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나는 보바리 부인이다.”
Madame Bovary, c'est moi.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가 남긴 이 유명한 문장은 단순한 작가적 고백이 아니다. 이는 현대까지도 유효한 심리적·사회적 개념, 보바리즘(Bovarysme)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바리즘이라는 용어는 그의 소설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의 주인공, 엠마 보바리(Emma Bovary, 보바리 부인)가 보여준 삶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불만족과 환상 속 이상을 좇는 심리는 19세기 프랑스 사회가 만들어낸 욕망의 구조를 반영한다. 문학비평가 줄스 드 고티에(Jules de Gaultier)는 이를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비롯된 환상적 자기기만으로 정의하면서 보바리즘이라는 개념을 확립했다.
그렇다면 보바리즘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한마디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상을 좇지만, 결국 그 이상은 실현되지 않아 좌절을 겪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소설 속 엠마는 낭만주의 소설에서 묘사된 뜨거운 사랑과 화려한 삶을 동경했지만, 실제 결혼 생활과 시골 현실은 그녀가 꿈꾸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 환상을 실현하려는 그녀의 몸부림은 오히려 파국을 자초하면서 보바리즘의 본질적 비극성을 드러내고 있다.
보바리즘은 19세기에 등장했지만 오히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심리적·사회적 현상이다.
엠마가 빠져들었던 낭만주의 소설은 미디어나 SNS와 같은 이미지로 대체되었고 완벽해 보이는 누군가를 동경하면서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현실과 이상의 사이의 괴리를 더욱 쉽게 느끼게 되었다. 특히 SNS에서 보여지는 과장된 행복과 꾸며진 성공은 보바리즘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타인의 화려한 삶을 보며 자신의 현실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결국 끊임없는 욕망과 비교에서 비롯된 좌절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또한, 보바리즘은 현대 소비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명품을 소유하고,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사랑을 꿈꾸는 심리는 엠마가 열망했던 도시적 삶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상의 실현 가능성이다. 환상을 현실로 만들려다 보면 경제적 파탄이나 정신적 소진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소설은 환상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현실과의 괴리를 자각하지 못할 때 파멸을 초래한다는 경고를 던진다. 보바리즘은 단순한 개인적 문제를 넘어, 시대와 문화가 만들어낸 사회적 현상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 개념이 지금까지 유효한 이유는, 우리의 본질적 욕망, 다시 말해 더 나은 삶, 완벽한 사랑, 성공에 대한 집착을 향한 끝없는 갈망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이 출간된 19세기 프랑스는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귀족 문화는 해체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 화려한 생활에 대한 동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를 지나면서 신분제가 흔들리고 사회 구조가 재편되었지만, 새롭게 부상한 부르주아 계층은 오히려 귀족적 생활방식을 흉내 내려했다. 그들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세련된 문화를 소비하며, 사교계에서 인정받기를 원했다. 과거의 귀족이 태생으로 특권을 가졌다면, 이제는 돈이 새로운 신분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대중문화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었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로맨스 소설과 신문 연재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손쉽게 이상화된 사랑과 호화로운 생활을 접할 수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뜨거운 사랑에 빠지고, 우아한 무도회에서 춤을 추며,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었지만, 지루하고 단조로운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그만큼 강렬한 유혹이 되었다. 특히 여성들에게 이러한 환상은 더욱 강하게 작용했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교육과 직업 선택의 기회가 거의 없었고, 결혼은 안정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하지만 결혼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이상적으로만 보였던 부부 생활은 현실이 되었을 때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졌고, 많은 여성들이 기대했던 낭만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럴 때 가장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낭만적 환상이었다. 화려한 연애, 격정적인 사랑, 대도시의 세련된 생활, 이 모든 것이 그녀들에게는 달콤한 탈출구나 다름없었다.
소설은 19세기 프랑스의 시골과 도시 간 격차를 날카롭게 묘사한다.
당시 프랑스는 산업혁명을 겪으며 빠르게 근대화되고 있었지만, 도시와 지방 사이의 경제적·문화적 차이는 여전히 컸다. 파리와 같은 대도시는 철도 개통과 자본주의 확산으로 번성했지만, 농촌 지역은 여전히 전통적 가치관과 낙후된 경제구조에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배경은 엠마의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녀가 살던 작은 마을은 변화의 흐름에서 소외된 전형적인 지방 도시였다. 엠마는 이곳에서 단조롭고 답답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도시적 삶에 대한 강한 환상을 품었다. 그녀가 파리 출신의 남성들에게 끌리고, 패션과 문학을 통해 파리 생활을 동경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시골 여성인 엠마에게는 도시로 이동할 기회도, 사회적으로 상승할 통로도 거의 없었다. 그녀가 로돌프나 레옹과의 사랑을 통해 새로운 삶을 기대했지만 결국 배신당하거나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이유도, 당시 지방 여성들이 가진 한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소설 속 엠마는 농부의 딸로 태어나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수녀원에서 읽은 낭만적인 연애 소설들은 그녀에게 사랑과 모험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엠마는 소설에서처럼 열정적인 사랑, 화려한 일상, 낭만적인 생활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꿈을 꾼다.
시간이 흐르고 엠마는 평범한 시골 의사 샤를 보바리와 결혼을 약속한다. 엠마는 샤를과의 결혼이 그동안 기다리던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줄 기회라고 믿었다. 가슴 뛰는 사랑, 그리고 낭만적인 일상 같이 아름답게 포장된 소설 속 모습으로 일상이 펼쳐지길 기대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엠마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샤를은 그저 평범한 시골 의사에 불과했다. 엠마의 일상은 평범했다. 조용한 일상, 평화로운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계속될수록 엠마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럴수록 엠마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일상의 그 무엇도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점점 더 큰 환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엠마는 가슴 뛰는 사랑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우연히 참석한 무도회에서 엠마는 화려한 사교계가 어떤 곳인지 경험하게 된다.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교계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그날 이후 엠마는 더욱 강렬하게 화려한 삶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사교계는 현실의 밋밋함과는 비교조차 할 수는 짜릿함을 선사해 주는 곳이었다. 무도회는 화려했고, 귀족들의 우아함을 뽐내고 있었다. 온갖 사치가 난무했고,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열정적이었다.
엠마는 환상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면서 권태로운 결혼 생활에서 구해줄 사랑에 더욱 의지하게 매게 된다. 가슴 뛰는 사랑을 찾기 위해 엠마는 두 명의 남자와 불륜 관계를 맺게 된다. 가슴 뛰는 격정적인 사랑을 기대하면서,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랑을 바라면서. 하지만 두 번의 외도 모두 엠마를 구원해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둘과의 관계는 엠마를 더욱 절망적에 빠뜨렸다. 정신적으로는 피폐해지고, 경제적으로는 파탄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엠마의 끝은 비참했다. 사치스러운 생활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빚더미에 오른 엠마는 그제야 자신의 바람이 부질없는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와 버린 뒤였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엠마는 절망에 빠진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한다.
보바리즘은 단순한 몽상이나 허영심과 다르다. 자신이 속한 현실을 부정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더 나은 삶으로 연출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심리적 현상이다. 어쩌면 꿈꾸는 모습을 향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그 욕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낮을수록 좌절과 불행이 커진다는 점이다. 비현실적인 꿈, 다시 말해 환상 같은 일상을 끊임없이 꿈꾸면서 괴로워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되는 심리적 기제가 동작했을 때 모든 문제는 시작된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환상을 추구하는 상태
보바리즘의 핵심은 현재의 현실에 대한 지속적인 불만족과 이상적인 삶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 있다. 보바리즘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실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더 나은 삶, 더 격정적인 사랑, 더 화려한 생활을 갈망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환상 속에서 갇혀 살아간다.
소설 속 엠마가 평범한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시골에서 남편과 소박한 삶을 꾸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도시에서 세련된 사람들과 사교 생활을 즐기며, 귀족 여성처럼 우아한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녀의 신분과 환경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사랑을 통해, 혹은 소비를 통해 이 갈망을 채우려 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결국 그녀는 더욱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엠마의 환상은 당시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수녀원에서 낭만적 연애소설을 탐독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사랑의 이상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감성은 그녀의 선택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그녀는 책 속에서 본 이상적인 사랑을 현실에서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엠마가 만들어낸 환상에 대한 맹목성은 요즘 대중문화 속에서 보여주는 판타지와 그를 소비하는 우리의 심리와도 맞닿아 있다. 영화, 드라마, 소셜미디어에서 연출된 완벽한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러나 모습을 동경하게 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보바리즘이 위험한 이유는 환상이 현실과 충돌하는 순간 좌절과 공허함이 더욱 깊어지기 때문이다.
소설은 욕망과 환상이 통제되지 않을 때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엠마는 사랑을 갈망했고, 상류층의 삶을 동경했으며, 감각적인 쾌락과 사치를 통해 행복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추구한 삶은 허황된 환상에 불과했다. 그녀가 도망가려 했던 현실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고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엠마가 마주한 것은 배신과 빚더미, 그리고 끝없는 허탈감이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도 이렇게 끝나서는 안 돼라는 마음으로 독극물을 삼켰지만, 죽음조차도 그녀가 꿈꾼 것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플로베르는 이를 통해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파리(Paris)는 현실에서도 또 소설 속에서도 문화의 중심지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동경은 시골 출신이었던 엠마에게 세련됨과 우아함, 자유로움을 상징이 되었다. 엠마는 파리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지만, 그곳에서의 삶을 무한히 동경했다. 최신 유행의 드레스, 화려한 오페라 극장, 세련된 문화는 그녀의 환상을 더욱 강화시켰다. 엠마는 이를 자신이 갈망하는 완벽한 삶의 모습으로 여겼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어쩌면 이러한 동경은 지금 우리에게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헬조선이라는 말과 함께, 지방 소멸이라는 말과 함께.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핫한 모습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로망을 불러일으키고, 깔끔하게 정돈된 생활과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은 누가 봐도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가 당시에도, 또 지금도 모든 이들에게 낙원이 아니듯이 사진 몇 장으로 표현되는 일상 뒤에는 치열한 경쟁과 높은 생활비, 보이지 않는 경제적 계급차이를 견디어 내야 한다.
또한 엠마는 화려한 드레스, 고급 가구, 값비싼 향수 등을 구매하면 더 고급스러운 존재가 되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러한 심리는 단순한 허영심이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계층으로 도약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욕망 근처에는 항상 르뢰(Monsieur Lheureux)와 같은 상인들의 존재한다. 끊임없이 사치를 부추기고 빚을 지게 만들었고 끝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도시의, 어쩌면 그려진 라이프스타일이 실제 삶의 질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많은 이들은 꿈과 현실의 괴리를 절감하며 살아간다. 특히 경제적·사회적 압박이 심화된 요즘에는 더욱 엠마와 유사한 심리적 경험을 한다. 수입에 비해 높아진 집값과 불안정한 경제 상황은 연애조차 거부하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현실적 선택이지만, 동시에 이상적인 연애의 모습과 그렇지 못한 현실의 괴리에서 비롯된 좌절감을 반영하고 있다.
보바리즘은 환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발생하는 불만족과 좌절에 집중한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 간극에서 오는 무력감은 단순한 개인의 감정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정도를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현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깊이 연결된 심리적 현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소설 속에서 엠마가 낭만적 연애소설 속 사랑을 동경하면서 현실과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미디어에서 제공하는 이상적인 삶의 이미지와 자신의 현실을 비교하면서 깊은 불만족 느끼게 된다.
이러한 좌절감은 단순히 감정적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없던 문제를 만들어 내고, 평온했던 삶의 방향을 잃게 만든다. 무언가 잘못된 것 타고, 지금 이 무기력함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삶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목표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여야 할 때, 우리는 엠마가 된다.
보바리즘은 19세기 철학자 쥘 드 고티에(Jules de Gaultier)가 소설 속 엠마의 심리 상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널리 알려진 개념으로 현실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된 심리적 상태로, 자신의 삶을 이상화된 이미지로 대체하고자 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보바리즘의 본질은 현실의 자기(Self)와 이상화된 자기(Idealized Self)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갈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보바리즘에 빠진 사람은 현재 자신의 모습과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상적인 자아상을 끊임없이 꿈꾸며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심리는 단순한 공상에 머무르지 않고, 종종 과도한 소비, 위험한 관계,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보바리즘의 핵심은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욕망으로 설명한다. 현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이상적인 자아를 상상하며 자신을 새로운 세계로 투영한다. 엠마는 단조로운 시골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고, 낭만적 소설을 읽으며 귀족적인 삶과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면서 자신의 이상을 투영시키는 심리를 의미한다. 요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SNS에서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듯한 타인의 모습을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면서 결핍을 느끼고 더 나은 자아상을 갈망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보바리즘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향을 보인다. 이상적인 삶을 기준으로 현실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 이상이 비현실적일 경우, 현실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고 환상은 더욱 강렬해진다는 점이다. 마치 남편 샤를과의 평범한 결혼 생활이 이상적인 로맨스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강렬한 관계를 찾는 선택은 이러한 비현실성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더 성공해야 한다, 더 아름다워야 한다와 같은 압박은 현실의 자아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원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보바리즘이 위험한 이유는 환상을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현실처럼 믿기 때문이다. 이상이 강할수록 현실을 왜곡하고, 자신의 상황을 실제보다 더욱 비참하게 느끼게 된다. 엠마는 불륜을 하면 꿈꾸던 격정적인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보바리즘은 자신의 삶을 왜곡하고 현실을 도피하게 만드는 심리적 함정처럼 작용한다. 이러한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왜 이런 환상을 품게 되었는지, 정말 필요한 것인지, 단지 외부에서 주입된 것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 그 꿈을 좇는 과정에서 현실적 제약을 충분히 고려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환상을 꿈꾸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지만, 그 환상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새롭게 남겨진 숙제이다. 편집되어 보여지는 누군가의 일상 뒤에는 보이지 않는 현실적인 고민과 문제를 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보바리즘이 심한 사람들은 현실을 무시하고 거대한 이상만 추구하기 때문에,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성취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는 태도가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소설의 첫 문장은 문학사에서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첫 문장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얼핏 보면 단순한 도입부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치밀한 문장 구성과 서술 기법이 응축된 결정체라고 해석된다. 이 한 문장을 둘러싸고 수많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우리가 자습실에서 공부하고 있으려니까 교장 선생님이 어떤 평복 차림의 신입생과 큰 책상을 든 사환을 데리고 들어왔다.
Nous étions à l’étude, quand le Proviseur entra, suivi d’un nouveau habillé en bourgeois et d’un garçon de classe qui portait un grand pupitre.
- 소설의 첫 문장
소설의 첫 문장은 'Nous étions'라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이 문장을 읽을 때 '우리'는 누구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처음 몇 페이지 동안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가 샤를 보바리와 같은 반 친구 중 한 명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술자는 갑자기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변환되며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환되면서 소설은 계속된다.
이러한 서술 시점의 변화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다. 전통적인 소설들은 보통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된 시점을 유지했지만, 플로베르는 읽는 이로 하여금 서술자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면서, 이야기에 몰입하는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설계했다. 결과적으로 이 기법은 이후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와 같은 20세기 모더니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플로베르는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리듬과 분위기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첫 문장만 해도 여러 번 수정했고, 출판 직전에 다시 쓰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원래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지만, 가장 효과적인 도입부를 찾기 위해 수개월을 고민했다. 샤를 보바리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면서도,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첫 문장이 탄생했다. 이러한 플로베르의 집착은 이후 플로베르식 정확성(Flaubert’s Exactitude)이라는 문학 용어로까지 발전했다. 그는 문장 하나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하루 종일 고민하고, 한 문장을 수정하는 데 몇 주를 보내기도 했다.
첫 문장은 의도적으로 샤를 보바리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몇 장을 넘기다 보면, 이야기의 중심은 점점 엠마에게로 이동한다. 이러한 서술 속 함정은 플로베르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기법이다. 독자들이 처음에는 샤를을 주목하게 하고, 그 후 엠마에게 시선을 옮기도록 유도했는데, 이러한 방식을 통해 엠마의 환상이 점점 커지는 과정을 더욱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첫 문장이 법정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소설은 1857년 출간되자마자 프랑스 법정에서 외설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당국은 이 소설이 부도덕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여성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플로베르를 기소했다. 그러나 플로베르는 첫 문장을 증거로 사용하며 이 소설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이야기가 아님을 주장하기도 했다. 첫 문장은 단순한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시작되고, 초반부는 매우 절제된 문체로 서술되어 있으며, 엠마의 행동은 단순한 찬양이 아니라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는 점을 강조했다.