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서사와 프랑스 문학
사람들은 불편한 글을 싫어한다. 이왕이면 기쁘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글을 읽고 싶어 한다. 실제로 단행본의 판매량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극현실적인 비극보다 비현실적인 희극이 압도적으로 많은 선택을 받는다.
하지만 프랑스 문학은 이 불편한 지점을 자주 건드린다. 수치스러운 기억, 고통스러운 순간, 잊고 싶은 과거를 읽히지도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 글을 쓴다. 가끔은 기억 속 고통을 꺼내서 즐기는 메조키스트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요즘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파민이 넘쳐나는 시대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에 상을주는 곳이 프랑스이다.
그들의 작품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건을 붙잡고, 들춰내고, 낱낱이 벗겨낸다. 흔히 상처라고 부르는 순간까지 문학의 주제가 된다. 과거에 묻어두고, 직접적으로 마주하기 싫어하는 기억을 찾아내 그 순간을 끝없이 되살려내고, 끊임없이 후회하고, 절망하고, 해석하고, 이해하려 애쓴다.
프랑스 문학의 이러한 집요함은 폴 리쾨르(Paul Ricœur)의 사유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는 인간이 고통을 기억을 재생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는 윤리적 충동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을 반복해서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납득하려 애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덧붙여 설명한다. 우리가 상처를 떠올리려 할 때, 그것은 고통을 즐겨서가 아니라 고통이 세상 속에서 어떤 자리였는지를 이해하려는 마지막 저항이라고 말이다.
특히 최근에는 자전적 서사(autofiction)가 개인의 상처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자주 활용된다.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거기에 허구적 요소를 섞어 새롭게 재구성한 문학 형식을 의미한다. 일부에서는 기억과 상상이 손을 잡는 서사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나'를 쓰면서도 그 '나'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자전적 서사로 가장 유명한 작가는 이견 없이 아니 에르노(Annie Ernaux)를 뽑는다. 이후로 개인적 서사로 불편한 사회적 진실을 느끼게 만드는 문학적 흐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극히 개인적인 가족의 비극과 상실을 자전적 형태로 재구성하거나 폭력의 기억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준까지 확장되었다.
이러한 문학의 민주화(démocratisation de la littérature)를 두고 정통 문학계에서는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2022년 공쿠르상이 브리지트 지로(Brigitte Giraud)의 『빨리 흘러간 삶(Vivre vite)』에게 돌아갔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이 공쿠르에 걸맞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시 최종 후보에는 루마니아계 작가 줄리아노 다 엠폴리(Giuliano da Empoli)의 『크렘린의 마법사(Le Mage du Kremlin)』가 있었고, 당초 많은 평론가들과 출판계에서는 이 작품을 유력한 수상 후보로 예상했다.
참고로 작품은 브리지트 지로의 작품은 개인의 비극적인 순간을 다룬 작품이고, 줄리아노 다 엠폴리의 작품은 현대 러시아 권력의 내부 작동 방식을 허구적으로 그려낸 정치 소설이었다. 2022년 당시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시의성과 맞물려 유럽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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