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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극장을 뒤흔든
낭만주의 서사

《시라노》 by 에드몽 로스탕

by 프렌치 북스토어

비록 오늘날 프랑스 문학에서 희곡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더라도, 희곡을 빼놓고 프랑스 문학을 논하기는 힘들다. 17세기 몰리에르(Molière)의 희극부터 19세기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낭만주의 드라마, 그리고 20세기 초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부조리극까지, 프랑스 희곡은 문학과 연극의 경계를 허물며 시대정신을 반영해 왔다. 그리고 19세기말, 한 편의 희곡이 프랑스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프랑스 연극사에서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의 《시라노(원제 : Cyrano de Bergerac,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1897)는 단순한 희곡을 넘어, 시대를 초월한 명작으로 자리 잡았다. 주인공 시라노는 커다란 코를 가진 검객이자 시인으로 사랑과 명예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타인을 돕는 낭만적 영웅이다.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재해석되는 이 작품은 19세기말 프랑스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깊은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시라노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까?




le-cyrano-de-bergerac-de-franck-conte-rue-edmond-rostand-marseille-25.jpg 프랑크 콩테(Franck Conte)의 시라노 그림, 마르세유




1897년 12월 28일, 파리의 포르트 생 마르탱 극장(Théâtre de la Porte Saint-Martin)에서 초연에 올랐다. 그리고 작품은 단숨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초연 당시 50회 연속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당시 연극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특히 시라노라는 캐릭터는 그의 재치 넘치는 언변과 정의를 추구하는 용기,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감수하는 숭고한 태도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낭만적 영웅이자 자신만의 기개(Panache)를 지닌 인물의 서사는 당시 프랑스인들에게 깊은 애정을 받았다. 시라노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결핍과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도전, 그리고 사랑과 희생의 의미를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fposter,small,wall_texture,square_product,1000x1000.jpg 시라노를 대상으로 한 일러스트




왜 아직도 시라노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까?


프랑스 문화에서 시라노는 낭만적 영웅의 전형으로 손꼽힌다. 프랑스 문학 전통 속에서 자존심과 언어의 힘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시라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의 비극적인 사랑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뛰어넘어 아름다운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인물이며, 이는 프랑스 문학과 문화가 중시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더욱이 작품은 19세기말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연극이 유행하던 시기에 등장했다. 낭만주의가 저물어가던 시기 과거의 전통을 되살린 작품이었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사실적이고 어두운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희곡이 점점 주류가 되어가던 상황에서, 에드몽 로스탕은 화려한 운문과 영웅적인 캐릭터를 내세우며 기존의 흐름과는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요즘으로 따지면 레트로 감성의 작품은 당시 프랑스 대중들에게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어쩌면 오늘날까지도 그 감성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Aventures_prodigieuses_de_Cyrano_de_[...]Henriot_(1857-1933)_bpt6k6566896k.JPEG "시라노의 놀라운 모험", 작품 속 일러스트, 헨리엇, 1900년, 파리 국립 도서관




작품 줄거리


《시라노》는 총 5막으로 구성된 희곡으로, 시라노가 록산을 향해 품은 깊은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라노는 용감하고 재치 있는 시인이자 검객이다. 누구 앞에서도 거침없는 언변과 뛰어난 검술 실력을 자랑하는 강한 인물이지만, 정작 자신의 외모에 대해선 깊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특히 커다란 코는 그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그는 아름다운 록산을 남몰래 사랑하지만, 자신의 외모 때문에 그녀가 비웃을까 두려워 감히 고백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록산이 마음을 품은 사람은 시라노가 아닌 크리스티앙이었다. 크리스티앙은 용감하고 잘생긴 청년이지만, 말솜씨가 부족해 록산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표현력을 지니지 못했다. 록산은 크리스티앙이 시라노가 지휘하는 군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의 안전을 부탁과 동시에 크리스티앙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해 줄 것을 부탁한다. 사랑하는 여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시라노는 결국 두 사람을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게 된다.


크리스티앙은 매력적인 외모와는 달리, 록산이 원하는 감성적인 표현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말주변이 부족한 크리스티앙을 돕기 위해, 시라노는 그를 대신해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시라노의 진심이 담긴 아름다운 편지들은 록산의 마음을 더욱 강하게 흔들었고, 그녀는 점점 크리스티앙에게 깊이 빠져들게 된다. 마침내 록산은 크리스티앙에게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르지만, 정작 그녀가 사랑한 것은 크리스티앙의 얼굴 뒤에 숨은 시라노의 영혼이었다.


고백의 순간조차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을 돕는다. 한밤중, 록산의 발코니 아래에서 그는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사랑의 세레나데를 속삭인다. 그러나 록산이 듣고 사랑한 그 감미로운 말들은, 사실 크리스티앙이 아닌 시라노의 것이었다.



ob_621ca5_cyrano.jpg 작품에서 록산의 키스 장면. 폴 알베르 로랑의 인쇄본, 피에르 라피트 에디션, 파리, 1910년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도 시라노는 록산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죽음이 도사리는 전장의 한복판에서도, 그는 사랑하는 록산을 향한 마음을 글로써 전하며 크리스티앙을 보호하려 애쓴다. 그러나 시라노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앙은 결국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그의 죽음 앞에서 록산은 깊은 슬픔에 잠기고, 시라노 역시 크리스티앙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록산을 향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시간이 흘러, 크리스티앙이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나도 록산은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한 채 수녀원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 곁에는 변함없이 시라노가 있다. 그는 매주 어김없이 록산을 찾아와 그녀의 곁을 지킨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시라노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마지막으로 록산을 찾아온다. 그리고 크리스티앙의 마지막 편지라며 그녀에게 편지를 읽어주기 시작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시라노의 목소리가 편지를 따라 차분히 흐른다. 그 순간, 록산은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는다. 15년 전, 발코니 아래에서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이던 목소리가 바로 시라노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토록 아름다운 편지의 문장들이 크리스티앙이 아닌, 시라노가 쓴 것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시라노는 록산의 품에서 마지막 숨을 내쉰다.


진실을 뒤늦게 깨달은 록산은 슬픔에 잠긴 채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해 온 시라노를 떠나보낸다. 그렇게, 한 남자의 깊고도 헌신적인 사랑은 세상에 드러나기도 전에 사라지고,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시라노의 캐리커처", 리차드 맨스필드, 1898년




낭만적 이상주의의 부활


19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과 극장은 사실주의와 자연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졸라와 입센이 선도한 이 흐름은 연극을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로 삼았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고전적인 낭만주의를 다시 무대에 올리려는 시도가 등장했는데, 이를 네오낭만주의(Néoromantisme)라 불린다.


《시라노》는 이러한 네오낭만주의의 대표작으로 현실적인 사회 문제보다 인간 내면의 이상과 숭고한 감정을 강조한다. 화려한 운문과 극적인 연출을 통해 관객을 감동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한, 주인공 시라노는 강한 자의식을 지닌 인물이지만, 개인적인 욕망보다 더 큰 가치를 추구하는 낭만적 영웅의 전형처럼 그려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현실주의 희곡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며, 대중들이 다시금 극장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특히, 작품 속 대사들은 아름다운 알렉상드랭(Alexandrin, 12음절의 프랑스 전통 운문)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작품을 시적인 감성과 연극적 웅장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고, 사실주의적인 대화체와는 대비되는 특징으로 작품을 더욱 독창적이고 강렬하게 만들었다.




1514928-un-portrait-d-edmond-rostand.jpg "에드몽 로스탕의 초상화.", 장 다니엘 쉬드르




시대착오적이라 불린 낭만?


에드먼드 로스탕이 활동하던 시기, 프랑스 연극계에서는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그리고 에밀 졸라(Émile Zola) 같은 사실주의·자연주의 작가들이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작품은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고, 인간의 나약함과 심리적 갈등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낭만적 희곡은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시대착오적이다”, “과거로의 회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개봉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실주의 연극의 무거운 분위기에 지친 대중들이 여전히 낭만적 희곡을 원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특히, 1897년 초연 당시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는 일화는 이 작품이 얼마나 강렬한 감동을 주었는지를 보여준다.


작품이 가진 가장 큰 차별점은 언어의 힘이었다. 사실적 대화가 아닌, 화려한 운문과 수사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시라노가 무대 위에서 펼치는 독백과 웅변적인 연설들은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고결함과 예술적 감성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책의 표지, 작품 "키질하는 여인", 오귀스트 페옌페랭, 1867년, 보르도 미술관




19세기말 프랑스 극장 문화


19세기말 프랑스 극장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가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연극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창(窓)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귀족 중심이던 극장 관객층이 점차 중산층과 대중으로 확대되면서 연극의 주제와 형식도 변화했다. 한편, 대중이 열광하는 멜로드라마와 오페레타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은 오히려 다양한 공연 문화가 공존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시라노》는 과거 낭만주의적 색채를 띠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극장은 점점 감상적 멜로드라마에서 벗어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극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문학과 예술 전반에서 퍼진 사실주의 및 자연주의 운동과 맞물려 있었다.


에밀 졸라(Émile Zola)와 같은 작가들은 연극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연극 속 인물들이 처한 환경과 심리적 조건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사회적 실험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에밀은 자신의 소설 《테레즈 라캥(Thérèse Raquin)》을 희곡으로 각색하여 1890년대 프랑스 극단에서 논란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그의 극은 감정적 표현이 강조되었던 기존 희곡과 달리, 차갑고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간의 본성을 파헤쳤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은 당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이후 프랑스 연극계의 변화를 견인했다.




image_daudenarde_a._inauguration_du__1040057_.jpg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의 개관", 다우데나르데, 카르나발레 파리 역사박물관




19세기말 대중 공연 문화의 스펙트럼


19세기말 극장은 한편으로는 사실주의·자연주의 희곡이 떠오르는 가운데, 여전히 대중적인 멜로드라마와 오페레타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관객의 성향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멜로드라마는 감정적으로 극적인 요소가 강조된 장르로, 선과 악이 분명하게 대립하며 영웅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특징이 있었다. 특히 웅장한 무대 장치와 강렬한 감정 표현을 통해 관객을 사로잡았다. 당시 파리의 여러 극장들은 멜로드라마 작품을 꾸준히 공연하며 대중적 인기를 유지했다.


한편, 오페레타(opérette)는 희극적인 요소와 음악이 결합된 가벼운 오페라 형식으로, 귀족과 중산층 관객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대표적으로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작품은 풍자적이고 유쾌한 작품으로 대중을 매료시켰다. 이러한 다양성은 《시라노》가 당시 관객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화려한 언어적 표현과 극적인 감정선을 지닌 이 희곡은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일부 차용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학적 가치를 담아내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오페라 극장의 전망", 1732년 1818년, 카르나발레 파리 역사박물관




19세기말은 벨 에포크(Belle Époque)로 불릴 만큼 문화와 예술이 번성한 시기였다. 경제적 안정과 산업 발전으로 인해 프랑스 사회는 보다 여유로운 분위기를 맞이했고, 이는 극장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 파리에는 대형 극장이 다수 생겨났고, 전기의 보급으로 인해 무대 연출이 더욱 화려해졌다. 포르트 생 마르탱 극장(Théâtre de la Porte Saint-Martin, 1781), 코미디 프랑세즈(Comédie-Française, 1790), 사라 베르나르 극장(Théâtre Sarah Bernhardt, 1874)이 대표적인 극장으로 점차 중산층 관객을 주요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철도망이 확충되면서 지방에서도 파리의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 당시 유명한 극단들은 프랑스 전역을 순회하며 공연을 펼쳤고, 덕분에 연극은 대중문화로서 더욱 확산될 수 있었다.




시라노를 연기하는 콩스탕 코클랭(Constant Coquelin), 1900년, 오르세 미술관




이후 프랑스 극장과 공연 문화의 변화


19세기말과 20세기 초, 프랑스 극장은 사회적 변화와 예술적 혁신이 교차하는 중요한 시기를 맞이했다. 귀족과 상류층 중심이던 연극 문화는 점차 대중적인 형태로 변모했고, 기술 발전과 새로운 극작 기법들이 연극계에 도입되면서 극장의 역할과 의미도 변화했다.


희극이 대중화가 되면서 프랑스 연극계에서는 스타 배우들이 극장의 흥행을 좌우하는 시대가 열렸다. 연극은 이제 희곡 자체의 힘만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개성과 연기력이 흥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콩스탕 코클랭(Constant Coquelin)과 같은 배우들은 희곡 속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극장의 중심에 섰다. 특히 콩스탕 코클랭이 시라노 역할을 맡아 연기하면서, 작품은 단순한 희곡을 넘어 대중이 열광하는 공연으로 알려지게 됐다.




img_5170006.jpg 작품에서 사용된 시라노의 가면




검열과 비평 속에서 살아남은 연극


19세기말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다. 이러한 이유로 연극 역시 정부 검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사회 비판적 요소가 강한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희곡들은 자주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시라노》는 직접적인 정치적 논쟁을 피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명예, 자존심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룸으로써 검열을 우회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시기 프랑스 연극은 활발한 비평 문화 속에서 발전했다. 신문과 잡지가 보급되면서 연극 평론이 활성화되었고, 희곡은 단순한 공연 예술이 아니라 문학적 가치를 평가받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작품은 초연 당시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시대착오적인 낭만주의 희곡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압도적으로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기존의 사실주의적 연극에 피로감을 느끼던 관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연극이 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감동을 경험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연극 『시라노』의 시놉시스, 1902년, 파리, 카르나발레 박물관




《시라노》 이후 프랑스 희곡


작품은 프랑스 연극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19세기 낭만주의의 마지막 불꽃과도 같이 타올랐다. 이후 프랑스 희곡은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프랑스 연극은 몇 가지 뚜렷한 흐름을 보이게 된다.


우선 프랑스 희곡은 사실주의와 심리적 탐구를 강조하는 방식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작품이 초연된 지 몇 년 뒤, 앙리 베크(Henry Becque)나 폴 클로델(Paul Claudel)과 같은 작가들은 인간의 심리를 보다 깊이 있게 탐구하는 희곡을 발표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장 아누이(Jean Anouilh)와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연극으로 이어지면서 프랑스 희곡의 주요 흐름이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 연극은 보다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 명예와 사랑, 자존심을 강조한 작품은 사라지고 이후 프랑스 연극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사회적 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실존주의 희곡이 만들어지면서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게 되었다.


이후 전통적인 희곡 형식이 해체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시라노》는 엄격한 5막 구조와 운문 형식을 유지하며 전통적인 희곡의 미학을 살린 작품이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유진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의 부조리극과 같은 실험적인 희곡들이 등장하면서, 희곡의 형식 자체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롭게 등장하는 작품들은 점차 전통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탈피하기 시작했고,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과 소통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프랑스어




낭만주의적 이상이 던지는 메시지


우리는 더욱 차갑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상(理想)과 낭만을 갈망한다. 하지만 작품은 그 낭만을 자극한다. 자신의 외모로 인해 사랑을 얻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품격과 자존심을 절대 굽히지 않는 모습, 연애편지를 쓰면서 느꼈던 순수함, 이기적인 사랑보다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우선하는 선택으로 결핍을 채워준다.



“내 기개(Panache)만은 남아 있도다.”



시라노가 마지막으로 남긴 단어는 mon panache(기개, 위풍당당함, 위엄)이다. 작품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다. 현실에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만의 기개를 잃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시라노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5막 구성, 그리고 삼일치 법칙


《시라노》는 5막 구성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작품의 구성은 프랑스 고전주의 희곡(라신, 코르네유)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하지만 고전주의 연극의 엄격한 규칙이었던 삼일치의 법칙(Règles du théâtre classique)은 일부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전개된다.


삼일치의 법칙은 프랑스 고전극의 핵심 원칙으로, 연극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관객이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한 규칙을 의미한다. 법칙은 시간, 장소, 행동의 3가지 요소에서 통일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간의 통일 (Unité de temps), 장소의 통일 (Unité de lieu), 행동의 통일 (Unité d’action)을 유지하면서, 극의 사건이 24시간 이내에 일어나야 한고, 모든 사건이 동일한 장소에서 벌어져야 하고, 마지막으로 줄거리가 하나의 주요 사건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규칙을 따른다. 하지만 작품은 이러한 규칙을 완벽히 따르지 않는다.


고전극에서는 하루 동안 벌어진 사건만을 다뤄야 하지만, 《시라노》는 몇 개월에서 몇 년에 걸쳐 진행된다. 4막과 5막 사이에는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기도 한다. 또한 고전극에서는 제한된 공간(궁전, 한정된 실내 등)에서 사건이 진행되었던 반면, 작품은 극장, 거리, 전쟁터, 수도원 등 다양한 배경에서 전개된다. 이러한 장소의 확장을 통해 극적 긴장감과 역동성을 높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작품은 하나의 사건만이 아니라, 사랑, 우정, 전쟁, 명예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dorchain_vers-4.jpg 오귀스트 도르체인, 프랑스 시인




알렉상드랭(12음절의 프랑스 전통 운문)


알렉상드랭(Alexandrin)은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운문 형식 중 하나로, 특히 희곡과 서사시에 많이 사용된 방식이다.


알렉상드랭(Alexandrin)은 한 행이 12음절(syllables)로 구성되고, 6음절 + 6음절로 나뉘며, 중간에 쉼(휴지, Césure)가 들어가고, 이러한 특징으로 리듬감과 음악적 효과를 가진다. 예를 들어, "Eau¹ de² fram³boise⁴, aigre⁵ de⁶ cè⁷dre⁸… Pla⁹ce¹⁰, bru¹¹tes¹² !" 같은 작중 대사는 리듬감을 살린다. 이러한 특징은 한글로 번역이 되면서 사라졌지만, 특유의 웅장하고 격조 높은 느낌을 살리기 위해 독특한 문체를 사용한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사실주의 연극이 등장하면서 알렉상드랭은 점점 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사살이다. 현대 연극에서는 자유로운 운문 형식이나 산문 대사가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작품은 19세기말에 쓰인 작품임에도 알렉상드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전통적인 운문 연극의 미학을 부활시킨 점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평가받고 있다.




Théâtre_des_Bouffes-Parisiens_interior_during_'Le_mari_à_la_porte'_1859_-_Sadie_1992_3p709.jpg "Le Mari à La Porte를 연기하는 부프 파리지앵 극장",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1859년




오페레타(Opérette)


프랑스 연극과 희극의 변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또 다른 장르는 오페레타(Opérette)이다. 오페레타는 희극과 음악이 결합된 가벼운 오페라 형식의 작품으로 19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다. 오페라타는 정통 오페라보다 가벼운 주제를 다루며, 희극적 요소가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대사와 노래가 혼합된 형식으로, 극 중 인물들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다. 또한 음악이 서사의 중요한 역할을 하며, 화려한 무대 연출이 많고, 당시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이 많았고,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천국과 지옥(Orphée aux Enfers)》, 레오 들리브(Léo Delibes)의 《락메(Lakmé)》, 샤를 르코크(Charles Lecocq)의 《작은 공작새(Le petit duc)》가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희극의 흐름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1. 17세기 고전주의 희극 – 몰리에르를 중심으로 3일 법칙을 따르면서 풍자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남

2. 18세기 희극의 변형 – 볼테르와 같은 작가들이 계몽주의적 색채를 희극에 추가

3. 19세기 낭만주의 희극 – 고전주의 법칙에서 벗어나 보다 감정적이고 극적인 요소가 강조

4. 오페레타와 대중희극 – 음악과 희극을 결합한 형태가 등장하며, 연극이 더 대중적인 장르로 변화

5. 20세기 이후 사실주의, 부조리극 등장 – 전통적인 희극 형식이 무너지고, 인간 심리를 탐구하는 희곡으로 변화


처럼 요약할 수 있다.




cyrano_bergerac_2.jpeg 사비니앵 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Savinien de Cyrano de Bergerac, 1619~1655)의 동상, 산누아, 프랑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희곡과 현실 사이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는 단순한 허구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실제 역사 속 인물, 사비니앵 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Savinien de Cyrano de Bergerac, 1619~1655)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희곡 속 시라노와 실존 인물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은 그를 더욱 낭만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인물로 재창조했다.



실존 인물 사비니앵 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사비니앵 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161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귀족 가문에서 자랐으며, 학문에 대한 열정이 깊어 문학,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젊은 시절부터 문학적 재능과 뛰어난 검술 실력을 함께 지녔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그는 검객으로서 명성이 높았으며, 종종 결투에 휘말리곤 했다.


희곡에서 시라노가 뛰어난 검객으로 그려지는 것도 이러한 실존 인물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가 작품 속 주인공처럼 극적인 결투를 벌이면서 한 손에는 펜, 다른 손에는 칼을 든 인물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검술에 능하고, 지적 수준이 높으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는 점만큼은 사실이다.



문학과 철학에 헌신한 시라노


실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군인이기도 했지만, 그의 삶에서 더 중요한 부분은 문학과 철학이었다. 그는 특히 공상과학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대표작 《달의 국가와 제국(Histoire comique des États et Empires de la Lune)》와 《태양의 국가와 제국(Histoire comique des États et Empires du Soleil)》은 인간이 달과 태양을 여행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 속에서 달의 주민들과 철학적 토론을 벌이는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시라노가 사망한 2년 뒤에 출판되었지만, 걸리버 여행기(1726년)보다 약 한 세기 앞서 쓰인 것으로, 인간의 우주여행을 상상한 최초의 문학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시라노는 단순한 검객이 아니라 시대를 앞선 철학적 사상가이자 문학가였다고 평가된다.



희곡 속 시라노의 코, 사실일까?


희곡에서 시라노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그의 크고 못생긴 코다. 그는 자신의 코를 소재로 끊임없이 농담을 던지며, 동시에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 시라노가 정말로 희곡 속 인물처럼 거대한 코를 가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부 초상화에서 그는 크고 강한 인상의 코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두드러진 특징이었는지, 혹은 후대에 과장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당시 프랑스 문학에서는 ‘코’가 자아와 개성을 상징하는 요소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희곡에서 시라노의 코를 과장한 것은 단순한 외모 설정이 아니라, 그의 강한 개성과 사회적 고독을 부각하는 상징적 장치였을 가능성이 크다.



낭만적 영웅으로 재탄생한 시라노


실존 인물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뛰어난 검술과 문학적 재능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에드몽 로스탕은 그를 더욱 극적인 인물로 만들어 희곡 《시라노》 속에서 낭만적 영웅으로 탄생시켰다. 실제 시라노가 철학과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면, 희곡 속 시라노는 사랑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이상주의적 존재로 그려진다.


희곡과 현실 속 시라노는 같은 인물이면서도 다르게 해석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는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이자 매력적인 인물이었으고, 오늘날까지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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