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이는 사랑을 빼앗기는 상황에 놓여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세상의 모든 애정은 자기에게 쏠려야 한다고 강하게 믿는 아이였다. 비단이가 일반적인 자폐아이들과 조금 다른 점은, 애정에 대한 갈구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비단이를 처음 진찰했던 선생님 역시 같은 진단을 했었다. "자폐아이들은 보통 자기만의 공간에 들어가 문을 닫고 벽을 쌓아 관심을 차단하기 때문에 그 관심을 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데, 비단이는 좀 특이해요.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크고, 사랑을 빼앗겼을 시 그로 인한 좌절이 공격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단이에게, 동생의 갑작스런 등장은 네 살 인생을 뒤흔드는 너무나 강렬한 자극이었다.
내가 잘 먹지 못했던 탓인지, 둘째는 조리원을 퇴소할 때 3kg이 채 되지 않을만큼 작고 가벼웠다. 얼마나 조그마하던지, 기저귀를 갈기 위해 두 다리를 모아 들면 그대로 툭 하고 뎅강 빠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둘째는 집에 돌아오자 강렬한 식탐을 뽐내며 엄청나게 먹어대기 시작했고 백일이 넘어서자 우량아로 다시 태어났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용가리 통뼈에 튼튼한 팔다리를 가진 근육질 체질을 타고났음이 분명해 보였다. 엄마를 닮아 성질도 급한 둘째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앉을 수 있게 되자 곧바로 온 집을 누비며 기어다니기 시작했고 돌 즈음부터는 벌떡 일어나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동생의 이런 변화에 따라 비단이의 심리는 크게 흔들렸다. 바운서에 앉아 쿨쿨 자거나, 젖병을 물고 있을 때는 그저 인형처럼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건 쯤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자기와 닮은 조그마한 애가 빼애 울고 먹고 자고 있으니 마냥 웃기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둘째가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됐다. 비단이가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뭔가 흘리면, 어디선가 두다다다 소리와 함께 동생이 나타났고 식탁 밑에 떨어진 음식을 냅다 주워먹기 시작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뭔지 둘째를 보고 깨달았다. 과자 봉지를 뜯는 바스락 소리만 나도 어디선가 달려왔다. 이도 없는 녀석이 소중히 과자를 움켜쥐고 잘도 먹었다.
동생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비단이는 식탐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가 먹을새라 입에 마구잡이로 음식을 밀어넣었다. 형이 먹을 것을 남기지 않자, 동생은 관심을 바꾸어 형아의 장난감을 하나 둘 기웃대기 시작했다. 비단이가 특히 좋아하던 반짝반짝 불빛이 나고 노래가 나오는 장난감들은 동생에게는 신문물이나 다름없었다. 서서히 동생의 존재가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비단이의 경계심은 매일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정타는 다른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바로, 비단이의 최애 대상인 아빠를 빼앗긴 기분을 느껴버린 것이다.
비단이에게 아빠의 애정은 당연하게 모조리 자신을 향해 있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태어난 이래 누구에게도 빼앗긴 적 없는 아빠의 사랑. 누가 뭐라 해도 비단이에겐 아빠의 사랑이 든든한 보호막이였고 세상을 살아갈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동생이 기어다니고 걸어다니며 아빠를 향해 안아달라고 손을 뻗기 시작하자 비단이는 세상을 다 잃은 듯한 감정에 빠지고 말았다. 애정을 빼앗는 대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비단이에게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에 서툰 비단이는 급기야 동생에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 한 두 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형제들끼리 으레 있는 영역다툼이라고 생각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고, 그러면서 배워가는 것이니 어른이 너무 개입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비단이에게도 자기가 만든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었다는 것을. 비단이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거세졌고 동생은 속절없이 형아의 날선 손톱에 할퀴어졌다. 아무리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어도 순식간에 날아들어 상처를 내는 아이를 24시간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힘없는 동생은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형아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냈다. 얼굴에는 하나 둘 흉이 늘었다.
그러나 아이의 상처난 얼굴보다 내 마음을 더욱 무너지게 한 것은, 콩알만한 둘째가 보이는 행동이었다. 형이 자기를 때리면 엄마 아빠가 무섭게 화를 내며 형을 혼내는 모습을 몇 번 지켜본 둘째가, 언제부턴가 형이 할퀴어도 아 소리도 내지 않고 꾹 참기 시작했다. 느낌이 이상해서 뛰어가보면 이미 씩씩거리는 비단이가 할퀴거나 꼬집은 후였다. 내 얼굴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그제야 "아야..."하고 표현하는 둘째아이를 보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때린 놈도, 맞은 놈도 다 내 자식이건만 나 역시도 사람인지라 비단이를 향한 분노가 치솟았다. 안 그래도 고된 육아인데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간신히 지탱하던 마음이 또다시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아이가 밉고 싫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동생을 예뻐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부작용이 따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집안 분위기는 갈수록 엉망이 되었고, 나와 비단이의 갈등도 점차 심화되었다. 아이들이 싸우면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고 비단이는 큰 소리로 울며 날뛰었다. 중간에 선 아빠는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상황에서 난처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한 아이에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회의가 들었다. 자격도 없으면서 어쩌자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을까. 잘 키우지도 못하면서 둘째를 낳아버린 나 자신도, 매일같이 소리나 지르는 나의 모습도 진저리치게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