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처음 시작하며 장애아이 비단이의 이야기를 적었다. 조그맣고 하찮은 나의 아이에 대해.
너무나 힘들었던 7년간의 육아에 대해, 나에 대해, 가족에 대해 적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을 쓰는 손이 망설여졌다.
비단이는 너무 더디게 자랐고, 각종 SNS에서는 오늘도 느린 아이를 발전시키는 수많은 엄마들이 있었다. 옹알이밖에 못하던 아이는 갑자기 문장으로 줄줄 표현하기 시작했고, 치킨과 과자만 먹던 아이는 야채스무디를 마시며 당근을 손에 쥐고 아작아작 씹어먹었다. 어김없이 이어지는 활짝 웃는 엄마와 아이의 행복한 사진. 부러움과 시샘 섞인 못된 마음이 자책을 먹이삼아 불쑥 치고 올라왔다. 나도 저런 엄마였으면 지금쯤 아이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한번 시작된 자책은 끝을 모르고 점점 나를 먹어치웠다.설상가상, 겨울이 되고 추운 날씨에 활동반경이 줄어들자 아이는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고 점점 감각에만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감각추구와의 전쟁. 이제 다 커버린 아이가 하는 감각추구와 이상행동은 모두의 눈길을 끌었고,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없이 차가워졌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모든게 지겨워졌다. 육아도, 삶도, 치료도, 모두 다.
브런치를 감정 휴지통 같은 일기장으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브런치는 내게 심사를 통해 '작가'라는 타이틀을 부여해주고 한 페이지를 내어준 소중한 곳이니까. 한 편을 발행하더라도 완성도 높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힘이 들어간 마음은 자꾸 한두 문장을 뱉어내기도 벅차기 시작했다. 혹시, 글이 잘 안써지는 이유가 독서가 부족해서는 아닐까? 핑계처럼 스쳐간 생각에 글을 쓰는 것을 멈추고 닥치는 대로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을 툭툭 밀며 브런치페이지 창을 켜고, 닫기를 반복했다. 나는 단편적인 이야기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연재 형식의 글에 더 관심이 갔다. 아무래도 내 상황이 이렇다보니 투병기나 아픈아이 육아 등 어려운 상황에 계신 분들의 속 깊은 이야기가 더 주의깊게 읽어졌다. (실제로 나는 내가 구독하는 작가님들의 이야기는 거의 다 기억하고 있고, 만약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안부를 업데이트하며 물을 수 있을 만큼 정독하고 있는 편이다.) 그렇다면, 내 브런치에 오신 분들은 어떤 경로로 내 글을 읽게 되셨을까? 그분들도 나와 내 아이의 일상이, 안부가 혹시 궁금하지는 않을까?
돌고 돌아 시작점으로 돌아온 생각 덕에 나의 지난 글들을, 댓글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자, 독자의 입장으로 바라본 나의 지난 7년여의 시간이 새롭게 읽혔다. 그리고 깨달았다. 한없이 작고 하찮을지 몰라도, 내 인생 속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 것은 정작 내가 아니라 나의 아이였다는 것을. 사람들 속에서 살아내는 모든 것이 전쟁같은 나의 아이가 치열하게 깨지며 살고 있었다. 내 삶의 뜨거움도 결국 아이가 버텨주고 있기에 존재한 시간이었음을왜 몰랐을까.
사실 장애아이의 이야기가, 일반적인 육아를 하는 분들이나 평범한 생활을 하시는 분들께는 그리 매력적인 키워드는 아닐 것같다. 발달장애 혹은 자폐라는 것은 겪고있는 우리들만의 심각한 리그일 뿐이니까. 사람들에겐 그저 "거꾸로해도 우영우"같은 신기한 것일 뿐. 우리에겐 엄청나게 중요한 아이의 발전이,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발전이라고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미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미숙한 나와, 나의 공간을 찾아와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다. 마치 우리 아이 이야기 같아 눈물을 흘리며 보셨다는 이야기를 볼 때면나도 가슴이 뻐근해진다. 어디에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의 소외된 이야기를, 누구라도 꾸준히 써서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 하나로, 내가 계속해서 이 페이지를 채워나갈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유튜브에서 '위라클(weracle)'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박위'라는 청년이 있다.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 진단을 받았지만, 좌절의 끝에서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했고 숨쉬는 매 순간을 기적으로 느끼며 '인생은 꿀이다'를 목청껏 외친다. 그는 말한다. 자신이 올리는 영상의 '조회수 1'은 단순한 1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삶의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는 1이고, 나아가 한 생명을 살리는 1이라고 믿는다고 말이다. 내가 적는 이야기가 그만큼의 힘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센터에서 눈물 흘리며 봤어요. 위로받고 갑니다'라는 어느 분의 댓글처럼 한 줄기 쉼이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엔진을 힘차게 가열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의 치열함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