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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선비 Dec 07. 2021

가웨인경과 녹색의 기사

영화 <그린나이트(2021)>

*영화 <그린 나이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명검 엑스칼리버로 유명한 아서왕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보단 전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작가들에 의해 이야기로 전해졌고, 영화로도 수없이 만들어졌다. 가이 리치 감독은 <킹 아서 : 제왕의 검>에선 아서왕의 이야기에 화려한 액션과 스타일리시한 편집을 더해 판타지 요소를 부각했다. 아서왕 설화 중 가웨인과 녹색 기사를 각색해 만들어진 <그린 나이트>는 그에 비해 화려함이나 박진감이 넘치는 작품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예술 영화에 가까운 차분한 전개와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동시대를 다루면서 완전히 다른 성격을 보이는 두 작품이지만, 전자의 경우 과한 연출로 인한 피로감이 느껴졌고 후자인 <그린 나이트> 몰입감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락 요소가 적음에도 지루하지 않고 이목을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출처 - 네이버 영화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영화는 아서왕의 조카인 가웨인이 크리스마스에 불쑥 찾아와 도전을 외치는 그린 나이트의 목을 베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웨인은 육체적 쾌락에 정신을 쏟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성탄절에 처음으로 아서왕 옆에 앉은 그는 자신에게 왕에게 들려줄 모험담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는다. 용기 있게 무례한 그린 나이트의 목을 베어버린 가웨인이지만, 잘린 목을 들고 홀연히 사라진 그린 나이트가 남긴 말에 큰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정확히 1년 뒤, 크리스마스에 자신을 찾아와 가한 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약속이었다.


 너무 빠른 1년이 훌쩍 지나버리고, 가웨인은 자신의 모험담을 만들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그로부터 그가 마주하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불가항적으로 나타난다. 마치 마법에 홀린 것처럼 시련을 헤치며 그린 나이트의 녹색 신전으로 다가가는 가웨인의 모습은 용감한 기사라기 보단 가난하고 헐벗은 순례자처럼 보인다.


 필자는 이야기에서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세계적 히트작 <연금술사>를 떠올렸다. 양치기 일에 자족하며 살아가던 ‘산티아고’는 신비로운 노인을 만나 자아의 신화에 대해 듣는다. 그러곤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이집트 피라미드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숱한 시련을 겪고 포기할 문턱까지 이르지만 자아의 신화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가웨인과 닮아 있었다. 연금술사가 이토록 인기가 많은 이유는 많은 독자들이 산티아고의 용기에 감동을 느끼고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비록 액션이나 특수 효과는 적을지라도 관객의 마음을 끄는 요소가 분명 있었기에 통한 것이 아닐까.


 동정과 연민

 관객들이 가웨인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처지를 동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난에 처해 죽을 위기를 겪는 가웨인을 바라보면서, 관객들은 그에게 깊은 동정심을 느끼게 된다. 그는 오만한 명예욕과 물욕으로 여정을 시작하지 않았다. 단지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그를 가엾게 여긴 아서왕이 보인 관심과 연민 어린 시선에 반 충동적으로 나선 것으로 묘사된다. 그저 무시해버릴 헛소리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아서왕은 가웨인이 떠나기 전날 친히 찾아와 불안해하는 청년을 다독였다. 마침내 조우한 그린 나이트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가웨인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겁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아서왕과 그의 어머니 ‘모건 르 페이’가 그랬던 것처럼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가웨인에게 깊은 연민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린의 상징성

 영화는 제목 값을 하듯 시종일관 녹색의 컬러가 강조된다. 푸르스름한 녹색의 오묘한 빛은 봉준호의 ‘기생충’에서 보였던 컬러와 유사한 면이 있다. 가웨인이 그린 나이트가 남기고 간 도끼를 꺼내 드는 장면이 묘하게 기생충에서 기우가 수석을 집어 드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두 사물이 갖는 은은한 녹색 빛은 신비롭고 염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두 상징적 도구가 각각 주인공인 가웨인과 기우에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시사하는 동시에 모두 끝내 자신들을 해하는 도구로 전락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노블 그린’이라고도 불리는 녹색은 귀족의 컬러로 유명하다. 기우에게 녹색이 상류 사회에 섞이고 싶은 신분상승의 욕구를 상징한다. 가웨인의 경우도 용맹한 기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하는 욕구가 보인다. 그린은 갖고 싶은 탐스러운 컬러인 동시에 되려 독이 될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가 좀처럼 개봉하지 않는 요즘 시기에 그린 나이트는 한 줌의 단비와 같았다.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에는 조심스러운 시기이지만, 기생충이 적은 제작비에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것처럼 예술성과 대중성을 고루 겸비한 영화가 더욱 많이 나와주길 기대해 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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