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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Sep 04. 2023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지

  결혼과 이혼에 대한 재미있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혼 이라는 단어는, '결국 혼자가 낫더라' 라는 말의 줄임말이라는 것이다. 강사의 입에서 이혼은, '이제와서 생각해보아도 혼자가 낫다' 라는 풀이로 번역되었다. 당시에는 깔깔 웃으며 맞네 맞아 하고 웃었지만, 결혼해서 살면 살수록 내게는 참으로 웃지 못할 이야기였다.

  새벽에 활동하는 것을 즐겼던 나는, 대학시절에도 늘 새벽이 다가와야 정신이 들었고 모두가 잠든 밤에 무언가 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는 모두 혼자 하는 것들이었다. 시를 읽고 좋아하는 구절을 수첩에 써보고, 내 것이 될 때까지 몇 번이고 곱씹어 읽는것을 좋아했다. 이어폰을 끼고 혼자 듣는 음악이 좋았다. 고요가 내려앉은 밤공기를 이불삼아 가만히 누워있는 것을 좋아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진한 초콜릿을 입에 물고 이상의 똘아이같은 작품을 읽는 것이 좋았다. 허세스러웠지만 대학시절 사모은 랭보의 시집을 읽는 것이 좋았다. 본캐의 나는 사람 속에 들어가있어야만 돈을 버는 직업이었기에, 혼자 있는 시간이 그만큼 절실하고 소중했다. 나는 결혼을 했지만 그 시간을 결코 침범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는 남편을 사랑하고 안하고의 문제와는 내게 완전 별개의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흘러갈 수는 없었다.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나에게는 '아내'와 '며느리', 그리고 '결혼한 딸' 이자 '며느리가 된 내 딸' 이 추가되었다. 이 다양한 모든 역할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나'는 어디에서도 존재하면 안된다는 점이었다. '나'라는 존재를 축소시킬수록 역할로서의 나는 빛나게 되는, 참으로 독특한 서사였다.

  게다가 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나는 가족관계로 맺어진 친척이라는 이름의 관계를 굉장히 어색하고 불편해하는 사람인데, 나의 사랑하는 남편의 뒤에는 그야말로 대가족이 기다리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8남매, 9남매들의 집합은 실제로 보니 어마무시했다. 결혼식 날, 식장 앞에 차례차례 들어오는 대형버스가 나의 하객일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나는 가족이 많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었고 그나마도 보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더 길었다. 색색의 한복을 입고 나를 둘러싼 결혼식장에서 잠시 혼미해질 만큼 뜨악스러웠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분들은 잠시 뵙고 나면 그만이지만, 그 속에서 살아온 내 남편의 뼛속까지 박힌 사상은 참으로 나의 그것과는 이질적인 것들이었다.

  남편의 집은 여름이면 온 가족이 모여 여름휴가를 갔고, 집안행사가 있을라치면 갓난아기부터 말만한 자손들까지 모두가 한 곳에 모여 다같이 하숙하듯 놀고 먹고 잠을 잤다. 첫 제사 때의 충격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크지 않은 이십평대 초반의 집에 약 삼십 명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보고 박수를 쳤다. 그리고 밤이 되자 성냥개비처럼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누웠다. 공간만 있다면 어디든 누웠고 모두가 그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직 그 속에서 나만이, 물 속을 나온 물고기마냥 아가미를 펄떡대고 있었다.

  기막힌 상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새벽에 일하던 나와 밤에 일하던 남편은 하루에 3시간도 채 보지 못하는 부부였는데, 그나마 격주로 주말을 쉬던 내게는 주말만이 오로지 남편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또한 온전히 우리의 것일 수는 없었다. 주말 아침이면 따르릉 울려대는 전화벨은 끊임없이 내 신경을 긁었고, 대체 왜 그 소중한 주말에 다같이 밥을 먹어야만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시댁 식구들이 남편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기에, 일을 돕지 않고 따로이 일하던 나는 그 속에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의 신혼생활은 현실의 벽에 마주하며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금간 벽에는 금방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슬었다.

  화려한 결혼생활을 꿈꾼 것도, 남부럽지 않은 재력을 기대한 것도 아니건만. 나는 그저, 남편이 좋아서 함께하고싶었던 것 뿐인데. 그 대가가 이렇게 쓸 줄이야. 나는 절망했고 후회했다. 나는 애초에 결혼이 맞지 않는 사람이었구나. 아 망했다. 이젠 어쩌지?

  매일 밤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대학 시절 좋아하던 책을 찾다가, 우연히 당시에 쓰던 필기노트를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던 남진우 시인의 시 구절이 눈에 띄었다.


<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당시엔 그저 멋있어서 베껴둔 문장으로 기억한다. 어쩐지 있어보여서, 그냥 이런걸 적어두면 나도 뭔가 문과대학생같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십여년이 흘러 발견한 싯구절은, 내게 마냥 가볍게 안기지 않았다. 나의 인생의 바람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하루키의 미도리가 좋아하던 봄날의 곰처럼, 나도 따스한 바람이 좋아서, 꽃향기가 좋아서 따라왔는데. 그 바람이 더이상 코끝에 느껴지지 않았다. 감미롭던 그 향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형체도 없고, 만져보지도 못했지만, 분명하게 느껴진 그것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바람이 불지 않아도, 살아야겠다고 발레리는, 남 시인은 이야기했는데. 나는 과연 바람을 잃고도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방황했고 흔들렸다. 머리가 너무도 어지러웠다. 깊은 물 속에 들어가서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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