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결말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약속이 없는 주말. 집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샌드위치를 사러 첫 외출을 했더니 초가을의 쌀쌀함이 불현듯 찾아왔다. '외투를 입고 나올 걸 그랬나?' 혼자 생각하며 길을 걷는데, 높은 빌딩들 사이로 보이는 구름의 비행이 그날따라 유려해 보이고 무언가 말을 거는 듯했다.
난 좀 더 자세히 구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싶었고, 차들이 많은 길을 벗어나 조용하고 차분한 장소를 찾아 걸었다. 하지만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모두가 바삐 쏘다니는 도시는 철저하게 외로우면서도 좀처럼 쉽게 빈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매우 일정하게 옅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난 끝내 나만의 공간을 찾지 못한 채 짙어진 밤과 마주했다. 외로움이 별처럼 쏟아졌고, 태산 같은 무력감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곧장 자취방으로 돌아와 영화를 틀었다. 급성 외로움엔 영화가 가장 알맞다. 누군가를 만나는 건 때로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소파에 앉았다면 이제 영화를 골라야 한다. 뭐가 좋을까. 기분 전환용 코미디? 통쾌한 액션? 따듯한 로맨스? 안타깝지만 그런 영화들은 쓸쓸한 처지를 돋보이게 만들 뿐이다. 이별한 사람들이 이별 노래를 찾아 듣듯, 외로울 땐 무엇보다 가장 외로운 영화를 봐야 한다. 이열치열과 똑같다. 가장 쓸쓸한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만이 지치고 남루한 우리의 영혼을 치유할 유일한 처방이다.
그렇게 고른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였다. 사건이 끊이지 않는 빠른 호흡으로 긴장을 조성하는 이 영화가 가장 외로운 영화라니? 하지만 극 중 주인공 '병구'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째서 이 영화인지 알 수 있다.
병구는 언뜻 정신병자로 보인다. 유제화학 사장 '강만식'을 납치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하는데, 평범해 보이는 남자에게 온갖 고문을 가하며 자신이 외계인임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만식의 납치에 뒤집어진 경찰. 병구가 병원에서 마약성 진정제를 훔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꼬리를 밟은 경찰이 따라붙지만 영악한 병구는 이를 먼저 눈치채 경찰을 살해한다.
갈 때까지 가버린 병구. 병상에 누워 죽어가는 어머니에 대한 책임을 만식에게 물으며 점차 광기에 어린 모습으로 변해가는데, 결국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실토하는 만식. 가장 기구한 삶을 살던 병구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진행된 인간의 폭력 유전자 제거 실험에 대해 털어놓는다.
만식의 고백에도 관객은 이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다. 병구의 망상이라는 정황이 너무나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강릉 공장까지 병구와 그의 조력자 순이를 유인해낸 만식은 제 손으로 순이를 죽이고, 뒤늦게 나타난 경찰은 만식을 위협하는 병구에게 총을 발사한다.
싸이코가 죽었으니 해피 엔딩일까? 경찰들이 만식을 차에 태우려는 그때, 하늘에서 천둥 치듯 광선이 날아오고 단숨에 경찰들을 죽여버린다.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UFO의 자태... 영롱한 빛과 함께 만식은 우주선으로 돌아간다.
드러나는 충격적인 내막, 만식은 사실 지구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해 온 왕자였다. 모두 실패해 버린 실험의 결과들을 확인하고 지구에 더는 희망이 없음을 확신하는 만식... 결국 지구 종말의 버튼을 누르고, 초록별은 순식간에 폭발하여 먼지로 산화한다.
병구는 사실 세상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지구를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타고난 기구한 삶에 대한 보복으로 납치를 시작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나, 그는 지구 멸망을 막는 데 매우 가까이 근접했다. 자기 손으로 왕자의 목숨을 끊을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만식은 인간의 유전적 '폭력성' 때문에 어차피 자멸할 운명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유제화학 사장으로 인간 사회에서 유희를 즐기던 그는 대리기사를 폭행하고 횡령 등 온갖 비리를 저지르던 악질이다. 외계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인간들이 누구에게 폭력성을 이어받았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과연 만식에게 인간을 심판하고 단죄할 자격이 있을까?
마지막 병구의 쓸쓸한 죽음은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외계인의 비밀을 파헤쳤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그는 단순한 복수가 아닌 '지구'를 지키기 위해 만식을 따라 강릉 공장으로 갔다.
세상은 그를 업신여기고 쓰레기 취급을 했지만, 그는 홀로 싸움을 이어갔다. 세상에는 이처럼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장소에서 자신만의 투쟁을 이끌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비록 그 싸움이 유용할지 무용할지 모른다 해도 말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쩌면 세상이 망하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어디선가 병구와 같은 존재가 투쟁을 벌이며 지구를 지켜왔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들 덕분에 이 세상이 있을 수 있고, 내일의 태양도 떠오를 수 있는 거라고.
살다 보면 내가 보잘것없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조용히 이 문장을 속삭인다. "나의 인생은 이 세상의 위대한 선율의 일부이다. 내가 있기에 오늘 하루, 이 세상도 있을 수 있는 거야."
- 수레바퀴 아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