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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Sep 04. 2023

한겨울 창문 사이로 들이치는 찬바람처럼

- 갑작스럽게 청산된 평화롭던 신혼생활의 끝, 그리고 비단이

  


  폭풍같은 사랑을 했고, 스물여덟이라는 이른 나이에 훌훌 털고 결혼을 했다. 남편은 예민하고 제멋대로인 성향인 나와 달리 따뜻하고 다정한 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항상 내가 최우선이었고 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기꺼이 양보해주었다.

  신혼생활은 즐거웠고 평화로웠다. 새벽에 일하는 나와 밤에 일하는 직업이던 남편은 생활패턴이 워낙에 달라 같은 공간에 있지만 마주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충실한 하루를 보냈고 집에 돌아오면 짧게나마 함께하는 시간으로 에너지를 충전했다. 나는 이러한 삶의 방식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나에게 결혼은 안정감을 주는 장치이자 나의 삶의 방식을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같은 것이었다. 흔히들 겪는 결혼 후의 과정들, 특히 임신에는 관심도 없고 육아는 더더욱 사양이었다. 가족들이 늘어나는 북적댐도, 시끄러운 울음소리도 나는 딱 질색이었다.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고, 새벽에 혼자 일하는 시간이 필요했으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금세 에너지가 고갈되어버리는 파워 'I'의 성향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늘 호락호락 내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결혼한 첫 해에 나는 예기치못한 유산을 했고, 그로 인해 정신적인 충격을 크게 느꼈다. 내 몸속에 무언가 생명이 생겨 나의 영양분을 나누어먹는다는 것이 이상했다. 내 숨소리와 기분에 반응하고, 온전히 나에게 모든 것을 위탁한, 완전히 내게 속한 무엇인가가 생겨났었다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 육아는 내게 맞지 않으니까. 차라리 잘된걸지도 몰라. 내가 잘 키울 자신이 없으면 아이는 안 가지는게 맞지.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우리는 여전히 사랑했지만 뭔가 조금 허전하고 공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부부 사이에는 이제 더이상 특별한 일도, 특별하게 변할 감정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태기나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닌, 더 변화될 삶의 형태가 없기에 새로 생겨날 감정이나 상황도 없을 것 같다는 무기력함이었다. 우리는 조금 나태해졌고 조금은 흐트러졌으며 서로에 삶에 대한 공유도 조금씩 적어져갔다. 그러던 어느 겨울, 마음을 다시 잡아보고자 떠난 강원도 여행길에서 우리는 뜻밖의 짐을 하나 더 챙겨서 돌아오게 되었다. 올해 일곱 살이 된 비단이는 우리 사이에 갑자기 찾아왔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창문 안으로 훅 스며들듯, 꽃이 밤사이 훅 봉우리를 펴듯, 그렇게 내게로 와서 내 아들 비단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지옥같은 육아가 시작되었다. 나는 백팔십도 바뀌어버린 내 삶이 버겁고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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