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듄(2021)>
영화를 볼 때는 기대를 최대한 버리고 보는 것이 좋다. 대부분 기대가 클수록 실망감도 덩달아 커지기 마련이다. ‘듄’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영화관에 갔다. 유튜브에 영화 소개 영상이 넘쳐났지만 아무런 편견과 배경 지식 없이 순수하게 영화를 보고 싶어 시청하지 않았다. 깜깜한 상영관, 의자에 앉은 안락함을 느낄 새도 없이 거친 사막의 풍경이 거대한 스크린 위로 떠올랐다.
세련의 극치
하늘에서 바라보는 황량한 사막의 풍경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바람에 의해 형성된 사막의 무늬들이 아름다우면서도 어떠한 위압감을 준다. 아이맥스의 광활한 화면비율로 채워진 사막의 모습은 집에서 보던 다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실제 사막의 모습을 기술적으로 촬영했을 뿐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다른 행성이라는 위화감에 사로잡힌다.
듄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CG를 최대한 배제하고 정교한 세트와 자연을 그대로 활용하니 어색함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스크린을 통해 시작적으로 보여지는 효과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CG와 특수효과 범벅으로 만들어진 큰 스케일의 영화가 스타벅스 자바칩 프라푸치노라면, 듄은 마치 에티오피아에서 갓 수확한 생두를 볶아 그 자리에서 내린 핸드드립 커피 같은 느낌이랄까. 둘 다 커피고 맛있겠지만 감동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듄은 이 외에도 거의 모든 부분에서 절제되고 심플한 멋을 살렸다. 공간부터 코스튬, 작은 소품들과 심지어 배우들의 동작 하나까지 정말 군더더기 없이 세련되게 느껴졌다. 이런 큰 스케일의 영화일수록 작은 부분에 조잡함이 드러나면 그 환상과 이미지가 쉽게 깨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비전문가인 필자의 눈엔 거슬리는 부분이 조금도 없이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오리지널의 오리지널
듄을 보면서 스타워즈의 이미지가 강하게 떠올랐다.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여러 세력 간의 다툼, 그리고 소년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갈래는 유사점이 많다. 스타워즈 외에도 예언을 토대로 ‘그’를 찾는 여정은 매트릭스와 상당히 비슷하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들이 듄의 원작 소설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영화계의 클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스타워즈와 매트릭스의 조상 격인, 말 그대로 오리지널의 오리지널인 것이다.
하지만 듄이 아무리 원조라고 해도 두 영화에 비해 제작 시기가 몇십 년 뒤쳐진다. 영화의 세계에선 까마득한 후배란 말이다. 이미 해당 서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해야만 한다. 듄이 이제껏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던 이유는 큰 스케일, 방대한 스토리도 한몫했겠지만 앞의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드니 빌뇌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듄 만의 개성이 살아있고 독보적인 매력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전작이었던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도 원작을 잘 계승하면서도 본인의 스타일을 잘 녹여냈듯, 이번에도 실력을 가감 없이 발휘하여 명작을 탄생시켰다. 영화 시장을 마비시킨 코로나 시대에 독보적인 흥행 성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들리는
음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음악계의 거장 한스 짐머가 그의 단짝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 참여를 고사하면서 까지 이 영화에 음악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확실히 웅장하면서도 특히 저음부에 뭉쳐 있는 그 특유의 사운드는 삭막한 행성의 느낌을 잘 살려주었다. ‘인터스텔라’에서 선율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잘 살렸다면, 듄에서는 비 선율적인 인성을 주로 활용했다. 귀에 딱 꽂히는 멜로디가 없는 대신 여러 선율이 복합적으로 연주되면서 주술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는 점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커다란 운명 안으로 마치 모래무덤에 빠지듯 침잠하는 폴의 상황과 퍽 어우러진다. 그가 대가로 인정받는 이유는 본인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영화마다 찰떡같이 어울리는 사운드를 창조하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에 대한 아무런 지식 없이 감상했던 듄은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다소 지루했다는 평도 있는데, 아무래도 긴 이야기를 푸는 과정에서 1편은 전체의 초입이 될 수밖에 없어 다소 설명적이고 루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는 찜찜함 보다는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가 샘솟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