향하는 척 하며 자리를 피했다. 어쩐지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면 안될 것 같았다.


  여행히 끝나고 며칠 뒤, 퇴근한 남편을 불러앉혔다. 오빠, 할 이야기가 있어. 남편은 피곤한 기색을 하다가 굳은 내 얼굴을 보고 자리에 앉았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보, 아무래도.. 어머니 머리 속에 병이 생긴 것 같아."




  예상대로 남편은 버럭 화를 냈다. 나는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히 들려주었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다 듣더니 엄마가 요새 가게일까지 하시느라 피곤해서 그러신 것 같다며, 아무래도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의 혼란을 충분히 이해했다. 태산같은 내 엄마가 이상하다고 말하는데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내가 할 말은 다 전했으니, 이제 결정은 남편의 몫으로 두어야 했다. 그렇게 서로가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생각이 많은 얼굴을 하고, 남편이 내게 말했다. "엄마 검사 예약했어. 내일 가기로 했어." 나는 잘 생각했다는 말 대신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는 손을 계속해서 쓸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디 아무 일이 없기를 빌고 또 빌었다.


  아침이 밝았다. 아주버님과 남편이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출근을 했다.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하루가 저물어갈 즈음, 남편에게서 퇴근하면 가게로 와줬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빠르게 일을 마치고 가게로 향했다. 언제나 환하던 가게 불은 무겁게 꺼져있었고, 아주버님은 눈이 새빨갰다. 나는 이미 짐작했지만 애써 덤덤하게 물었다. 남편은 계속되는 내 질문에도 한 마디도 대답하지못했다. 보다 못한 아주버님이 내 손을 끌고는 가게 밖으로 나왔다. 


  "제수씨, 놀라지 말고 잘 들어요. 엄마가, 조금 아프신 것 같아요."

  "무슨 병인가요?"

  "치매래요. 우리 엄마. 이미 진행이 좀 된 것 같다고 하네요."


  짐작은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보이신 여러 모습에서,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어도 다른 병명은 떠오르지 않았었다. 그러나 짐작했다고 해서 바로 현실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었다. 말도 안 돼, 우리 어머니가 치매라고? 그거 노인들이나 걸리는거 아닌가? 우리 어머니 아직 환갑도 안 됐는데. 오진일거야.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다른 병원 가봐야 되는거 아니에요? 오진일 수도 있어요."

  아주버님은 차분하려고 노력하며 내게 오늘 일을 들려주었다. 병원에서는 여러 검사가 이루어졌고, 어머니는 최저 기준보다 조금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아직은 초기라 인지부분은 괜찮지만, 기억력은 이미 상당 부분 떨어졌다고. 점차 더 나빠질 것이고 병의 진행을 막을 방법은 현대 의학에서는 없다고. MRI검사실에서 어머니는 있는 힘껏 통을 두드리며 무섭다고, 꺼내달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런 엄마의 모습은 난생 처음이었다고,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주버님의 목소리는 어느새 들리지 않을 만큼 무겁게 잠겨있었다. 내 힘으로 위로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 앞에서, 나는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고장난 것처럼 머릿속이 삐그덕댔다. 

  "고칠 수 없다면, 늦출 수는 있잖아요. 아직 젊은데, 아직 기력이 좋으시니 가능하지 않을까요?"

  "약으로 늦출 수는 있어요. 다만, 부작용이 있는데... 약을 십 년 이상 드시기는 어렵대요."

  "왜 십년이에요? "

  "...... 십 년 이상 드시고 살아계신 분이 거의 없다네요. 너무 독한 약이라서."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달나라에도 가는 시절에 고작 치매약 몇 년 먹었다고 사람이 죽는다는 게 말이 돼? 그 병원 못 쓰겠네, 고칠 자신 없으니 약이나 팔아먹자는 심보로 약한 보호자들 마음을 이렇게 현혹해? 내가 아주 내일 악성 민원을 넣을 거야! 흥분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날 보고 두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씩씩대며 어머니에게 단숨에 뛰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어머니, 아무 말도 듣지 마요. 내가 내일 알아볼테니까. 도대체가 말만한 아들 둘이 덩치만 컸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내가 알아볼거에요. 걱정 마세요 아셨죠? 

  어머니는 충격이 컸는지 그냥 내 말을 가만히 듣고 계셨다. 그 모습이 못 견디게 속상했다. 그래도 이렇게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뭐든 알아보아야 했다. 

  다음날부터 나는 모든 인맥과 검색을 통해 백방으로 치매에 대해, 치매약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병원에도 전화해보았다. 절망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병원은 틀린 말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 다만, 가장 나쁜 케이스를 말해줄 뿐. 병원에서 의사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어머니처럼 비교적 젊은 나이에 혈관성 치매가 온 경우, 급격히 나빠질 수 있어 약물치료는 꼭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약물은 어디까지나 증상을 완화하고 병의 진행을 늦춰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 약의 부작용 모두 사실이라는 것까지 확인하고 난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확인해야 했다. 죄 없는 의사에게 따지듯 물었다. 


"선생님, 혈관성 치매는 왜 생기는 건가요? 저희 어머니는 치매가 오기엔 너무 젊잖아요. 오진 아닐까요?"

" 보통 뇌혈관 질환에 의해 뇌 조직이 손상을 입어 치매가 발생하는 걸 혈관성 치매라고 하는데,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외적으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뇌혈관이 손상될 경우 발병하기도 합니다. 혹시 어머니께서 과거에 다치셨거나 큰 충격을 받으신 일이 있는지요? "


  잊고 있었다. 어머니가 과거에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당시에 병원에서 권하는 검사를 받지 않고 그냥 지나쳤었다는 것을.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도 따질 수 없고, 원인을 명백히 알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머니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혈관이 터지고 곪아 썩을 만큼 병들어있었던 것이다. 슬픔이란 꾹꾹 누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 단단하게 뭉쳐지고 곪은 슬픔들은 몸 안을 이리저리 유영하다가 어디에선가 멈춰서 펑 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터져버린 어머니의 슬픔들은 어머니의 기억을 하나 둘 빼앗아갔고, 인지를 잃어가게 했으며 종국에는 모든 것을 앗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도저히 이 현실을 이겨나갈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엉덩이를 떼고 일어날 동력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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