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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Jan 24. 2024

둘째, 배달 비둘기가 되다.  

형아의 마음을 얻는 비법은? 

  

  한겨울에 태어난 둘째는 따뜻한 봄이 되자 백일이 되었고, 활동하기 좋은 계절을 지나 다시 추워지기 시작하니 아장아장 걷고 뛰기 시작했다. 겨울은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아빠에겐 여러모로 힘든 계절이다. 아이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고, 실내에서 놀기에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은 제약이 너무 많았다. 아이들 등쌀에 집 앞 놀이터라도 맘 먹고 나가보지만, 차갑게 언 미끄럼틀은 손잡이를 잡는 순간 손이 쩍쩍 달라붙었다. 이렇게 찬공기라도 쐬었다 싶으면 아이들은 여지없이 삼일 안에 십일 자로 누런 콧물을 뿜었다. 어린이집에는 감기에 걸린 아이들이 넘쳐났고, 두 아이가 살뜰히도 물어오는 바이러스는 온 가족을 돌아가며 감기균에 쓰러지게 했다. 코로나와 A형 독감이 전국을 강타하던 시기, 우리 가족은 사이좋게 A형 독감으로 앓아누웠다. 아이들이 아프면 부모가 돌보면 되지만, 부모는 아플 수도 없다. 남편과 나는 링거 한 병 맞을 시간이 없어 꼬박 일주일을 죽게 앓았다. 정신 차릴 만 하니 겨울방학이라며 어린이집은 장장 2주에 가까운 휴원을 선언했다. 꼼짝없이 아이들을 끼고 하루종일을 버텨야 했다.

  형아의 눈치를 보던 둘째는 형이 화내는 것에 익숙해졌는지 화를 내거나 할퀼 것 같으면 재빨리 가드 자세를 취하거나 날쌔게 도망을 쳤다. 갈수록 달리기가 늘었고 몸놀림이 잽싸졌다. 이가 하나 둘 나기 시작하자 둘째는 무서운 속도로 각종 음식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툭 빠질 듯 가냘펐던 다리는 흔적도 없어지고 날마다 건장하게 변해갔다. 식사 시간이 되면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먹고 두어 개밖에 없는 이빨로 족발을 뜯었다. 어쩌다가 형이 마이쮸라도 하나 흘리면, 용케도 찾아내서는 몰래 입에 넣고 쪽쪽 빨았다. 그런 동생이 마냥 밉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마음을 조금 고쳐먹는 것인지 비단이의 경계심과 화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느 날부터 둘째가 보이는 행동이었다. 

  비단이는 가만히 앉아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포크를 들고 음식을 양껏 찍은 후 들고 다니며 먹는 버릇이 있었다. 그럼 음식이 떨어지면 다시 와서 찍어가는 성의라도 있어야 하는데, 게으르기 짝이 없는 이 녀석은 그조차도 귀찮으면 안하고 그냥 굶어버렸다. 쳐다보고 있자니 속이 터져서, 음식이 식어서, 밥이라도 먹여야지 하는 생각에 아빠와 내가 교대로 음식을 갖다주곤 했다. 안좋은 행동임을 알지만 워낙 편식이 심하고 작았던 아이라 당시에는 그렇게라도 먹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가 식탁에 오더니 짧은 다리를 까치발을 하고 뭔가 낑낑대는 게 아닌가. 뭘 하려고 저러나 지켜보니, 형아가 내던진 포크를 들고 와서는 식탁에 놓인 음식을 찍으려 애쓰고 있었다. 워낙 식탐이 많은 아이라 먹고 싶어서 그러나, 하고 조금 더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세상에, 그렇게 열심히 찍은 음식을 들고 도도도 형에게 뛰어가더니 형아에게 아- 하고 음식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매정한 형아놈은 처음엔 놀란 얼굴을 하고는 음식을 받지 않고 휙하니 밀어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먹어도 되나 싶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엄마 아빠 외에 자기에게 저런 행동을 한 사람이 처음이니 당황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둘째는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거절을 당하면서도 형아에게 정성껏 음식을 찍어 부지런히 날랐다. 제일 좋아하는 치킨너겟을, 딸기를, 소고기를 내밀자 자존심을 부리던 비단이도 더는 거절하기 힘들었는지 못이기는 척 음식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형아의 반응에 둘째는 신이 잔뜩 나서 더욱 부지런히 음식을 날랐다. 기가 막힌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기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이런 엄마의 속도 모른 채 둘째는 배달 비둘기가 되어 음식을 나르고, 비단이는 아기새마냥 낼름 받아먹고는 동생의 손에 포크를 쥐어주고 눈빛으로 더 가져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희한한 풍경이 완성되자, 비단이는 동생이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도 두어 번은 못본 척 넘어갔고 아빠에게 어쩌다 동생이 안겨도 서운한 표정을 짓긴 했으나 전처럼 마구 화를 내지는 않았다. 놀랍게도 세상에 태어난지 일년 조금 넘은 둘째가 비단이의 철옹성같은 고집을 꺾고 형아의 마음을 사르르 녹인 것이다. 그것도 혼자 관찰하고 연구해낸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렇게, 우리 집 비둘기는 우리 가정의 평화의 상징이 되어 큰 역할을 해냈다. 비단이는 조금씩 동생을 사람으로 인식하고 곁을 내주었다. 동생이 갖고놀고 싶어하는 장난감은 슬쩍 양보하고, 싸우는 대신 자기가 다른 장난감을 찾아 나섰다. 놀 것이 마땅치 않거나 마음이 속상해지면 화를 내는 대신 엄마아빠 품을 찾았다. 그렇게 다가오는 비단이를 우리는 꼭 안아주었고, 비단이는 사랑을 나누어 갖는 방법을 조금씩 이해하는 듯 했다. 우리는 자주 비단이에게 말해주곤 한다. "비단아, 엄마아빠는 사랑이 두 개라서 비단이 하나, 동생 하나 똑같이 나누어 줄 수 있어. 하나를 쪼개서 갖거나 뺏기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엄마아빠의 소중한 보물이라서 하나씩 똑같이 나눠가질 수 있는 거야. 그러니 서러워하지 마. 너에겐 널 사랑할 동생이 생겼으니, 사랑이 하나 더 늘어난거야." 내 아들 비단이가 이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아직 어리지만, 나는 우리가 또 하나의 큰 고비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우리 비단이 비둘기 형제, 앞으로도 의지하며 사이좋게 지내주렴.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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