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르》 by 장 라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 우리의 심리이다.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해진 것일수록 그 유혹은 더욱 강렬해진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안 돼”라는 말 앞에서 더욱 호기심을 키우듯이, 사회적 규칙과 도덕적 경계를 마주할 때 내면의 갈등을 겪게 된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하면서도 본능적으로 그 경계를 시험해 보고, 밀어보고, 때로는 뛰어넘고 싶어진다. 그 끝이 파멸일지라도 말이다.
프랑스 고전 비극, 장 라신(Jean Racine)의 《페드르(Phèdre)》는 바로 이 금기와 욕망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의붓아들에 대한 페드르의 치명적인 사랑, 그것을 억누르려 할수록 더욱 강렬해지는 감정, 그리고 금지된 선을 넘는 순간 찾아오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은 인간의 욕망과 도덕, 본능과 죄책감이 정교하게 얽혀 있다. 사회가 규정한 금기와 인간 본연의 욕망이 맞부딪히는 장(場)이고, 17세기 프랑스 절대왕정의 문화와 질서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절대왕정 시대,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정에서 비극은 하나의 문학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당시 문학은 왕권과 도덕, 인간의 욕망과 사회 질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연결 짓는 장치였고, 권력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으로 기능했다. 《페드르》는 그 기능 한가운데 서서 도덕의 굴레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본능적 충동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17세기 프랑스, 루이 14세의 통치 아래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자리 잡았다. 왕은 곧 국가였고, 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자신을 태양왕(Roi Soleil)이라 칭한 루이 14세는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만들었다. 그는 정치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까지 세밀하게 통제하며 모든 것이 자신의 권력을 찬양하도록 설계했다.
절대왕정(Absolutisme)이란 왕권이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고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정치 체제를 뜻한다. 루이 14세는 이를 극단적으로 실현한 인물로, 귀족들의 권력을 견제하고 모든 국가적 결정이 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 시기의 프랑스에서는 왕의 의지가 곧 법이었고, 신의 뜻마저도 왕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해석되었다.
작품이 발표된 1677년은 바로 이러한 절대 권력의 정점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운명과 도덕, 사회적 규범의 틀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억압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 파멸은 불가피해진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절대왕정 시대의 질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루이 14세가 왕으로서 절대적인 규율을 요구한 것처럼, 극 중 인물들은 도덕과 사회적 규범 속에서 본능을 억누르려 하지만 결국 운명의 힘 앞에 무너지게 된다.
루이 14세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가 바로 베르사유 궁전(Château de Versailles) 건립이다. 이곳은 단순한 왕궁이 아니라,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였다. 귀족들은 왕과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했고, 왕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철저히 규율을 따랐다.
이러한 궁정문화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심리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페드르는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감추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해질 때 그녀의 몰락은 시작된다. 베르사유에서 귀족들이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철저히 계산된 행동을 했던 것처럼, 작품 속 인물들도 도덕과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사회적 규율을 위반한 자는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당시는 고전주의(Classicisme) 예술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절대왕정과 함께 발전한 이 문예 사조는 질서, 조화, 균형을 중시했고, 감정보다는 이성을 강조했다. 연극 또한 이러한 원칙을 철저히 따랐으며, 라신은 이 틀 안에서 인간 본능의 갈등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해 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고전 비극은 왕과 귀족들에게 정치적·도덕적 교훈을 주는 역할을 했다. 작품 역시 이러한 기조를 따른다.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도덕적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비극적 운명에 직면하는 전개는 절대왕정 체제에서 요구한 도덕성과 통제력을 강조하는 장치로 작용했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단순한 교훈극이 이상으로 욕망과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억눌리고, 그것이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치밀하게 그려냈다. 절대왕정이 요구하는 질서와 내면의 욕망이 충돌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테제가 장기간 행방불명 상태에 있다는 소식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테제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수군대고, 다음 왕위 계승 문제를 언급하며 분위기는 술렁거리게 된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페드르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의붓아들 이폴리트를 향한 금지된 마음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드르는 이 터무니없는 욕망을 없애려 애써보지만, 한번 일어난 금지된 감정은 그녀를 점점 더 잠식해 갔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유모 에논은 왕후 페드르가 계속 병약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걱정스러운 마음뿐이다. 에노는 페드르의 건강을 위해 “이폴리트에게 당신의 마음을 살짝이라도 밝히면, 적어도 괴로운 마음은 덜어낼 수 있지 않겠냐”라고 이야기한다.
이폴리트 또한 머릿속은 또 다른 고민거리로 가득하다. 이폴리트는 아버지 테제가 없는 동안, 적국의 공주 아리시에 대한 사랑을 품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아리시는 이폴리트가 속한 왕가의 위협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그녀와의 사랑은 금기시되는 상황이다.
한편, 테제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공식적으로 떠돌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페드르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는 중이다. 왕후가 된 그녀에게 이제 이폴리트를 합법적으로(?) 구애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도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붓아들을 향한 사랑이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음을 잘 아는 페드르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에논의 설득에 못 이겨 결국 페드르는 이폴리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만다. 이폴리트는 이 충격적인 고백에 경악하면서, 한사코 거부 의사를 밝힌다. 의붓어머니에 대한 관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아리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소문과 달리 테제가 살아 돌아오게 된다. 페드르와 에논은 완전히 궁지에 몰리는데, 만약 테제가 페드르의 금지된 사랑을 알게 되면 엄청난 파문이 일어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당황한 에논은 오히려 이폴리트를 의붓어머니를 겁탈하려 했다며 거짓말을 꾸며낸다. 이 이야기를 들은 테제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이폴리트를 강하게 꾸짖고 추방 명령을 내리게 된다. 더욱이 그리스 신화에서 강력한 힘을 지닌 신 포세이돈에게 기도해, 이폴리트를 저주하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결국 이폴리트는 결백을 주장하면서 궁정을 떠나 도망치지만, 아버지 테제의 저주로 바다 괴물(바다에서 온 신의 사자)에게 습격을 당해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페드르는 의붓아들을 파멸로 이끈 거짓말과 자신의 금지된 사랑에 대한 죄책감으로 몸부림친다. 테제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극단적인 슬픔과 분노에 빠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페드르가 모든 진실을 털어놓게 된다. 페드르는 결국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17세기 프랑스는 신과 왕이 모든 질서를 정하던 시대였다. 그 질서를 기반으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정해진 도덕적 질서 안에서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욕망은 도덕보다 앞서기에 감정은 이성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항상 문제였다.
페드르는 자신이 해서는 안 될 감정을 품었음을 알고 있다. 그녀는 그것을 거부하고, 억누르려 하며, 심지어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을 극복하려 한다. 하지만 감정은 숨길수록 더욱 강렬해지고, 결국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녀의 고백은 단순한 사랑의 표현 이상으로 도덕과 본능 사이에서 흔들리는 내면이 드러나는 순간으로 해석된다. 신과 사회가 만든 질서 속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로써 말이다.
나는 그를 보았고,
얼굴이 달아올랐으며,
그의 시선 앞에서 창백해졌다.
Je le vis,
je rougis,
je pâlis à sa vue.
이 짧은 문장 속에는 한 개인이 감정을 자각하는 순간의 모든 흐름이 담겨 있다. 첫눈에 마주한 강렬한 감정,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의 동요, 그리고 그것이 금지된 것임을 깨달았을 때 찾아오는 공포까지. 그녀는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을 감정을 맞닥뜨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페드르는 신과 사회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려 노력한다. 하지만 감정을 통제하면 할수록, 욕망은 더욱더 그녀를 옥죄어 왔다. 그것은 마치 베르사유 궁정의 귀족들이 왕 앞에서 자신의 본심을 숨기려 할수록 더욱더 왕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했던 것과도 닮아 있다. 도덕적 존재로 살아야 하지만, 그 안에서 흔들리고, 고민하고, 무너진다. 도덕이 완벽한 질서를 가져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도덕이 만들어낸 억압은 또 다른 갈등과 비극을 낳는 것처럼 말이다.
페드르는 욕망을 가진다. 그러나 그녀가 그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 그녀는 사회가 정한 질서를 어긴 죄인이 된다. 그녀의 사랑은 단순한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금지된 욕망이기 때문이다. 페드르는 그것을 억누르려 하고, 부정하려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그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을 잃어버리고 만다.
작품 속 페드르의 입장처럼 17세기 프랑스에서 여성의 역할은 철저히 규정되어 있었다. 귀족 여성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사랑 역시 감정보다는 사회적 계약과 가문의 이익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페드르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사랑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용서받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게 된다.
베르사유 궁정의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왕과 귀족들의 시선을 받으며 사치스러운 삶을 사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역할에 갇혀 있었다. 왕의 총애를 받느냐, 귀족 가문의 명예를 지키느냐, 정치적 연합을 위해 결혼하느냐. 그들의 삶에서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권력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한 도덕적 규율과 개인의 욕망이 충돌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여성은 사랑에 빠질 수도, 그 감정을 표현할 수도 없었지만, 결국은 그것을 숨길 수도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작품 속 히폴리트는 단순한 젊은 영웅이 아니라, 왕족의 후계자로서 정해진 운명을 따라야 하는 존재로서 페드르는 왕비로서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 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가문의 명예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가문의 치욕이 된다는 사실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고민은 귀족 사회의 억압적인 규율이 개인의 감정을 어떻게 옥죄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감정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었고, 욕망은 있지만, 그것을 따를 자유는 없었다. 귀족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였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지만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적 규범은 계속해서 변해왔고, 과거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다고 믿지만, 여전히 우리는 금기와 규율 속에서 살고 있다. 욕망과 도덕, 본능과 사회적 질서 사이의 갈등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시험한다.
루이 14세의 시대에 감정은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인의 욕망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궁정과 사회 전체의 질서와 연관된 공적인 문제로 취급되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곧 사회적 규율을 거스르는 것이었고, 왕의 눈 밖에 나는 순간 권력과 생명을 위협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감정을 철저히 다스려야 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개인의 자유만을 따지고 보면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우리는 법과 도덕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기대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친근함이 미덕처럼 여겨지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의 감정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끊임없이 계산해야 한다. 지나치게 강한 감정 표현은 곧 비판을 불러올 수 있고 우리는 언제든 여론의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페드르가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려 할수록 더욱더 깊이 빠져들었듯이 감정을 통제하려 할수록 더욱더 억누르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억압된 감정은 예상치 못한 순간 폭발하게 된다. 어쩌면 모두가 화가나 있는 이유가 충분히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금단의 열매 효과(Forbidden Fruit Effect)는 어떤 것이 금지되거나 접근할 수 없을 때 오히려 더 강하게 매력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금단의 열매)를 더욱 원했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유로운 선택을 원하고, 무엇인가를 하지 말라고 강하게 금지당하면 오히려 그 행동을 더 하고 싶어지는 심리적 반발을 경험한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신경학적, 사회적 요인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1. 심리적 억압과 반발 이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미국 심리학자 잭 브렘(Jack Brehm, 1966)은 심리적 반발 이론(Psychological Reactance Theory)을 통해 금단의 열매 효과를 설명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유를 제한당할 때 본능적으로 저항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특정한 행동을 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가, 갑자기 그것이 금지되면 그 행동에 대한 욕구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이 게임은 절대 하면 안 돼!"라고 말하면, 아이는 평소보다 더 강한 호기심과 욕구를 느끼게 되거나, 특정한 음식이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오히려 더 먹고 싶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금지 자체가 무의식적으로 자유를 빼앗긴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 자유를 되찾고 싶다는 심리적 반발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금지가 오히려 행동의 동기가 되고, 그 결과, 사람들은 단순한 관심을 넘어 자신의 자유를 회복하려는 심리적 욕구 때문에 금지된 것에 더 강한 집착을 보인다고 말한다.
2. 호기심과 인지적 갈등: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욕구"
금지된 것은 대부분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은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는 존재이고, 호기심이 클수록 행동을 유발하는 힘도 강해지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불확실한 정보는 인간의 뇌에서 도파민 시스템을 활성화시킨다. 이때 도파민은 보상과 학습에 관련된 신경전달물질로써 미지의 정보를 탐색하려는 동기를 높인다고 설명한다. 즉, 어떤 것을 금지하거나 감추면 사람들은 "왜 금지된 걸까?", "이걸 알면 뭔가 중요한 걸 깨닫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대상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인지 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도 금단의 열매 효과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하고 싶은 마음)과 외부의 규제(금지된 행동)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금지된 것에는 반드시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호기심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금지된 대상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다고 치자. 사람들은 그럼 더 읽어봐야겠다는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책에 뭔가 대단한 내용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영화는 일부 국가에서 상영 금지되었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는 금지된 무언가에 숨겨진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3. 사회적 금기와 금단의 열매 효과: 더 위험한 것은 더 매력적이다?
금단의 열매 효과는 단순한 개인적 심리를 넘어, 사회적·문화적 측면에서도 강하게 작동한다. 어떤 행동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될수록, 더 강한 호기심과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금지된 책, 금지된 예술 작품, 금지된 음식 등은 오히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게 된다. 192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에는 술이 불법이었지만, 오히려 밀주 산업이 번성하며 술을 마시는 것을 더욱 유행시켰다.
또한 사회적 금기를 어기는 것이 곧 자유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는 자신을 표현하고 독립성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금기를 어기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1960~70년대 (힙스터, 펑크 문화 같은 반문화적 성향은 기존 사회의 규율과 금기를 깨는 것 자체를 자유의 상징으로 삼기도 했다.
장 라신의 《페드르》는 1677년 1월 1일, 프랑스 파리의 호텔 드 부르고뉴(Hôtel de Bourgogne)에서 초연되었다. 호텔 드 부르고뉴는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극장으로, 프랑스 고전주의 비극이 꽃을 피운 장소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초연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장 라신은 왕실의 후원을 받는 명망 높은 극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연 당시 《페드르》는 예상만큼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같은 해 비슷한 내용의 니콜라 프라동(Nicolas Pradon)의 《페드르와 이폴리트(Phèdre et Hippolyte)》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궁정 귀족들과 문학계 인사들은 니콜라 프라동의 작품을 더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특히 루이 14세의 애인이었던 마담 드 몽테스팡(Madame de Montespan)이 니콜라 프라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두 작품은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초연 당시에는 니콜라 프라동의 작품이 더 많은 주목을 받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장 라신의 《페드르》가 문학적으로 훨씬 더 우수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결국 니콜라 프라동의 작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초연에서 주인공 페드르역을 맡은 배우는 마리 샴므슬레(Marie Champmeslé)였다. 그녀는 당시 최고의 비극 배우 중 한 명으로, 장 라신의 여러 작품에서 주연을 맡으며 그의 비극적인 여성 캐릭터를 가장 완벽하게 연기한 배우로 평가받았다. 그녀의 연기는 강렬한 감정 표현과 섬세한 심리 묘사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초연에서 받은 실망스러운 반응과 경쟁작과의 논란, 그리고 문학계에서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에 환멸을 느낀 장 라신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극작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그는 종교적인 삶을 선택하며 극작에서 멀어졌고, 후반기에는 주로 기독교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을 쓰거나 교육자로 활동했다. 비록 《페드르》가 초연 당시 기대했던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의 문학적 가치는 인정받게 되었다. 특히 18세기 이후에는 볼테르를 비롯한 후대 작가들로부터 프랑스 고전 비극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공연되는 프랑스 비극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