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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Sep 07. 2023

우리 시엄마 이야기.2

- 사랑은 대문으로 나가고, 가난은 창문으로 스몄다.


  시엄마는 참으로 가여운 여자였다. 아버지에게 등 떠밀려 나간 선자리에서, 순진했던 감나무집 둘째 딸은 풍채가 좋고 호탕한 남자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는 손재주가 좋아 동네에서 목수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고장난 물건도 그의 손을 거치면 무엇이든 뚝딱 고쳐졌다. 불이 나간 전등도, 쫄쫄 나오는 수도도, 망가져버린 자전거도 모두 손볼 줄 아는 만능 재주꾼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 아내의 고장나버린 가슴은 끝내 고치지 못한 못난 위인이였다.

  직업상 밖으로 도는 일이 많았던 남자는 여자 문제로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다 때려치고 싶었지만, 딱 한 번만 더 참아보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고 싶었지만 지긋지긋한 인연의 밧줄을 끊어줄 아버지는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야속한 세월은 자꾸 흘렀고, 고물고물한 자식들이 생겼다. 자식들을 버릴 수 없어 또 살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삶이었다. 집 안에 화장실이 없어 무서워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밤이고 낮이고 변소를 찾아다녔다. 그나마도 겨울이면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아이들을 잘 씻기지 못했다. 시엄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남들이 꺼리는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생선이 무서웠지만 횟집에서 식칼을 쥐고 생선 머리를 끊어냈다. 아이가 보채면 젖병을 물려주고 잠이 들면 다시 세차장으로 나가 부지런히 자동차를 닦았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는 어두운 대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쓰러져 자고 있곤 했다. 시엄마는 아이를 안아줄 새도 없이 자리에 내려놓고 고단한 몸을 눕혔다. 지금 자야, 내일 또 일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아이가 가방을 내려놓고 엉엉 울었다. 친구들에게 지저분하다고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시엄마는 가슴을 쥐어뜯었고, 냄비에 물을 끓여 부엌 한 켠에서 아이를 씻겼다. 깨끗이 씻지 못한 냄비에서 전날 먹은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났다. 입술에 닿는 짠 맛이 눈물인지 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경기가 어려워지자 일거리가 줄었고, 그나마 조금씩 들어오던 남편의 일감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주머니가 비기 시작하자 가난했던 부부는 더욱 예민해졌다. 싸움이 커지자 남편은 아내에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맞는 아픔은 견딜 수 있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맞는 것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창피했고 미안했다. 못난 내 모습이 보기 싫어 집안에 있는 거울을 모조리 없앴다.

  찬 바람이 불던 겨울 밤, 또다시 싸움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소리 높여 울었고, 아빠가 밉다며 엄마를 보호하고 달려들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해진 육신을 안고 시엄마는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발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천운으로 목숨을 건졌다. 외관상 크게 다친 곳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종합검진을 받아보라는 의사의 충고를 무시한 채 걸어나왔다. 다시금 딛는 땅바닥이 서럽고 아팠다. 차마 자식들을 볼 낯이 없었다. 머리 위로 하늘을 이고 있는 것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크게 숨쉬는 것조차 귀찮았다. 그래도 갈 곳은 집 뿐이었고, 나를 기다리는 자식들의 얼굴을 다시 떨쳐낼 자신이 없었다. 터덜거리는 발걸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새 신을 신은 것처럼 뒤꿈치가 아프고 발톱이 쑤셨다.

  폭풍우가 지나갔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남편은 여전히 외도를 했고 이따금씩 손이 올라왔지만 장성하는 자식들의 눈이 무서워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엄마에게는 아들 둘이 가장 친한 벗이었고 낙이었으며 한 줄기 숨쉴 바람이었다. 그녀에게 자식이란, 오늘 숨을 쉬고 내일 눈을 떠야 할 유일한 이유였다.  

  가끔 속이 답답할 때면, 시엄마는 혼자 노래방을 찾았다. "노래 한두 곡만 부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코인노래방이 없던 시절, 노래방 주인은 시엄마에게 꼬깃한 푼돈을 받고 방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얻은 두어 평 남짓한 칙칙한 공간에서 시엄마는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오면 눈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젖을 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 세라 사랑 땜에 울먹일 세라..  <나훈아, 홍시>  


  할아버지가 살아생전 즐겨 부르시던 노래를, 한 서린 목소리로 부르며 꺼이꺼이 울었다. "아버지, 그 때 나 좀 말려주지 그랬소. 한번만 참으라 하지 말고 걷어치우고 나오라고 해주지 그랬소. 그랬으면 나 이렇게 안 살았는데, 아버지 둘째 딸 속이 다 썩어서 떨어져 나갔소." 노래방 주인은 손님이 몰려와도 시간이 다 되었다며 시엄마를 내쫒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또 버텼다. 다행히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주었고 자식들은 바르게 자라주었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가 아들들에게 한번 호되게 당한 뒤로는 더 이상 시엄마에게 손을 대는 일도 없었다. 부지런히 모은 돈을 손에 틀어쥐고 시엄마는 경제권을 잡았다. 가난했던 집안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아들들은 착하고 성실하게 자랐다. 돈 귀한 줄 알았고 사람 소중한 것을 알았다. 다소 자유롭고 헐렁한 첫째와 달리 둘째아들은 손맛이 좋았고, 천성이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크지 않은 가게였지만 시엄마는 부지런히 장사를 도왔다. 어딘가에 매일 갈 곳이 있다는 것도 좋았고, 사람들이 아들의 장사수완을 칭찬하면 어깨가 절로 으쓱했다. 그간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아들들 장가보낼 밑천도, 늘그막에 쓸 노후자금도 그럭저럭 마련해둔 후였다. 참으로 부지런한 삶이었다. 이제 아들들 좋은 연분 만나면 짝 지워주고, 손자들 재롱을 보면서 과자 사 먹을 돈을 쥐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야속한 세상은 시엄마에게 그만큼의 행복도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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