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위치(2015)>
*영화 <더 위치>의 약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공포영화를 좋아하고 자주 보다 보니 왓챠 어플을 켜자마자 이 영화가 상단에 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컴퓨터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느낌이다. 영화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일반적인 ‘공포영화’를 기대하고 보는 사람이라면 실망할지 모른다. 영화의 분위기는 꽤 소름 끼치는 편이지만 관객을 공포심의 코너로 몰아 고문하는 연출이나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 요소는 많이 약한 편이다. 어쩌면 그걸 너무 남발하는 영화가 많아 이 영화가 순한 맛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온통 무채색 남루한 코스튬에 등장하는 집이며 숲이며 채도가 두세 단계 빠져버린 느낌은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특히 고증을 잘했다고 평가받는 배우들의 의상은 특유의 질감과 거친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마치 영화가 아니라 오지에 살고 있는 실제 아미시 공동체의 모습을 담은 것 같은 착각을 줬다. 거기에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까지 더해지니 앞서 말한 적은 공포 장치에도 몰입감이나 스릴은 부족함이 없게 느껴졌다.
영화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윌리엄 가족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사실 영국에서 높은 지위를 갖고 잘 사는 사람이 구태여 타 대륙으로 떠나 고생을 사서 할 이유는 없다. 지금이야 미국이 초 강대국이지만, 그 시절엔 미개척 신대륙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많은 이들이 경제적, 종교적, 혹은 잡다한 이유로 본국을 떠나 아무것도 개발되지 않은 황무지로 내몰렸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잘 사는 이상적인 공동체는 허구 일지 모른다. 어느 공동체 건 마찬가지다. 이민자들 커뮤니티에서 버려진 윌리엄 가족은 자기들만의 농장에서 자립을 시도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영화는 그 지점을 다루고 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한 작은 농장으로 좁아진 사회의 작은 단위에서 그들은 또다시 낙오자를 찾았다. 그들에게 고통과 시련을 주는 존재라고 믿는 악의 근원적 존재인 ‘마녀’를.
영화의 주인공은 집안의 장녀 ‘토마신’이다. 지속적으로 닥쳐오는 뜻 모를 불행에 윌리엄과 그의 아내 캐서린은 토마신이 마녀일 것이라 의심하기 시작한다. 겨울은 다가오는데 농사는 망해가고, 아이들은 자꾸 실종되니 불안감은 종식될 기미가 안 보인다. 인간의 나약한 본성이 여기서 드러나는데, 빠져나갈 수 없는 공포의 구렁텅이에서 본능적으로 증오할 대상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불행의 근원을 마녀와 내통하는 토마신의 책임으로 떠밀어낼 수 있을까?
캐서린은 노력하는 토마신을 좀처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닥치는 모든 불행을 토마신의 탓으로 몰아가며 다른 집에 노예로 팔아야 한다고 윌리엄을 설득한다. 자신의 피붙이에게 어찌 이리 매정할까. 분노한 캐서린이 토마신이 윌리엄과 케일럽을 성적으로 유혹하고 있다고 발언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본심이 드러난다. 그녀는 토마신의 육체적 성숙을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있던 것이다. 가족끼리 그게 무슨 말이냐 말할 수 있겠지만, 앞서 설명한 축소된 공동체 범위에선 가족이 사회의 전체 분모가 된다. 사냥이나 농사를 짓는 남성은 노동력과 경제력을 포함한 생존의 유일한 요소다. 캐서린이 이를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친딸에게 느껴도 비정상이 아니다. 실제로 케일럽이 토마신의 가슴을 훔쳐보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또래 여성이 없는 곳에서 넘치는 성적 호기심이 가족에게 향하는 건 불가항적일 수 있다. 어쩌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마녀’의 실체란 우리도 모르는 무의식 안에 존재하는 인간 본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