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아 Sep 07. 2023

우리 시엄마 이야기

-자는 애를 왜 자꾸 찔러? 넌 가서 해장국이나 끓여.


  대학 시절, 평론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글을 쓸 때는, 머릿속에 첫 문장과 끝문장을 미리 생각하고 쓰는거 아닌가? 나머지는 내용만 채우면 되는거에요. 어렵지 않아." 그래요, 선생님께는 그게 참 쉽겠지만 저는 절대로 쉽지 않답니다. 강의실에 있던 모두는 한마음으로 선생님께 야유를 보냈고, 선생님은 우리의 그런 야유를 가뿐히 비웃어주셨다. 

  글쓰기를 전공했고, 글을 오랜시간 써 왔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직도 글쓰기가 어렵다. 마음을 꺼내놓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말로 꺼내는 것보단 글로 꺼내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깊은 곳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무게의 추를 꺼내놓는 것은 늘 힘들게 느껴진다. 오늘 꺼내고 싶은 이야기는, 이름만으로도 아픈 내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고단한 삶을 누군가는 한번쯤 기억해주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자는 애를 왜 자꾸 찔러? 넌 가서 해장국이나 끓여."


  연애 시절부터 나는 어머님과 자주 만난 편이었다. 지방에 계셨지만 서울에 있는 아들 집에 자주 오시는 편이었고 늘 아르바이트와 학업에 찌들어 있는 나를 가엾게 여기고 참 잘해 주셨다. 아침 일곱시에 집을 나서 밤 열한시에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를 위해 아들 손에 손수 만든 뜨끈한 만두를 써서 보내시는 분이었다. 때론 일이 늦게 끝나 너무 지치는 날이면 여자 혼자 위험하다며 아들을 두드려깨워 내가 일하던 곳으로 보내주시기도 했다. "여자는, 안에서 귀히 대접받아야 밖에서도 힘이 나는 법이다. 네가 무조건 먼저 져 주고, 잘해야 해." 항상 남편에게 이렇게 당부하시곤 했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후에도 우리 어머니는 변함없이 날 예뻐해주셨다. 남초회사였던 일의 특성상 회식자리가 잦았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어라 폭음을 하게 되는 날이 간혹 있었다. 가누기도 힘든 몸을 간신히 붙들고 남편 가게로 향한 나는 차 뒷좌석에 널부러졌다. 그런데 아뿔사, 가게에는 남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함께 계셨다. 나의 이성은 냉큼 일어나 정신을 차리라고 외쳤으나 이미 술에 찌든 나의 육신은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술 냄새를 한껏 풍기며 차에서 그대로 반수면 상태로 누워있었다. 눈치를 보던 남편이 나의 옆구리를 세게 찌르고 있을 때, 어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자는 애를 왜 자꾸 찔러? 여자가 사회생활하려면 원치 않아도 술도 먹고 그래야 하는 날이 있다. 나무라지 말거라. 넌 가서 해장국이나 끓여."

  취기가 한껏 돌아있었지만, 나는 어머님의 저 따뜻한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세상 어느 시어머니가 저렇게 말해주실 수 있으랴. 나는 행복했고 어머님께는 딸처럼 귀엽고 살뜰한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아들만 둘 키우신 집에 여자라곤 없다가 종종거리고 돌아다니는 애가 생기니 얼마나 좋으실까. 마음 터놓을 사람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시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물론 이후에도 가족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항상 나를 며느리가 아닌 딸의 입장에서 생각해주셨다. 

  그런데, 결혼하고 떠난 첫 여행에서 나는 어머니가 조금 이상하시다는 걸 느꼈다. 




"어머니, 이거 소쿠리가 아니라 냄비인데요? "


  우리 시댁은 전라도 분들이시다. 그래서 성묘를 가거나 큰 행사가 있을 때면 꽤 먼 길을 떠나야 했다. 결혼하고 난 첫 해, 새 식구를 맞이했으니 인사를 드려야 한다며 온 가족이 짐을 싸서 선산으로 향했다. 약 4시간만에 시골집에 도착했고, 부지런히 다들 짐을 풀며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오늘따라 조금 이상했다. 자꾸 뭔가 헤매시는 느낌이었다. 부엌의 위치도, 화장실의 위치도 자꾸 혼동이 오시는지 여러번 헛걸음을 반복하셨다. 오랜만에 오셔서 그러신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젊은 우리도 피곤할 때면 머리가 꼬이는데, 어른들은 당연히 그러실 수 있지. 나는 바지런히 식사 준비에 전념했다. 고기를 구워먹자며 사 온 상추와 깻잎 등 쌈이 있었다. 나는 비닐을 뜯으며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 소쿠리가 어디 있을까요?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응? 소쿠리?"

"네, 야채 씻으려고요. 어머니 저 소쿠리 좀 찾아주세요. 가위랑 집게 챙겨올게요."

  나는 다른 식기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떴다. 그리고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부엌 한 켠에서 망설이는 뒷모습으로 뭔가를 뒤적이고 계셨다. 응? 소쿠리가 없나? 나는 어머니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밥공기와 냄비, 소쿠리를 번갈아 들었다가 내려놓고 계셨다. 표정도 몹시 당혹스러워 보였다. 나는 어머니를 뒤에서 껴안으며 물었다.

" 어머니, 소쿠리 없었어요? 제가 찾을까요?"

"어? 아 여기 찾아놨는데..."

 순간 가슴에서 뭔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주춤주춤 내미신 것은 큰 냄비였다. 몇십 년을 살림을 해오신 어머니가, 소쿠리와 냄비를 혼동하신다는게 말이 되나? 나는 일단 옆에 있던 소쿠리를 얼른 들어보이며 말했다. "어머니, 여기 이거 말씀하신거죠? 제가 가져갈게요." 나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밥그릇을 챙겨 상으로 향하셨다. 나를 등지고 지나가는 어머니의 등에서 훅 하는 축축한 습기와 땀냄새가 느껴졌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려고 해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추석을 지난 늦가을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우리 어머니에게, 꺼내지 못할 아픔이 생겼구나. 뭔가 숨기고 계시는구나. 부디, 내가 너무 늦지 않게 알아챈 것이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